posted by isaiah_43 2011. 8. 11. 17:49
지금은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지난 8월 2월 난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담임)님의 소천 소식을 접했다.
그분은 내 생애 첫 휠체어를 선물해주신 분이셨다.

난생 처음 동대문 의료상회를 돌아다니며 그 많은 휠체어 중에서 작고 아담한 갈색 휠체어가 눈에 띄었다.
마치 내 모습처럼 작고 아담한 모양이 내 마음을 끌어 당겼다.
사실 난 그동안 “난 죽어도 휠체어 따윈 안 타!”라는 고집을 피웠었다.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
내가 휠체어에 앉는 것은 내가 장애인임을 세상에 드러내고 포기하는 것 같아 피해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걸을 수가 없을까? 이제 다 된 것인가?”라는 나 자신의 내면의 질문들...
하지만 그 휠체어를 타고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 세상,
누군가 밀어줘야 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상과 만난 것이다.

그 첫 스타트를 끊게 해주셨던 자애로운 미소의 하용조 목사님은
내겐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열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목사님은 주님 품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 속에 기쁨을 누리시겠지.
지금 이 시간 난 그 분이 한없이 그립고 또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때, 마지막 주자들
 
97년 5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거의 1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국내외적으로 많은 곳을 다니며 주님의 마음을 전했고,
그 여정 가운데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 자신의 어떠함 보다는 한 영혼이라도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마음,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던 사역 가운데 적신호가 켜졌다.

그날도 피곤에 지쳐 봉고차에 몸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약 2시간여 동안 쉼 없이 달렸는데 목과 척추에 큰 무리가 느껴졌다.
심각한 목디스크에 의한 전신마비. 난 더 이상 사역을 위해 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병상에 눕고부터 주님은 내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이시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속에 주님은 마지막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세계지도를 보여주시면서 세세히 알려주시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미국 집회를 갔다가 미국에 대해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부터 마지막 때에 관한 은밀한 징조들...
나는 매일 새벽과 낮, 수시로 깨어 있을 때마다 주의 음성을 들어 귀찮고 시달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나
불안하거나 공포감은 없었다. 너무 너무 힘겹게 잠들었는데 주님은 수시로 나를 깨우셨고, 계속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난 그 주님의 끊임없는 음성대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놀라운 반면 신기하기도 했다.
다니엘서와 마태복음 24장과 요한계시록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숨은 그림처럼 그 베일이 벗겨지는 현실과 미래가
하나하나 보여 져서 숨 막히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것들이 너무 직설적이고 충격스러워서 주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표>라는 소설 형식의 책이었다.
내가 본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적어도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깨어 기도할 것인가.
주님의 신부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마지막 때 사탄은 어떻게 주의 자녀들과 교회들을 미혹하고 저들을 이용하게 된 것인가 등...
이 책의 초판이 2004년이었으니까,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는 성경이 증거 하는 여러 가지 마지막 때의 일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마지막 주자들이다.

무엇보다 교회들이 깨어나야 하고, 청년들을 주께로 되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매일 TV나 인터넷을 열어보기 두려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유명스타, 대기업 총수들이 자살을 하고, 그걸 또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군가가 표현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묻지마 살인 같은 강력범죄들이 쉴 틈 없이 일어나는 이때 믿는 자들이 이것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는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매일의 삶이 전쟁 같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죽어가는 가녀린 생명조차 살려내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여야 하는데
저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고통 앞에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은 너무나 적다.

도무지 저들에게 관심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살인방조죄’를 저지르고 있다.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이거나 아니면 아예 세상과 담을 쌓고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안하는 교회,
혹은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치닫는 교회들은 마지막 때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할 능력과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성령의 역사로 다양한 이적들이 나타나고 은사들이 부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 즉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람의 인생 자체를 바꾸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난 지난해 1월 아이티 대지진속에 힘없이 무너진 교회들을 보았다.
‘건물’인 교회는 이처럼 순식간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사람’인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마치 빌립집사가 걸어 다니는 교회가 되어
에티오피아 관원을 만나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듯이...각자의 걸어 다니는 교회인 우리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절망 가운데 처해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갇힌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늘 꿈꾸는 것이 있다.
기독교 문화사역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
수많은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비전을 찾고 세상 가운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음을 택하려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안식을 찾고,
다시 세상 가운데 용기 있게 그 발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일,
집안에만 갇혀 있던 수많은 장애우들이 자신만의 달란트를 발견할 수 있는 학교가 세워져
그곳에서 꿈을 키워내 세상 가운데 당당히 자신의 일을 갖게 되는 일,
진보와 보수가 기독교 매체들을 통해 만나 진실된 토론을 나누고 협의점에 도달하게 되는 일 등...
이러한 일들이 교회와 기독교방송국들, 그리고 기독공동체들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일반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에덴의 동쪽’이나 ‘제중원’ 같은 드라마를 제작하지 못하는가.
모든 교회가 연합한다면 충분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과 물질들을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주셨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라는 이름 안에 하나 되어 미디어문화사역기금들을 모으고, 인재를 키워내는 일,
기독교적 마인드가 면면에 흐르는 훌륭하고 수준 높은 영화들과 다양한 공연들, 작품들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우리는 해야만 한다.

이러한 꿈들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 요즘 내 기도제목이기도 하다.(생략)

(월간 플러스 인생<신앙계>9월호 인터뷰 내용 중에서............)

출처:
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BOKT/15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