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saiah_43 2011. 7. 9. 15:40

유대인들의 첫 번째 메시아/ 적그리스도

  출처: http://blog.daum.net/dfgiyo/6069374


"내년엔 적그리스도가 나온다 합니다. 당연히 싸워야할 존재입니다.
바로 이슬람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12번째 이맘이라고 합니다.
걔네들 적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구요."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이러한 인식 하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는지 있는지 상상을 해봤습니다.

1. 적그리스도는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증오하고 적대시 하는 인물이다.

2. 이슬람의 배경으로 나오는 그는 이스라엘 및 서방세력에 적대적인
이슬람, 러시아, 중국 등의 세력과 제휴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성경에 예언된 아마겟돈 전쟁, 즉 3차 대전이 일어난다.

3. 그는 이스라엘과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적대적 세력이므로 기독교인이 힘을 합쳐 맞서 싸워야 한다.

여기까지는 좋으나 저는 시나리오가 더 진행된다고 봅니다.

4. 한 영웅적 인물이 나와서 적그리스도를 죽이고 전쟁을 종식시켜 이스라엘과 세계를 구한다.

5.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세계의 구세주 그리스도로 선포되어 각종 문제를 해결하며
평화 속에서 인류의 참된 영적 각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6.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성경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은가? 예수의 재림은, 엘리야의 재림이 실상은 세례요한이었던 것과 같은 비유였다.
영적으로 앞서고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이스라엘의 랍비들과 가톨릭의 사제들이 증거 하는 것을 들으라.
적그리스도를 죽이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세계와 종교를 통합하여
참된 영적인 각성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재림예수와 함께 천년왕국의 건설에 참여하자.

사단의 올무에 보기 좋게 걸려버린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계획입니다.
전 인류와 특히 이스라엘의 구세주로 와서 왕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자가 지금 이 순간에 오거나,
인류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참아낸 정도의 위기라면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상기해 보시길)
자신의 구세주가 사람들에게 절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사단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획을 관철시키고 원하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들의 영역에마저 재앙을 일으키는
사단의 제자들의 수법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가짜 환난을 조작할 것이며
그 환난은 자연재해, 기근, 역병, 경제공황, 전쟁 등 각종 재앙의 종합선물세트로서
그 재앙의 강도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 특히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멸망의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 환난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관을 토대로 성경을 모방하여 조작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리드하는 자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적그리스도로 선포될 것이나
이 자는 성경이 지목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닌 사단이 꾸며낸 가짜 적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인류와 이스라엘이 빠진 위기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의 구원자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적인 정치적 지도자로서 오며
그는 메시아, 재림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기독교를 적대하고 멸하려는 자이지만
이 조건만으로는 사단의 덫을 판별해낼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임하는 사건(유대인의 메시아의 초림/배도한 교회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예언에 들어맞는 모습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혼란을 초래할 것인데 그것은 사단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예: 큰 전쟁의 끝에 온다. - 곡과 마곡 對 아마겟돈;
이스라엘의 적을 멸함; 성전과 율법을 회복함;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림 등등)
적그리스도가 오는 모습을 성경의 예언에 끼워 맞추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이 어떠한 종교적 교리들을 준비해왔고 이용할 것인지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판별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이 있는 것과 같이
적그리스도를 판별하기 위해서도 여러 조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이거나 최소한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로
(다윗의 혈통을 명시적으로 주장할 것입니다),
이슬람과 같은 적대적 세력으로 드러나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거짓목자로 양의 가죽을 쓰고 오는 이리라는 점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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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ewfaq.org/mashiach.htm
마시아(Mashiach): 메시아(The Messiah)

• 마시아(메시아)는 상고시대로부터 유대교에 있던 개념이다.

• 마시아는 구원자(savior)가 아니라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인간(human) 지도자이다.
• 마시아가 올 때에 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 성경은 마시아가 성취할 몇몇 과제들을 밝히고 있다.
• 예수는 이 과제들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나는 마시아의 오심을 온전한 믿음으로 믿으며 비록 그가 지체할지라도 나는 매일 그를 고대한다.

- 람밤(Rambam)의 신앙 13개조 중 제 12 조.




유대교의 메시아 개념(Messianic Idea).

마시아(mashiach)의 도래는 전통적 유대교의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람밤의 신앙 13개조[1]의 일부이며 유대교 신앙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 요건이 된다.
매일 세 번씩 낭송되는 셰모네 에스레이의 기도(hemoneh Esrei prayer)에서 우리는
마시아의 오심에 관한 다음과 같은 요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유랑자들(exiles)의 귀환, 종교 법정의 회복, 죄와 악 및 이단(heresy)의 종말, 의로운 자들에 대한 보상,
예루살렘의 재건, 다윗 왕의 혈통 회복, 성전 의식의 회복.

현대의 학자들은 메시아의 개념은 유대교의 역사에서 비교적 나중이었던 선지자들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메시아의 개념이 토라(모세5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음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메시아의 개념은 언제나 유대교의 일부였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토라에서는 마시아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거리감이 있는 영적인 개념이나 미래에 관한 추상적 개념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이해의 영역 밖에 있었으므로 토라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라에도 "마시아의 때인 "마지막 때"(acharit ha-yamim)에 관한 언급이 몇 군데 있으므로
마시아의 개념은 가장 오래된 시대에서도 알려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마시아(mashiach)"라는 용어는 문자적으로 "기름 부은 자"를 뜻하며 왕이 보좌에 오를 때 기름을 붓는 전통에서 유래한다.
마시아는 마지막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자이다. 마시아라는 단어는 "구원자(savior)"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격 또는 준 신격(準-)을 갖는 무죄한 존재가 우리가 저지른 죄의 열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관념은
순수하게 기독교적인 관념이며 여기에는 유대교적인 근거가 전무하다.
유감스럽게도 이 기독교적 관념은 영어 단어 "메시아(messiah)"에 깊이 뿌리내렸기에
이 영단어는 더 이상 유대교적 관념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글 전반에서는 "마시아(mashiach)"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은 필자에게 "마시아"라는 용어가 "모시아(moshiah)"(구원자)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음가를 갖는다는 이유지만 그 유사성은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히브리어 단어 "마시아"는 Mem-Shin-Chet의 철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칠하다, 바르다 또는 기름을 얹는다, 라는 의미이다.
"모시아"의 철자는 Yod-Shiin-Ayin이며 돕다 또는 구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두 단어에서 일치하는 글자는 Shin 뿐이며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보편적인 글자이다.
모시아(구원자)의 첫머리의 m 소리는 동사를 명사로 전환할 때 흔히 사용되는 접두어이다.
예를 들어 tzavah(명하다)라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바꾸면 mitzvah(명령)가 된다.
"마시아"가 "모시아"와 관계있는 단어라는 주장은 ring(링)이라는 단어와 surfing(서핑)이라는 단어는 모두 끝에 ing가 있으므로
이 둘이 관계가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시아 (The Mashiach)

마시아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서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가 될 것이다. (예레미아 23:5)
마시아는 종종 "mashiach ben David"(마시아 다윗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유대 율법에 정통한 자이며 그 계명들을 준행할 것이다. (이사야 11:2-5)
그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서 사람들이 따를만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는 위대한 군사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편에서 여러 전투에 승리할 것이다.
그는 위대한 심판자(판관)로 의로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예레미아 33:15)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는 하나님, 준-하나님 또는 다른 형태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며 인간이라는 것이다.

모든 세대에는 마시아가 될 잠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 한 명 씩은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후보자가 살고 있는 기간이 메시아 시대적 시기로 적절하다면 그는 마시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시아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는 마시아가 아니게 된다.



마시아는 언제 올 것인가?

언제 마시아가 올 것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유대교의 위대한 지성 중 일부는 마시아가 오는 시기를 예측하는 자들을 저주해왔다.
그런 예측은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거나
심지어 유대교에 대한 신앙마저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사건이 17세기에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샤바타이 츠비(Shabbatai Tzvi)가 마시아라는 주장이 있었다.
츠비가 죽음의 위협에 굴복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했을 때 다른 많은 유대인들도 그와 함께 개종하였다.
그러나 이런 제제는 사람들이 마시아가 올 시기를 추측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부 학자들은 마시아가 오는 특정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예비되었다고 믿었으나
마시아가 오는 시기는 인류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이다.
마시아는 (세상에 악이 가득하여) 그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또는 (세상이 선으로 가득하여)
그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을 때에 올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진다.

예를 들어 마시아가 올 시기에 대해서 다음 각각의 조건이 제시되어 왔다:

- 이스라엘 전체가 단 하루라도 회개를 할 때
- 이스라엘 전체가 단 하루의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킬 때
- 이스라엘 전체가 연이은 이틀의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킬 때
- 전적으로 무죄하거나 전적으로 유죄인 세대
- 희망을 잃은 세대
- 자식들이 부모와 노인들에 대해서 완전히 무례한 세대에




마시아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마시아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전쟁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겔 38:16)

마시아는
우리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들이고 예루살렘을 회복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정치적이고 영적인 구원을 이룰 것이다.(사 11:11-12; 렘 23:8, 30:3; 호 3:4-5).
그는 이스라엘에서 정부를 세울 것이며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한 세계정부의 중심이 될 것이다.(사 2:2-4; 11:10; 42:1)
그는 성전을 재건하고 그곳에서의 예배를 회복한다. (렘 33:18)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법 시스템을 회복하고
유대 율법을 그 땅의 율법으로 수립할 것이다.(렘 33:15)




올람 하-바(Olam Ha-ba): 메시아의 시대

메시아가 온 이후의 세상은 유대문학에서 다가올 세상이라는 의미인 올람하바(Olam Ha-ba)로 종종 일컬어진다.
이 용어는 사후(死後)의 영적 세계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우리가 영어로 특정적인 메시아의 때를 언급할 때는 "메시아(의) 시대(messianic ag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모든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이 올람하바의 특징이 될 것이다.(사 2:4)
증오와 편협함, 전쟁이 사라질 것이다.
자연법칙들이 변하여 육식동물이 육식을 중지하고 농업에서는 초자연적인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생각한다. (사 11:6-11:9)
그러나 이 구절들은 단순히 평화와 번영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랑상태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각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사 11:11-12; 렘 23:8, 30:3; 호 3:4-5)
안식년의 율법이 회복될 것이다.

올람하바에는 전 세계가 오직 유대인의 하나님만을 진정한 신으로,
오직 유대인들의 종교만을 유일한 종교로 인정할 것이다. (사 2:3; 11:10; 미가 4:2-3; 스가랴 14:9)
그 때에 살인과 강도와 경쟁과 질투는 없을 것이며 죄가 없는 세상이 된다. (스바냐 3:13)
희생제사가 성전에서 재개될 것이나 이는 감사제에 한할 것이다.
속죄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방인들은 이러한 신학을 곡해하여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키려고 계획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주장과 똑같은 일을 저지르던 그들 자신의 종교 역사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유대인이 이해하는 메시아 시대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2+4=4라는 것을 그저 알듯이 진리가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되며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것은 전에 내가 목격한 상황과 비슷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두 명이 소란스럽게 한참동안 싸우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의 특정 위치에서 사용자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두고 싸우는 것이었다.
마침내 누가 자판의 키를 눌렀는데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진실을 알았고 논쟁은 끝이 났다.
마시아가 올 때 신학적 진리들은 인류에게 자명하게 드러나며 그것을 둘러싸고 논쟁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예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대인들은 예수가 마시아라고 믿지 않는다.
그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가정하고 기독교의 경전이 그를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가정하더라도(그러나 이 두 가정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성경 구절에 나온 것과 같은 마시아의 임무를 성취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이 메시아가 할 것이라고 말한 일들 중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세기가 지난 후 태어난 다른 유대인은 메시아적 이상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예수보다 훨씬 더 근접하였다.
그의 이름은 시므온 벤 코시바(Shimeon ben Koshiba)로 바 코흐바(Bar Kokhba별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카리스마적이었고, 뛰어나지만 무자비한 군벌(warlord)이었다.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인 랍비 아키바(Akiba)는 바 코흐바를 마시아라고 믿었다.
바 코흐바는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싸웠고, 로마 10군단을 급습하여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는 성전의 터에서 희생제를 재개했으며 성전을 재건할 계획들을 만들었다.
그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정부) 이름이 들어간 주화의 발행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마시아의 모습이며 예수는 명백하게 이 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은 그의 반란을 분쇄하고 바 코흐바를 죽였다.
그의 죽음 이후 모두 그가 마시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였다.

유대역사를 통틀어서 마시아를 자칭하거나 추종자들이 마시아로 여겼던 자들이 많이 있었다.
시므온 바 코흐바, 샤바타이 츠비 등 이름을 대기에도 너무 많다.
레오 로스텐은 '이디시의 기쁨(The Joys of Yiddish)'이라는 저서의 '거짓 메시아들(False Messiahs)'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재미있는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마시아의 사명을 성취하지 못한 채로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부 마시아가 아닌 것이다. 마시아와 올람하바는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이다.



마시아를 가리키는 성경구절

유대 경전에서 다음 구절들은 본질적으로 메시아에 관한 것 또는 마지막 때에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아적 관념을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이 구절들을 토대로 하여 의존한다.

이사야 2, 11, 42; 59:20
예레미아 23, 30, 33; 48:47; 49:39
에스겔 38:16
호세아 3:4-3:5
미가 4
스바냐 3:9
스가랴 14:9
다니엘 10:14

기독교인이 메시아 관련 구절이라고 여기는 구절들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고 싶으면
 'Jews for Judaism' 웹사이트를, 특히 'Knowledge Base under Resources'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Knowledge Base' 부분은 복음주의자들이 유대인들에게 던지는 130개 이상의 가장 보편적인 논쟁주제 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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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다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입니다.)
http://www.jewsforjesus.org/answers/jesus/proofessay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는 있는가?
2005. 1. 25.

어떠한 근거도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자에게는 확신을 줄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묻는 자들에게 근거는 자명하게 보인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가 있냐는 질문을 진지한 태도로 한다면 그것은 좋은 질문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대 역사에는 가짜 메시아들이 있었다.
바 코흐바(Bar Kochba)와 샤바타이 츠비(Shabbetai Zevi)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바 코크바는 서기 132-135년 로마를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일어나는 동안 유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랍비 아키바(Akiva)는 그가 "메시아 왕"이라고 선포하였다.
로마가 베타(Betar)의 요새를 습격할 때 불행히도 바 코흐바와 아키바를 비롯하여 수 천 명의 유대인들이 서기 135년에 살해당했다.
이에 비하여 샤바타이 츠비는 스스로 메시아라 일컬은 인물이다.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은 샤바타이 운동은 일반인과 랍비들에게 확산되었다.
샤바타이 츠비는 1666년 터키의 술탄에게 체포 당한 후, 죽음을 면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길을 택하였다.
우리는 과거에 이와 같이 비극적인 오류를 경험하였으므로
예수를 믿기 위해서 확실한 증거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시아라는 개념은 히브리 경전의 전반에 걸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메시아의 "아이디(I.D.)"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친구를 찾는 과정을 상상하여 보라.
처음에는 국가를 찾아내야 할 텐데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므로
다음에는 그가 사는 도시를,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번지수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의 전화번호와 집에 머무는 시간을 알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식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메시아의 "아이디"를 말하여 준다.
그의 민족적 배경, 출생지, 그가 임할 시간적 프레임 및 기타 신원 확인에 필요한 특징들이 주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자격들(credentials)"로써 메시아를 구별하며 그를 사칭하는 자들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자격들"이 명백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사람들이 바 코흐바와 샤바타이 츠비와 같은 가짜 메시아들에게 속았는가 하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예수의 시대에는 유대인들의 마음 속의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대단히 정치화 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구하고 있었다.
성경은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로마의 지배로 인하여 메시아의 승리자적 측면이 일반인들의 마음속에서 최상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적인" 메시아 관(觀)이 유대인들에게 박혀 있었으며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계속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 갔다.
그리하여 영적(spiritual) 메시아가 아닌,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사람들이 바 코흐바와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예수를 거부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이는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의 주장을 거부했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최초로 예수를 따른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당시 및 그 이후의 랍비들은, 사실상, 예수가 성취했다고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예언들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3장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에 탈무드 랍비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 당시에는 이 예언을 예수 개인에 적용시키는 자들로부터의 강압이 너무나 거셌던 나머지
중세의 경전 학자였던 라시(Rashi)는 이사야 53장이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재해석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유대인 학자들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그 역사는 고작 중세시대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메시아의 자격증명은 어떤 것인가?
다른 것도 많이 있으나 몇 개만 아래에 언급하였는데,
이 관련구절들은 모두 예전의(역: 중세 이전) 랍비들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다: 미가 5:1
- 메시아는 유다지파로부터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창세기 49:10
- 메시아는 자신의 모습을 나귀를 타는 모습으로 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스가랴 9:9
- 메시아는 고문을 당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되어 있었다: 시편 22편
- 메시아는 두번째 성전의 파괴 전에 오게끔 되어 있었다: 다니엘 9:24-27
- 메시아의 삶은, 고난, 체포와 심문(審問)에서의 침묵, 죽음, 부자의 묘실에 장사됨,
   부활 등의 특정한 묘사에 일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사야 52:13-53:12

혈통과 출생지, 시간 및 삶의 방식의 구체적 요소에 있어서 예수는 히브리 경전의 메시아 상과 일치한다.
이러한 성취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으나, 이에 더하여 몇몇 다른 요인들도 예수의 메시아 됨을 입증한다.

첫째로, 그는 스스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하였다!
한 여자가 그에게,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하니
그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고 답하였다. (요 4:25-26)
본질적으로 그것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만약 예수 본인이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가 메시아임을 애써 증거 할 동기가 있겠는가?
그분 스스로의 주장은 나머지 근거들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삶은 다른 거짓 메시아들의 삶과 날카롭게 대조되며, 그것은 우리가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입증이다.
예수는 수많은 치료의 기적을 행하였고,
사람들의 인생에 온전함을 가져다주었으며, 죄를 사하고 관계들을 회복시켰다.
샤바타이 츠비와 같은 자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는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였으며,
바 코흐바와는 달리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제3의 추가적인 근거이며 그것으로써 예수의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인 학자인 핀하스 라피드(Pinchas Lapide)는 유대사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는 책을 썼다.
(관심을 받은) 이유는 라피드가 예수의 부활은 사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 경전에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왜 예수만 다시 살아날 수 없냐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유감스럽게도 라피드는 예수의 부활이 다른 소생 사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기술된 점과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부활을 예언했다는 점 -이는 예수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한다.- 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이나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해명("사실 내막이 뭐냐면...")은
역사 속에서 계속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어떤 것이 가장 합당한지 판단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능성들에 대해서 검증해보라.
로마 당국이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을 훔쳤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질 때 왜 그들이 시신을 내놓지 못했는가? 제자들이 훔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자들이 날조를 했다면 그것으로 제자 자신들에게 일어난 태도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불과 3일 전만 해도 그들은 예수가 신세계질서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난 패배한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면 나중에 보여지는 그들의 소망과 그들이 용기 있게 공식적인 박해를 견딘 것과
그들이 설정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예수는 죽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단지 십자가 위에서 기절했으며 무덤에서 깨어났다는 소리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휴 숀필드(Hugh Schonfield)의 유월절 음모(The Passover Plot)이라는 책으로 대중화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작가는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으며 이것이 확실한 치명상이었을 것을 간과했다.
또한 로마군의 파병대는 입구를 덮은 거대한 돌과 함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부활한 예수가 탈출한 후 수 백 명의 의심 많은 목격자들에게 그가 죽음을 영원히 정복하였음을 확신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집단 환각이라는 말인가?
서로 다른 시간에 여러 장소에서 서로 광범위한 차이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환각이라면 필시 엄청난 환각일 것이다.
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겠으나 그를 동시에 본 오백 명을 속일 수가 있는가?
예수의 출현 현상은 부활 후 40일 만에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갑자기 동시에 멈추었는데 이것이 환각의 특성인가?

유일하게 만족할만한 설명은, 기록된 것과 같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예수의 메시아 됨을 받아들일 확고한 이유가 될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는 죄에 대한 속죄 물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수 없이는 진정한 평화와 (삶의) 방향에 대한 근거가 없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멀어(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수의 화해하는 사역에 의해서 이 멀어짐이 치유된다는 것은 그를 믿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 성경과 신약성경의 객관적 증거와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의 주관적 검증이라는 증거 사이에
예수가 스스로 주장한 것과 같은 분이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