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saiah_43 2011. 7. 10. 20:09



"겨울나비..
계절을 잘못 착각하고 태어나는 겨울나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나비들은 날개짓 한번 못해보고...

내가 북한이 아닌 이곳에 태어났더라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지..  ㅜㅜ"

탈북자 영화감독 김규민씨가 만든 영화 겨울나비.
북한의 참상을 보여주는 영화.







겨울나비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gyeoulnabi



상영정보

posted by isaiah_43 2011. 7. 10. 20:00


출처: http://cafe.daum.net/mchosanna/9GYL/135 2009년에 올린 글

posted by isaiah_43 2011. 7. 9. 20:26

핀하스 7.10-16
민수기25:10-29:40 /왕상18:45-19:21 /롬1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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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7:6-27:23
5  28:1-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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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9:12-29:40

마토트 7.17-23
민수기30:1-32:42 /렘1:1-2:3 /마5:33-37
1  30:1-16
2  3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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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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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이 7.24-30
민수기33:1-36:13 /렘2:4-28 ; 33:4 / 약4:1-12
1  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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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바림 7.31-8.6
신명기1:1-3:22 /사1:1-27 / 행9:1-21 / 딤전3:1-7
1  1:1-11
2  1:12-21
3  1:22-38
4  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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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31-3:14
7  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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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iah_43 2011. 7. 9. 15:52

유대인들의 첫 번째 메시아: 적그리스도 (2)

 출처: http://blog.daum.net/dfgiyo/6070001


저번에 올린 게시물에 이어서 계속 유대인들의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TRUE TORAH JEWS AGAINST ZIONISM 웹사이트에 있는 글을 몇 편 소개합니다.
 [번역]zionists promoting anti-semitism-SP.zip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한다
(ZIONISM PROMOTES ANTI-SEMITISM)


근대 시오니즘의 창시자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은 유대인들의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그의 대의(大義)에 반유대주의(反-)가 도움이 될 것임을 인식했다. 그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것(역:유대인 문제)을 국제적 정치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헤르츨은 시오니즘이 세계로부터 환영받을 만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기록하였다. 그의 "일기" 19 페이지에서 헤르츨은 "반유대주의는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가 되고, 반유대적 국가들은 우리의 동맹이 될 것"이라고 기술한다.


시온주의자들은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반유대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이민 기록에 대한 조사 결과는 반유대주의가 고조되는 시기에는 시오니스트 국가(역:이스라엘 국가)로의 이민이 증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에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유입이 없다면 유대인은 10 년 내에 시오니스트 국가의 소수민족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국가에서 유대민족의 주류성을 유지하려는 목적 하에서,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이 "도피처"를 찾아서 고향을 떠나도록 "부추기려고" 세계 각지에서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유대인을 향한 증오언동과 증오범죄는 극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 터키: 두 곳의 유대회당(synagogues)에서 끔찍한 자살폭탄 테러로 25 명 사망, 수백 명 부상.
- 영국: 런던 경시청은 최근 수상한 "관광객" 단체가 비디오로 런던 유대인 지역의 건물들을 은밀하게 촬영했다는 경찰정보에 따라 영국의 유대인 사회에 테러공격에 직면했음을 경고.
- 프랑스: 프랑스의 반유대주의 파도 속에서 최근의 사건--파리 근교의 유대인 학교에 대한 방화 공격 이후 경계주의보를 발령
- BBC - 영국: "지난 몇 주간, 유럽연합 시민들이 이스라엘을 세계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유럽연합 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스라엘인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반유대적 법령들은 유럽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안트워프와 런던에서 베를린과 이스탄불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2003 년 11 월 17 일 시오니즘의 지도자인 이스라엘의 수상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은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의 거센 파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 초창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 온 시오니즘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최고의 해결책은 이스라엘로의 이민이다. 그곳은 유대인들이 유대인으로서 살 수 있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장소이다."라고 말했다.

2004 년 7 월 28 일: 반유대 정서의 결과로 200 명의 프랑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거세지는 반유대주의를 피하여 이스라엘로 도피하라고 프랑스 유대인들을 설득했던 이스라엘의 수상 아리엘 샤론은 그들에게 몸소 환영인사를 하였다.


2004 년 7 월 18 일, 이스라엘 수상 아리엘 샤론은 프랑스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피해 이스라엘로 즉시 돌아오라고 설득을 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미국출신 유대인 협회(American Jewish Association)의 미팅에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최대한 빨리 이스라엘로 재배치 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경우는 그곳의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의 증가에 따른 "필수조치"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오니즘은 무엇인가?

"시오니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이다.

시오니즘은 1896 년 테오도어 헤르츨에 의해서 창시되었으며 그의 목표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 또는 시온(예루살렘 및 이스라엘 땅과 동의어)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시오니즘"이라는 명칭은 시온산(hill Zion)에서 유래하며 이 언덕은 예루살렘 성전이 위치하던 곳이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자를 "시오니스트"라고 한다.

이 웹사이트의 목적은, 전통적인 유대인이 시오니즘(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감)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와 시오니즘의 이데올로기가 전통적 유대 율법과 신앙 및 거룩한 토라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반(反)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테오도어 헤르츨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한 시오니스트의 전쟁

(THE ZIONIST WAR ON NAZI GERMANY)

히틀러가 모두 인정하는 독일의 지도자가 되고 독일 유대인들에 대한 권리의 제한을 시작하기 한참 전인 1933 년 3 월,  미국 유대 회의(American Jewish Congress)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독일 상품을 보이콧하는 대규모 반대시위를 발표한다.



런던 데일리 익스프레스 1933. 3. 24

런던의 데일리 익스프레스지는 1933 년 3 월 24 일 기사를 게재하여 유대인들이 이미 독일을 상대로 보이콧을 시작하였음을 발표하고 다가오는 "성전(聖戰)"에 대한 설명을 한다.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각지의 유대인들이 독일 상품을 보이콧하고 독일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여 시위를 할 것을 설득한다.

독일은 "이제 무역과 재정 및 산업에 대한 국제적 보이콧에 직면하였으며....런던, 뉴욕, 파리, 바르샤바에서는 유대인 사업가들이 경제 십자군을 출병하기 위해 단합했다"고 익스프레스지는 보도했다.

기사는 계속된다, "반대시위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33 년 3 월 27 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계획된 반대집회에 4만 명의 시위자들이 참가하였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헤드라인: "40,000 명이 히틀러에 대항하여 이곳에서 반대를 외치다")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집회와 반대 가두행진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반독일 캠페인의 격렬함은, 캠페인을 중지하지 않으면 유대인 소유의 상점에 대한 일일(one-day) 보이콧을 실시할 것이라고 히틀러 정부가 공언하게 할 정도였다.

유대인 상점과 상품에 대한 보이콧을 명하는 히틀러의 1933 년 3 월 28 일 연설은 독일을 상대로 한 세계 각지 유대 지도층의 선전포고에 대한 직접적인 회답이었다.

같은 시기인 1933 년 봄, 더 많은 독일 유대인의 이민과 자본이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게 하려는 목적에서, 독일 정부와 시온니즘 운동의 비공식적 협력이 독일과 세계 각지에서 시작된다.

독일에서의 거세지는 반유대주의와 보이콧에 반응한 독일정부는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의 손에 놀아난 셈이었다. 보이콧의 결과로 반유대주의가 고조되기 이전에는, 전 세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을 조장하는 시오니스트의 명분은 독일 유대인 대다수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의 나치당과 협력하여 독일의 상황을 유대인들에게 최대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인구를 주류로 만들려는 목표를 위한 시오니스트 계획의 일부였다.

"나치 정부라는 것은 유럽인들은 구제불능의 반유대주의자들이며 팔레스타인이 유일한 해답임을 '증명'하였으므로, 어떠한 의도나 목적에 있어서도 나치 정부는 시오니즘의 역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사건이었다. 시오니즘은 아돌프 히틀러와의 협력과 권모술수만을 토대로 하여 유대인의 압도적인 다수를 대표하는 위치로 올라섰다."[1]

________________________

출처: [1] Barnes Review, "The Jewish Declaration of War on Nazi Germany, The Economic Boycott of 1933"
Other Resources of interest: The Transfer Agreement: The Dramatic Story of the Pact Between the Third Reich and Jewish Palestine,
by Edwin Black
(역) 관련 글: NAZI SUPPORT OF ZIONISM

 



시오니스트들에게 묻는 열 가지 질문
(TEN QUESTIONS TO THE ZIONISTS)

미카엘 도프 바이스만들 랍비 ZT"L, 니트라 예시바 랍비대학 학장
(Rabbi Michael Dov Weissmandl ZT"L Dean of Nitra Yeshiva)


1. 1941년, 그리고 1942년에 다시 한번, 유대인들이 독일과 프랑스 점령지의 재산권을 포기하는 조건 및 다음과 같은 조건 하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할 것을 독일의 게슈타포가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제안했던 것이 사실인가.

a) 어떠한 추방자도 스페인으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b) 모든 추방자는 정착을 위해 스페인으로부터 미국이나 영연방 식민지로 이동될 것이며; 입국비자는 현지의 유대인들에 의해 준비된다.
c) 에이전시(the Agency)는 각 가구당 1,000달러의 몸값을 제공하며, 일일 1,000가구의 비율로 스페인 국경에 도착하는 즉시 지불한다.

 


미카엘 도프 바이스만들 랍비 ZT"L

2. 스위스와 터키의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게슈타포와 이슬람 최고 지도자(the Mufti)와의 협정에 근거하여 추방자들의 목적지에서 팔레스타인이 제외되었음을 명백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이러한 제의를 받았던 것이 사실인가.

3.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이를 거절하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인가.

a) 오직 팔레스타인만이 추방자들의 목적지로 고려될 수 있다.
b) 종전 후에 승전 동맹국들이 "유대국가" 안(案)에 동의할 수 있도록 유럽의 유대인들은 다른 곳의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고난과 죽음을 당해야 한다.
c)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

4. 게슈타포의 제안을 거절하면 그 대안은 가스실이 될 것임을 숙지한 상태에서 그들이 답변을 결정한 것이 사실인가.

5. 1944년 헝가리에서의 추방 시기에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으며 그 제안에 의해서 모든 헝가리 유대인들이 구해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인가.

6. (가스실에서 수백만이 죽은 후에도) 동일한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또다시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7. 전쟁 중 살상행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독일과의 외교 협상의 일환으로 270 명의 영국 의원들이 50만 명의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탈출시켜 영국 식민지에 재정착시키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 사실인가.

8. 시오니즘 지도자들은 "오직 팔레스타인으로!"라는 발언을 하며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이 사실인가.

9. 영국 정부가 300 명의 랍비와 그들의 가족에게 도피 경로로 터키를 경유하는 마우리티우스 식민지(the Colony of Mauritius)의 비자를 승인했으나, "유대인 대표기관"(Jewish Agency)의 지도자들은 이 계획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일편단심에 어긋나며 300 명의 랍비와 그 가족들은 가스실에서 죽어야 한다는 논평을 하며 계획을 사보타쥬했던 것이 사실인가.

10. 위에 언급한 협상들의 진행과정 중, 첫 번째 "유대인 정치가"였던 하임 바이츠만(Chaim Weitzman)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인가: "유대국가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은 애당초부터 팔레스타인에 있으며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바이츠만의 지지자 그린바움(Greenbaum)은 다음과 같은 논평으로 이 발언을 더욱 강조한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암소 한 마리의 가치는 유럽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의 가치보다 더 크다."

"유대인 정치가들"(Jewish statesmen)로 알려진 이 타락한 자들에게 이상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더 할 수도 있으나 당분간 그들이 이 열 개의 질문에 답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겠다.

이들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그들의 훌륭한 선견지명으로써 하나님께서 명한 복종과 정치적 순종의 2000 년을 끝장낼 길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공격적 호전성으로 반유대주의의 불길에 부채질을 했으며 나치 독일과 그 주변국가들의 유대혐오적 결속을 조작해내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1933년 독일에 대한 무책임한 보이콧을 기획했던 "정치가들"(statesmen)이다. 이 보이콧은 마치 코끼리를 공격하는 파리마냥 독일을 아프게 했으나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미국과 영국이 히틀러라는 광견과 평화적 관계에 있었을 때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유일하게 현실적이었던 정치적 조화의 방법론을 팽개치고 보이콧을 함으로써 독일 지도자의 광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 유대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건 이후 이들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쇠약한 난민들을 전쟁난민 수용소로 끌어들여 굶주림과 박탈 상태에 놔둔 채 오직 그들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적만을 위해서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장소로의 재배치를 거부한다.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적개심을 품게 된 유대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영국과 같은 세계적인 강대국들과 수천만 아랍인들을 상대로 한 헛된 전쟁을 계속해서 선동해왔다.

그리고 이들 동일한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또 다른 전면전 직전의 상황이 거룩한 땅(역: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지게끔 전 세계를 경솔하게 몰아가고 있다.

그 결과로 미국, 유럽, 아랍 또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이들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의 관심 밖이다. 서방세계에서 고조되는 반유대주의는 그들의 "정치력"이 빚어내는 결과물이다.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수많은 유대인을 꾀어, 토라(Torah)와 선현들에 대한 헌신을 시오니즘을 창시한 악당들에 대한 헌신으로 변질시켰다. 헤르츨이 원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유대인들을 개종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는 이 방법이 유대인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깨닫고 만족할 만한 대체물로 시오니즘을 획책해 낸 것이다.

역사를 보면 이와 똑같은 타입의 "정치가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침에 반대하고 첫 번째 성전의 파괴 시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굴복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그로부터 5 세기 후에는 요하난 벤 자카이(Yochonon Ben Zakai; 서기 30-90) 랍비가 유혈(流血)을 피하기 위해서 로마인 디도(Titus)에게 항복할 것을 백성에게 탄원한다. "정치가들"은 이 탄원을 거부하며 결국 로마인들에 의해서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다. 그리고 오늘날, 지난 오십 년 동안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우리 선현들의 인도(引導)를 묵살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 그들의 정책을 계속 고수해 왔다. 그들은 언제쯤 그만둘 것인가? 미국의 유대인들이 전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차라리 독일이 전멸하기 전에 전쟁을 포기했던 나치의 괴물들이 더 상식적이었다.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은 창조주께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내리신 성스러운 맹세를 비웃는다. 우리의 토라 Tractate Ksubos, folio 111에서, 창조주께서는 (그분은 거룩하시니) 유대인들에게 설사 그럴만한 힘이 있더라도 거룩한 땅을 힘으로 차지하지 말 것과 열방(列邦)에 거슬러 반역하지 말 것을 맹세하셨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맹세를 훼손한다면 유대인들의 육체는 숲 속의 짐승들과 같은 "공공의 재산"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는 우리의 토라의 말씀이며 이러한 개념들은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의 "이게레스 테이몬"(Igeres Teimon), "브엘 하골라"(Be'er HaGola), "아하바스 예호노손"(Ahavas Yehonosson) 및 하삼 소포(Chasam Sofer)의 "토라 모세"(Toras Moshe)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떠오르던 당시에, 메시아에 의한 종국적인 구원이라는 믿음을 거스르는 시오니즘의 고약한 배도로 인한 유대인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진노의 메신저로 그를 보냈다고 모든 유럽의 현자들과 성자들이 선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디시 - 자비로운 아버지들의 자비로운 아들들이여 거룩한 유대인의 피를 얼마나 더 흘려야 하는가?

유일한 해결책은: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미국의 중재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신론적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을 유대 지도자의 자리에서 퇴출시켜야 하며 우리 선현들의 신실한 인도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닌 각국이 이민의 문을 열기를 간청한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평화적이고 비(非)시오니스트적인 종교적 유대인들(특히 원주민)과 그에 상응하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을 대표하여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우호적 합의를 목표로 영국 및 아랍인들과 대면협상을 해야 한다.

모든 유대인은 거룩하신 창조주께 기도할 의무가 있다. 우리의 힘은 모두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가 솔직 담백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속죄일에 만찬을 주실 것을 간구하지 말라. 손에 벌레를 쥔 채로 세정식(洗淨式)을 행하지 말라.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강도와 같은 보호받을 여지가 없는 지위를 피해야 한다. 우리는 시오니즘과 그 열매가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그리고 우리가 보내심 받은 메시아에 의해서 구원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죄수는 형기를 마치거나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대통령의 사면을 받는 것이다. 그가 탈옥을 시도하다가 체포되면 그의 형기는 늘어난다. 체포될 때 매를 맞는 것은 둘째치고 말이다.

신실한 유대인들이여, 삼천오백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갖 시험 속에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토라의 믿음을 확고히 지키기 위해 피와 눈물의 바다를 건너왔다. 우리가 자신과 우리의 여자와 아이들과 유대 민족을 불쌍히 여긴다면 오늘날 우리의 황금 유산을 지키려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왕들의 왕에 의해 유배의 형벌을 선고받은 것이다. 영원히 거룩하신 그분은 때가 올 때까지 또는 우리가 회개로 그분의 사면을 받을 자격이 될 때까지 우리가 겸손히 감사함으로써 유배를 받아들이도록 판결하신 것이며, 만약 우리가 힘으로 유배를 종식시킨다면 선현들이 미리 경고한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체포하시고, 우리의 형기는 늘어나며 더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의 분파들은 과거 여러 차례 거짓 메시아에 의해 속아왔다. 그러나 이들 거짓 메시아들 중 어떤 자도 시오니즘의 거짓말과 같은 정도로 오류적이고 현혹적이지는 않았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형벌도 시오니즘을 신임하는 것에 따르는 형벌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유배형의 감형을 바란다면 우리는 회개를 하고, 영육의 모든 차원에서 안식일과 가족의 순수성 율법(laws of family purity) 및 토라 공부를 준행(遵行)함으로써 탄원을 해야 한다.

유대 역사상 어떤 시대에도 (심지어는 여로보암이나 아합의 때에도) 오늘날과 같이 적개심이 가득찬 무신론자들이 유대인들의 지도층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자.

이런 부정하고 "사악한" 지도자들을 대변자로 용납하는 우리가 어떻게 전능하신 분의 자비를 간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의 각 계층과 우리의 가운데를 정결케 하고, 회개하고, 계명을 지키고 기도하여 그분 홀로 우리를 곧 구원하시도록 전능하신 분께 간구하자.




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
(ZIONISM AND ANTI-SEMITISM)


우리는,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의 구원자나 안전을 보장해주는 자들이 아니라 선동자들이며 거룩한 땅과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당하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그들임을 우리 유대 형제들이 깨달을 것을 호소한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국가가 유대인들의 보호자라는 아이디어는 아마도 유대인들에게 자행된 역사상 최악의 사기일 것이다. 실로, 1945년 이후 시오니스트 국가(역:이스라엘)만큼 유대인들이 물리적인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가?

유대인들은 종교 율법상 그들이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 나라에 충성할 의무가 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추방당했던 약 이천 년 전 이후로 우리는 우리가 거주하는 국가들에 정결할 정도로 충성하도록 명을 받았다. 성경의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인 예레미야는 그의 책 29장에서 모든 유배자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7절: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로잡혀 가게 하였던 그 성읍의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주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의 화평 가운데서 너희가 화평을 지닐 것임이라." 이 말씀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바로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도덕적 주춧돌이 되어왔다.

참된 토라 유대인들(Torah-true Jews)은 역사적인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조화와 평화 속에서 이웃과 살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우리 조상의 이름을 오용하여 신권으로 부여된 유대인의 유산인 토라의 영원한 가치를 쇼비니즘적 국가주의의 이상(理想)으로 바꿔치기 한 자들이 행하는 폭력적인 정책과 행위에 개탄한다.

명분에 힘을 얻기 위해서 가능한 곳 어디에서나 반유대주의를 흔들어 일깨우고, 어디서든지 유대인들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것이 시오니즘의 오래된 의도이다. 시오니즘의 의도는 그 초창기에서부터, 고의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고 꾸며낸 공포 속에서 그것을 시오니즘 국가의 존립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극도로 고도화된 마키아벨리즘이다. 고로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을 향한 증오와 유대인의 고통이라는 토양에서 번창하는 것이며 유대인들을 계속되는 공포 속에 두어서 이용하고, 그들이 시오니즘의 진정한 본성을 알 수 없게 하여 시오니스트 국가를 구원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정치적 시오니즘에 의한 반유대주의
(ANTI-SEMITISM BY POLITICAL ZIONISM)

시오니스트들과 다른 자들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나, 1차대전 이후 유럽 유대인 사회의 혁명적(revolutionary), 세속적(secular), 배교적(apostate) 성질들이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유대인 일반에 대한 수많은 비유대인의 증오를 유발시켰다. 1924 년 랑스베르그(Lansberg)의 요새에서 복역 중이던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한다. 1933 년 독일의 수상이 되었을 때 그는 괴벨스(Goebbels)와 로젠베르크(Rosenberg), 슈트라이허(Streicher)의 도움을 받는다. 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선언이 나왔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1914-1918 년의 전쟁에서 독일 패배의 원흉이었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전후 독일의 끔찍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없으며;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더러운 개들이다; 그들은 독일의 문제에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독일에는 너무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

시오니즘의 창설자이자 배교자인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은 정치적 시오니즘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대인 증오를 심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여기 그가 남긴 "진주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유대인들의 고난이 ... 더 심해져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 이는 우리 계획의 실현을 돕는다 ...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 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의 부(富)를 제거(liquidate)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 그렇게 함으로써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과 억압의 강도를 높여 우리를 도울 것이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될 것이다." (그의 일기 1편, 16페이지에서)

이 몽상가의 선명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말을 더 들어 보자, 그의 일기 1편, 68페이지에서:

대중의 무의식 속에 깊이 침투된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반유대주의는 유대 민족성 형성과, 민족의 동화(同化)로 이어질 군중들에 의한 교육을 촉진할 것이다. 이 교육은 고난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으며 유대인들은 그에 적응할 것이다.

유대인을 인간 이하로 보는 증오에 찬 견해들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꼭 히틀러나 괴벨스, 로젠베르크, 슈트라이허와 같은 나치 이론가들이 있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시오니스트 예헤즈켈 카우프만(Yehezkel Kaufman)의 1933 년 저술에서 언급되는 정치적 시오니스트들의 발언들을 단순히 각색한 것뿐이었다.

1920 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인 성명이 나왔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전쟁에 뒤따른 혼란을 유발했으며 유대인은 독일인과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없고 독일 국민은 유대인들이 정사에 끼어드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는 논지의 이 성명은 '나의 투쟁'의 히틀러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세계 시오니스트 기구(World Zionist Organization) 및 세계 유대인 의회(World Jewish Congress)의 수장이었고 이론의 여지 없이 이스라엘 수상 다음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적 시오니스트, 나훔 골드만(Nahum Goldmann)에 의해서 작성되었던 것이다.

1921 년 독일, 독일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우리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다 ... 너희 중에 거하는 이민족이며 우리는...그렇게 지내기를 원한다. 유대인은 절대로 충성하는 독일인이 될 수 없다. 이방의 땅을 조국이라고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유대인들에 대한 반역자이다."

이토록 부조리한 발언을 한 자는 누구인가? 그는 야콥 클라츠킨(Jacob Klatzkin)이라는 자로, 독일의 정치적 시오니즘 이데올로기 신봉자 두 명 중 이인자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유대인들이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전적으로 누리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국가를 세우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지지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유대인 사회들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한편, 베를린 시오니스트 집회의 공개 연설에서 "독일에는...너무 많은 유대인이 있다"고 발언한 자는 누구인가? 히틀러인가 괴벨스인가? 아니다, 그는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이 연설은 1920 년에 출판되며, 이는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집필하기 4 년 전이다.

이들 시오니스트 고위 정치지도자들, 즉 유대인들에게서 떠난 배도자들이 이러한 악랄한 배신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일반 시오니스트 유대인들 중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의 선전원,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내가 했던 말들은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이 했던 말의 메아리였을 뿐이다." 그의 증언은 명백하게 진실이다.

히틀러와 로젠베르크, 괴벨스, 슈트라이허 외에도 다수의 나치 지도자들은 독일의 유대인들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시오니스트들의 발언을 이용했다. 시오니즘 지도자들은 조작된 공포 속에서 반유대주의를 지목하여 자신들의 우상숭배적이고 반유대적인 대의(大義)에 힘을 싣기 위해서 고조된 반유대주의를 유지시키는 활동을 오늘날까지 지속해왔다. 1963 년 당시 유대인 대표기구의 의장이었던 모세 샤렛(Moshe Sharett)은 제 38 회 스칸디나비아 청년 연합(Scandinavian Youth Federation)의 연례 회의에서, 다수의 유대인들이 누리는 자유는 시오니즘을 위태롭게 한다고 발언했으며, 제 26 회 세계 시오니스트 회의(World Zionist Congress)에서는 미국의 반유대 감정이 느슨해짐에 따라 유대인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대표단 앞에서 발언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벤 구리온(Ben Gurion)은, "...나는 반유대주의에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반대하지는 않는다."라고 언명하였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이든 비유대인들이든 간에 시오니즘의 사악함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반유대주의자"라는 비장의 인종주의 카드를 편리하게 꺼내 든다.

이차대전 당시 이츠학 샤미르(Yitzchak Shamir)가 이끌었던, 베긴(Begin)의 지하조직(Irgun)의 분파였던 레히(Lehi) 조직은 나치당과의 동맹을 모색하였다. 레히가 나치와 접촉하면서 남긴 기록에서 다음을 인용한다: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사상에 기반하여 독일제국과의 조약에 의해서 역사적인 유대 국가를 수립한다면 독일에게는 근동지역에서 향후의 입지를 강화하는 이익이 있을 것이다 ... 팔레스타인의 NMO는 독일의 편에 서서 전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 독일제국 수상의 최근 연설에서 히틀러 각하가 영국을 고립시키고 격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결합이나 동맹도 성립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노선 위에서 이스라엘 자유 운동(Israeli freedom movement)의 협력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시오니스트들이 자유와 평등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이런 언사(言事)는 기이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대인과 유대교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파괴하는 시오니즘의 뿌리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발언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예상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은 심지어 나치즘이 생기기 이전부터 나치즘과 전반적으로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은 세계의 다른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며 그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대인 자신들의 국가가 새롭게 탄생하면 유대인들의 이미지가 "쓸모없고" "기생충" 같은 것으로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관념들은 아돌프 히틀러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이차대전 당시와 그 이후에 유대인들을 구하는 일을 어떻게 매우 힘들게 만들었는지를 말해주는 방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많은 개인 및 기관들이 유대인들을 서방국가로 탈출시키려고 시도하는 와중에서도 시오니스트들은 열심히 이를 방해하였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인구를 형성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제 3 국으로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웠으며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서방세력을 향해 고집을 부렸다. 저명한 시오니스트인 이츠학 그린바움(Yitzchak Greenbaum)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암소 한 마리의 가치는 모든 폴란드 유대인들의 가치를 상회한다"고 선언했다. 악명 높은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은 1938 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독일의 아이들을 영국으로 데려가서 모두 구하는 방안과 아이들 중 절반만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는 방안이 있다면 나는 두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 난민을 담당하고 있었던 시오니즘의 "종교적" 지도자인 클라우스너(Klaussner) 랍비가 전후 1948 년 5 월 2 일 미국 유대인 회의(Jewish American Conference)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본인은 사람들을 팔레스타인으로 강제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확신한다...미국의 달러는 그들에게 지상 목표와 같이 보일 것이다. 본인은 "강제적"이라는 단어로써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의한다. 그 프로그램은 폴란드 유대인들의 철수와 '출애굽(Exodus)'의 역사에 기여했다...이 프로그램을 적용하려면 우리는 '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에 그들을 위해서 가능한 최대한 불편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두 번째 단계에서는 하가나[1]에 지시하여 유대인들을 시달리게 할 것이다."

==== 역:

1. Haganah; 이스라엘 정부 수립 이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영국 위임통치 기구인 'British Mandate for Palestine'에 속했던 무장 단체
시오니스트들이 그들의 국가가 유대인에게 안전한 도피처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차대전 이래로 영적, 육적 양 측면에서 시오니스트 국가만큼 유대인에게 위험한 곳은 없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시오니스트 국가가 수립된 이후 아랍 국가들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 공포를 조장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그들의 전술적 작업은 예멘, 모로코, 이라크,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모라드 아부 알나벨(Morad Abu al-Knabel)(모데하이 bomber)이라는 별칭을 가진 저명한 시오니스트인 모데하이 벤 포랏(Mordechai ben Porat)은 시오니스트 국가 수립 후 1949 년에서 1950 년까지의 기간에 유대인들이 이라크를 떠나도록 유도하는 법안들을 통과시키도록 이라크 관료들에게 뇌물을 공여하는 작업을 했었다는 것은 이라크의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오니스트들이 1950 년 3 월 바그다드의 유대회당에 폭발물을 설치함으로써 고조됐다. 이와 관련된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임 길라디(Naim Giladi)씨의 문서 기록에는 유대인들이 시오니스트 국가로 떠나도록 도발하기 위해서 시오니스트들이 1950 년 바그다드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시오니스트들은 그들의 정책들이 다른 나라의 유대인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 시오니스트들이 유럽 국가들의 죄악을 일일이 백일하에 고발할 때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을 향한 적대감이 형성될 것을 우려한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논한 것과 같이, 그들은 유대인 사회가 시오니스트 낙원의 "안전한 도피처"라는 "구원"으로 몰려들기를 헛되이 바라면서 그러한 정황을 먹고 사는 것이며; 이 시오니스트의 낙원에서는 시오니스트 정권이 비유대인들을 거스르는 온갖 형태의 잔인한 도발을 함에 따라 유대인들은 항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다 최근에도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향 국가를 떠나도록 고무시키는 온갖 기회를 모색해왔다. 시오니스트 정책의 결과에 따라서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이 드러나는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또는 경제적 고통과 혼란의 징조가 있을 때마다 시오니스트들은 무모하게도 그런 일을 일천 배나 확대시켜서 관련된 국가들에게 굴욕을 주고 동요시켜서 유대인들이 시오니스트 국가, 소위 유대인들의 "본향"(natural home)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구소련, 이집트와 같은 나라가 그러한 경우였다.

토라의 언약들은 언제나 성취된다. 다음 토라의 말씀은 하나님의 왕국이 설 때 그분의 적들은 대가를 치를 것을 증거하고 있다:

신명기 32: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 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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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uardian Volume two Issue 7
Satmar Grand Rebbe Joel Teitelbaum
The Jews of Batna, Aleria: A Study of Identity and Colonialism by Elizabeth Friedman.
The Jewish Communities of Morocco and the AIU by M. Laskier, State University, Albany, N.Y.
The Impact of Western European Education on the Jewish Millet of Baghdad by Maurice Sawdayee.
Outcaste Jewish Life in Southern Iran by Laurence D. Loeb. Gordon and Breach.
The Last Arab Jews. The Communities of Jerba, Tunisia by Abraham Udovitch and Lucette Valensi. Harwood Academic Publishers.
The GENOCIDE IN THE HOLY LAND (available for purchase on the site)
Ben Gurion's Scandals by Naeim Giladi (available for purchase on the site)





랍비들의 말

마이모니데스, 이게레스 테이만(Maimonides, Iggeres Teiman) - 예멘으로 보낸 서신


[마이모니데스가 예멘의 유대 사회에 보내는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은 거의 1,000년 전이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유대인들이 이것이 불러일으킬 결과에 직면할 것과 그들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영감으로 알고 유대인들에게 이를 (즉 세 가지 맹세를 범하는 것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아가 3:5에 기록한 것처럼 은유로써 그들이 이를 범하지 말 것을 맹세시켰듯이 나도 너희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노루와 들사슴으로 맹세하게 하노니 너희는 그것이 정말로 바람직할 때까지는 사랑하는 자를 일으키거나 깨우지 말지라.

그러한즉 너희 친애하는 형제들은 세 가지 맹세를 받아들여,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와 너희를 그분의 자비로 기억하사 유배지로부터 그분의 취할 몫을 모아 그분의 성전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도록 하고 우리를 그분이 친히 던져두신 어둠의 골짜기에서 구원하사 우리의 눈에서 어둠을 제하시고 우리의 마음에서 안개를 걷으실 참된 때가 될 때까지 사랑하는 자를 일으키지 말지라. 그러한 후 그분은 우리와 너희의 날에 이사야 9:1 이하의 말씀을 성취하실지니라. 어둠 속을 헤매는 그 나라는 큰 광명을 볼 것이며 그 빛은 죽음의 그림자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비치리라.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거슬러 일어나는 모든 자의 눈을 어둡게 하사 이사야 60:2 이하의 말씀을 성취하시리니 진실로 이르노니 어둠이 땅을 뒤덮고 안개가 나라들을 덮으나 하나님의 빛은 너희에게 비칠지니 너희는 그분의 명예를 드러낼 것이라.


마이모니데스
 




프라하의 마하랄, 베찰렐 로위(The Maharal of Prague, Rabbi Betzalel Lowy) 랍비

프라하의 마하랄(베찰렐 로위 랍비, 17 세기)은 설사 이방국가가 유대인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더라도 세 가지 확고한 맹세를 어기는 것을 금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저서 네차흐 이스로엘(Netzach Yisroel)에서 (24 장) 세가지 맹세가 변개되어 유배의 칙령이 변하면 안된다고 했으며 이에 더하여 아가 2:18에 대한 미드라시(midrash; 역: 토라에 대한 주석)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설사 열방이 유대인들을 끔찍한 고문으로 죽인다고 할지라도 유대인들은 맹세의 적용을 변경하지 못한다. 이것은 세 가지 맹세 전부에 관련된 것이며, 이해되어야만 한다." 고로 비록 이방국가의 허락이 있을지라도 유배 상태에서 이탈함은 금지되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로 개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같이, 강요와 죽음의 고통이 있더라도 세 가지 맹세를 범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아리에 레입 알터(Aryeh Leib Alter) 랍비

다음은 스파스 에메스(Sfas Emes)라고도 알려진 아리에 레입 알터 랍비가 시오니스즘의 초기에 쓴 서신이다:

사단이 임하여 세상을 혼란케 하는 것을 보라...두꺼운 장막이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므로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이민족 대중들에게 하는 약속에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지를 못하고 사람들은 세상적 기쁨으로 시오니스트들을 지원한다. 그들(역:시오니스트)은 심지어 유대인들을 그들(역:거주지의 이방인들)로부터 축출하라고 설득하기까지 한다. 분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적들을 돕고 있음을 알 것이다...

아리에 레입 알터





예헤즈겔 시라가 할버스탐(Yechezkel Shraga Halberstam) 랍비

폴란드의 거룩한 Sanzer 랍비의 아들인 위대한 시노바(Shinova) 출신 랍비는 100년 전 시오니즘의 초창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것을 알아야만 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하고 낭송을 할 때 그는 마음에서 세상의 우상숭배를 모두 없애야만 한다. 시오니즘도 우상숭배이다. 그는 그것도 역시 없애야 한다."





요셉 하임 조넨펠트 랍비 (Yosef Chaim Sonnenfeld)

그는 예루살렘의 정통파(Orthodox) 유대교 사회의 지도자이자 확고한 반시온주의자(反-)였다. 약 75 년 전 그는 순교한 야코브 이스로엘 데한 교수(Prof. Yakoov Yisroel DeHaan; 참여활동으로 인하여 시오니스트들에게 살해당함)와 함께 후세인 왕과 그의 아들들-이라크 국왕 파이살(Faisal)과 아미르 압둘라(Amir Abdullah)-을 예방한 대표단에 참가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사회의 입장을 그들에게 알렸다. 유대인 대표단은, 토라 유대인들(Torah Jewry)은 시오니스트의 거룩한 땅에 대한 주권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다. 조넨펠트 랍비는 이후 예루살렘에서 시오니스트의 괴뢰 "랍비 법정" 및 "최고 랍비들"에 대항하는 에이다 하카레디스(Eidah Hacharedis)의 반시온주의 랍비 법정을 세우고 수장인 최고 랍비에 임명된다.


요셉 하임 조넨펠트 랍비

[이 사건에 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서거 51주년에 (19 Adar 5692) 1932. 3. 27 돌아보는 가온 라브 요셉 하임 조넨펠트 (Z"tl)의 삶에서의 역사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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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년 이스라엘 땅(Eretz Yisroel)의 혼란 이후, 정통파 유대교 사회의 최고 랍비인 요셉 하임 조넨펠트 ZT"L 랍비는 아랍 주민들에게 유대인 사회와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감동적인 호소를 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산이나 아랍의 자산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이 없음을 확언한다.


아랍의 주요 신문과 Agudah Weekly의 Loshon Kodesh(Kol Yisroel 1929. 11. 22)에 아랍어로 실린 그의 호소문의 영문 번역.


조넨펠트 랍비는 쥬이쉬 가디언 1편(Jewish Guardian, vol. I)의 6호 간행물에 실린 그의 공개 선언문, "진리와 평화의 말(Words of Truth and Peace)"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유대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거주민들이 명예로써 거룩히 여기는 권리들을 다투려는 의도가 분명히 없다. 특히 유대인들이 성전산을 탈취하려 한다는 소문은 근거 없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토라가 요구하는 순결함이 부족했던 때로부터 주의 영이 함께 하시는 의로운 메시아께서 임하여 모든 피조물의 선을 위해 의로 다스리시고 우리에게 토라가 요구하는 순결함을 되돌려 주실 때까지는 유대인들이 성전산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금지되었다." (同書, 3 페이지)



토마스 마사릭 체코 대통령(요셉 하임 랍비 우측)과 함께 있는 고(故) 요셉 하임 조넨펠트 랍비(중앙), 1927년 4월 예루살렘 Meah Shearim 방문 당시


요셉 하임 조넨펠트 랍비와 야코브 이스로엘 데한 박사가 대표단과 함께 요르단의 압둘라(Abdullah) 국왕을 방문했을 당시 현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의 증조부인 헤자즈(Hejaz)의 후세인 왕에게 제출한 아랍어 메모랜덤의 영역 본

조넨펠트 랍비와 후세인 왕의 접견에 관한 내용 읽기



마이어 심하 오브 드빈스크(Meir Simcha of Dvinsk) 랍비

다음은 위대한 랍비, 마이어 심하 오브 드빈스크의 서신으로 그는 오르 소마야(Ohr Somayach)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졌다:

반역자들과 배반자들이 새로이 일어나 나라 세우기를 도모하고 모든 유배의 문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 약속을 하니 하나님께서는 부디 그분의 거룩한 처소에서 외치사 음성을 발하시기를.

나는 이 불안한 자들에 관한 일을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다... 우리는 헤르츨(Herzl)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매 이 시오니스트의 이상(理想)은 이스라엘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심하 오브 드빈스크 랍비


우리가 헤르츨과 노르다우(Nordau) 및 그들 도당의 허무한 말에 이끌리고 섞이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나는 미즈라히(Mizrachi; 역:종교적 시오니즘) 랍비들이 시오니스트 반역자들을 약화시키는 과업을 맡은 어떤 자들과도 손을 잡지 않는 것에 경악한다. 그들은 실제로 시오니스트들과 자신들을 옹호하고 가증스러운 시오니스트 운동에 반대하는 자들을 매도하며, 이스라엘의 유일한 희망이 성스러운 토라를 거부하는 시오니스트들에게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마이어 심하 하코헨(Meir Simcha Hakohen)

Oir Someach라는 제목의 저서로 알려진 마이어 심하, zt"l 랍비. 드빈스크(Dvinsk)의 랍비는 어떠한 말도 시오니스트의 위협에 의한 공포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발언했다. 다음은 그가 관련 주제로 발표한 선언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영역(英譯):

"주께서 높은 곳과 주의 거룩한 처소에서 굉음을 발하시고 그분의 음성을 내시니 반역자와 배반자들이 새로이 일어나 시온의 기초를 놓고 왕국을 세우려 하고 있다. 그들 시오니스트들은 깃발을 올려 가까운 앞날에 모든 고난과 재앙을 끝내고 이스라엘을 모든 고난으로부터 건진다는 약속으로 우리 유배자들을 모으고 있다.

이 불안한 자들에 관하여 나는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 불신자들이 무슨 말을 들어서 솟아 나오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누가 그들을 불렀으며 그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가 그 끝은 파멸과 헛됨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람의 손에 의한 구원을 바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를 유배로부터 구원한다는 말을 하며, 이 모든 일이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불처럼 사르는 영광과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인함이다.

하늘은 우리가 직접 때를 앞당기는 것을 금한다. 설사 왕국을 세우는 일이 기초적 계명이고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가 헤르츨 박사의 말을 따르라고 명할지라도 우리는 하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니, 이는 시오니스트의 이상(理想)이 이스라엘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무는 헤르츨과 노르다우(Nordau)와 그들 음모의 허무한 말에 이끌리거나 어울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즈라히(Mizrachi; 역: 종교적 시오니즘) 랍비들이 모든 서약한 자들과 합세하여 반역자들을 약화시키는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지는 않고 그 대신 우리 선생들의 말을 부인하는 모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들(역:미즈라히 랍비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유일한 희망이 거룩한 토라를 거부하는 시오니스트들로부터 나오는 것인 양 시오니스트들을 옹호하고 마침내는 이 가증한 운동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뒤쫓고 매도할 것이다.

다윗 왕은 "내가 범죄자들을 보고 슬퍼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나이다."라고 부르짖어 외쳤다. 흙으로 그들의 입을 봉하사 이는 그들이 배도한 범죄자들보다 낫지 아니함이니이다.

출처: "The Transformation" The Voice of Torah, pp 183-186

히브리어 원문의 사본:

 

 

 

 

Q&A에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갈 시기를 어떻게 알게 될 것인가요?

톰(Tom) H.:
친애하는 랍비께,
인사 드립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갈 시기를 어떻게 알게 될 것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친애하는 톰에게,
유대인들은 먼저 메시아가 오고 난 후에 모든 유대인이 거룩한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언제나 믿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인도 아래에서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메시아를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이사야 11 장을 보십시오. 12 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니;" 또한 람밤 멜라킴(Rambam Melachim) 11 장 1 절을 보십시오: "메시아 왕께서 종국에(eventually) 일어나 다윗 가문의 왕권을 예전의 위상으로 회복하시며 성전을 세우고 이스라엘의 유배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탈무드 (Ksubos 111a) 또한 오늘날 유대인들은 거룩한 땅을 되찾는 것을 금지한 맹세 아래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땅(Eretz Yisroel)을 되찾는 것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메시아께서 유배가 끝나고 맹세의 강제력이 다하였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는 모든 유대인들을 회개시키고 토라의 율법을 성취할 것입니다. (Rambam, Melachim 11:4) 이는 실로 어려운 과제로서 어떠한 거짓 메시아도 이를 성취하고 세상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일을 행하는 사람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메시아로 임명된 것입니다.

사트말 라브(Satmar Rav)는 바요엘 모세(Vayoel Moshe) 48, 80 장에서, 람밤(Rambam)은 유대인 전원(全員)의 회개를 메시아 조건(criterion)으로 삼음으로써 가짜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닫았다고 언급합니다. 반면에, 모든 일을 기사과 이적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때로는 거짓 선지자에게도 이적으로 사람들을 속일만한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Devarim 13:3)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을 회개(teshuva)시키는 일은 실로 기념비적인 과업으로, 세상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떤 자도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해낸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명백한 징표입니다.

메시아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은 우리가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며, 고로 특정인을 메시아로 내세우지도 못하는 시오니즘과 같은 운동으로 거룩한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입니다.

귀하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허쉬 로웬탈(Hersh Lowenthal), Jews Against Zionism

 

시오니스트 유대인의 비율

로이드 N.
2007. 12. 19

전 세계의 유대인 중 자신을 시오니스트로 여기는 유대인은 몇 퍼센트나 됩니까?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토라를 거스르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에게 유대인의 자격이 있다는 겁니까?
이곳 미주리의 St. 조셉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면담할 수 있는 랍비가 계신지요?
감사합니다.

친애하는 로이드씨,
전 세계에는 약 1,3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으며 그 중 540만 명이 시오니스트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45 퍼센트는 세속적이며, 35 퍼센트는 전통적(traditional) 유대교, 8 퍼센트는 극단적 정통파(ultra-Orthodox), 그리고 9 퍼센트는 타 종교에 속하는 유대인들입니다. 극단적 정통파 유대인들은 대부분 시오니즘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92%의 인구, 즉 4백96만은 시오니스트로 추정됩니다. 미국에는 5백만의 유대인이 살고 있으며, 최근 조사에 따르면 35 세 이하의 미국 유대인들 중 유대 국가라는 개념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절반 정도일 뿐입니다. 더 높은 연령대에서 이 비율(역:유대 국가에 찬성하는 인구)은 더 높아집니다. 전체에서 약 60% 정도를 시오니스트라고 추정한다면 300만 명입니다.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미국의 극단적 정통파 유대인들의 인구비는 15%에 가깝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추세도 미국과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전 세계에는 전체의 73%인 952만 명의 시오니스트들이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유대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오니스트들은 유대교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유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인트 조셉에 알고 있는 랍비는 없으나 세인트 루이스에는...[후략]

히르쉬 로웬탈(Hersh Lowenthal)




posted by isaiah_43 2011. 7. 9. 15:40

유대인들의 첫 번째 메시아/ 적그리스도

  출처: http://blog.daum.net/dfgiyo/6069374


"내년엔 적그리스도가 나온다 합니다. 당연히 싸워야할 존재입니다.
바로 이슬람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12번째 이맘이라고 합니다.
걔네들 적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구요."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이러한 인식 하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는지 있는지 상상을 해봤습니다.

1. 적그리스도는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증오하고 적대시 하는 인물이다.

2. 이슬람의 배경으로 나오는 그는 이스라엘 및 서방세력에 적대적인
이슬람, 러시아, 중국 등의 세력과 제휴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성경에 예언된 아마겟돈 전쟁, 즉 3차 대전이 일어난다.

3. 그는 이스라엘과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적대적 세력이므로 기독교인이 힘을 합쳐 맞서 싸워야 한다.

여기까지는 좋으나 저는 시나리오가 더 진행된다고 봅니다.

4. 한 영웅적 인물이 나와서 적그리스도를 죽이고 전쟁을 종식시켜 이스라엘과 세계를 구한다.

5.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세계의 구세주 그리스도로 선포되어 각종 문제를 해결하며
평화 속에서 인류의 참된 영적 각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6.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성경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은가? 예수의 재림은, 엘리야의 재림이 실상은 세례요한이었던 것과 같은 비유였다.
영적으로 앞서고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이스라엘의 랍비들과 가톨릭의 사제들이 증거 하는 것을 들으라.
적그리스도를 죽이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세계와 종교를 통합하여
참된 영적인 각성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재림예수와 함께 천년왕국의 건설에 참여하자.

사단의 올무에 보기 좋게 걸려버린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계획입니다.
전 인류와 특히 이스라엘의 구세주로 와서 왕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자가 지금 이 순간에 오거나,
인류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참아낸 정도의 위기라면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상기해 보시길)
자신의 구세주가 사람들에게 절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사단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획을 관철시키고 원하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들의 영역에마저 재앙을 일으키는
사단의 제자들의 수법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가짜 환난을 조작할 것이며
그 환난은 자연재해, 기근, 역병, 경제공황, 전쟁 등 각종 재앙의 종합선물세트로서
그 재앙의 강도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 특히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멸망의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 환난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관을 토대로 성경을 모방하여 조작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리드하는 자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적그리스도로 선포될 것이나
이 자는 성경이 지목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닌 사단이 꾸며낸 가짜 적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인류와 이스라엘이 빠진 위기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의 구원자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적인 정치적 지도자로서 오며
그는 메시아, 재림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기독교를 적대하고 멸하려는 자이지만
이 조건만으로는 사단의 덫을 판별해낼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임하는 사건(유대인의 메시아의 초림/배도한 교회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예언에 들어맞는 모습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혼란을 초래할 것인데 그것은 사단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예: 큰 전쟁의 끝에 온다. - 곡과 마곡 對 아마겟돈;
이스라엘의 적을 멸함; 성전과 율법을 회복함;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림 등등)
적그리스도가 오는 모습을 성경의 예언에 끼워 맞추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이 어떠한 종교적 교리들을 준비해왔고 이용할 것인지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판별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이 있는 것과 같이
적그리스도를 판별하기 위해서도 여러 조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이거나 최소한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로
(다윗의 혈통을 명시적으로 주장할 것입니다),
이슬람과 같은 적대적 세력으로 드러나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거짓목자로 양의 가죽을 쓰고 오는 이리라는 점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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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ewfaq.org/mashiach.htm
마시아(Mashiach): 메시아(The Messiah)

• 마시아(메시아)는 상고시대로부터 유대교에 있던 개념이다.

• 마시아는 구원자(savior)가 아니라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인간(human) 지도자이다.
• 마시아가 올 때에 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 성경은 마시아가 성취할 몇몇 과제들을 밝히고 있다.
• 예수는 이 과제들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나는 마시아의 오심을 온전한 믿음으로 믿으며 비록 그가 지체할지라도 나는 매일 그를 고대한다.

- 람밤(Rambam)의 신앙 13개조 중 제 12 조.




유대교의 메시아 개념(Messianic Idea).

마시아(mashiach)의 도래는 전통적 유대교의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람밤의 신앙 13개조[1]의 일부이며 유대교 신앙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 요건이 된다.
매일 세 번씩 낭송되는 셰모네 에스레이의 기도(hemoneh Esrei prayer)에서 우리는
마시아의 오심에 관한 다음과 같은 요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유랑자들(exiles)의 귀환, 종교 법정의 회복, 죄와 악 및 이단(heresy)의 종말, 의로운 자들에 대한 보상,
예루살렘의 재건, 다윗 왕의 혈통 회복, 성전 의식의 회복.

현대의 학자들은 메시아의 개념은 유대교의 역사에서 비교적 나중이었던 선지자들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메시아의 개념이 토라(모세5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음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메시아의 개념은 언제나 유대교의 일부였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토라에서는 마시아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거리감이 있는 영적인 개념이나 미래에 관한 추상적 개념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이해의 영역 밖에 있었으므로 토라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라에도 "마시아의 때인 "마지막 때"(acharit ha-yamim)에 관한 언급이 몇 군데 있으므로
마시아의 개념은 가장 오래된 시대에서도 알려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마시아(mashiach)"라는 용어는 문자적으로 "기름 부은 자"를 뜻하며 왕이 보좌에 오를 때 기름을 붓는 전통에서 유래한다.
마시아는 마지막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자이다. 마시아라는 단어는 "구원자(savior)"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격 또는 준 신격(準-)을 갖는 무죄한 존재가 우리가 저지른 죄의 열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관념은
순수하게 기독교적인 관념이며 여기에는 유대교적인 근거가 전무하다.
유감스럽게도 이 기독교적 관념은 영어 단어 "메시아(messiah)"에 깊이 뿌리내렸기에
이 영단어는 더 이상 유대교적 관념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글 전반에서는 "마시아(mashiach)"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은 필자에게 "마시아"라는 용어가 "모시아(moshiah)"(구원자)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음가를 갖는다는 이유지만 그 유사성은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히브리어 단어 "마시아"는 Mem-Shin-Chet의 철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칠하다, 바르다 또는 기름을 얹는다, 라는 의미이다.
"모시아"의 철자는 Yod-Shiin-Ayin이며 돕다 또는 구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두 단어에서 일치하는 글자는 Shin 뿐이며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보편적인 글자이다.
모시아(구원자)의 첫머리의 m 소리는 동사를 명사로 전환할 때 흔히 사용되는 접두어이다.
예를 들어 tzavah(명하다)라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바꾸면 mitzvah(명령)가 된다.
"마시아"가 "모시아"와 관계있는 단어라는 주장은 ring(링)이라는 단어와 surfing(서핑)이라는 단어는 모두 끝에 ing가 있으므로
이 둘이 관계가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시아 (The Mashiach)

마시아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서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가 될 것이다. (예레미아 23:5)
마시아는 종종 "mashiach ben David"(마시아 다윗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유대 율법에 정통한 자이며 그 계명들을 준행할 것이다. (이사야 11:2-5)
그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서 사람들이 따를만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는 위대한 군사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편에서 여러 전투에 승리할 것이다.
그는 위대한 심판자(판관)로 의로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예레미아 33:15)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는 하나님, 준-하나님 또는 다른 형태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며 인간이라는 것이다.

모든 세대에는 마시아가 될 잠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 한 명 씩은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후보자가 살고 있는 기간이 메시아 시대적 시기로 적절하다면 그는 마시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시아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는 마시아가 아니게 된다.



마시아는 언제 올 것인가?

언제 마시아가 올 것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유대교의 위대한 지성 중 일부는 마시아가 오는 시기를 예측하는 자들을 저주해왔다.
그런 예측은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거나
심지어 유대교에 대한 신앙마저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사건이 17세기에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샤바타이 츠비(Shabbatai Tzvi)가 마시아라는 주장이 있었다.
츠비가 죽음의 위협에 굴복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했을 때 다른 많은 유대인들도 그와 함께 개종하였다.
그러나 이런 제제는 사람들이 마시아가 올 시기를 추측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부 학자들은 마시아가 오는 특정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예비되었다고 믿었으나
마시아가 오는 시기는 인류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이다.
마시아는 (세상에 악이 가득하여) 그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또는 (세상이 선으로 가득하여)
그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을 때에 올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진다.

예를 들어 마시아가 올 시기에 대해서 다음 각각의 조건이 제시되어 왔다:

- 이스라엘 전체가 단 하루라도 회개를 할 때
- 이스라엘 전체가 단 하루의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킬 때
- 이스라엘 전체가 연이은 이틀의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킬 때
- 전적으로 무죄하거나 전적으로 유죄인 세대
- 희망을 잃은 세대
- 자식들이 부모와 노인들에 대해서 완전히 무례한 세대에




마시아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마시아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전쟁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겔 38:16)

마시아는
우리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들이고 예루살렘을 회복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정치적이고 영적인 구원을 이룰 것이다.(사 11:11-12; 렘 23:8, 30:3; 호 3:4-5).
그는 이스라엘에서 정부를 세울 것이며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한 세계정부의 중심이 될 것이다.(사 2:2-4; 11:10; 42:1)
그는 성전을 재건하고 그곳에서의 예배를 회복한다. (렘 33:18)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법 시스템을 회복하고
유대 율법을 그 땅의 율법으로 수립할 것이다.(렘 33:15)




올람 하-바(Olam Ha-ba): 메시아의 시대

메시아가 온 이후의 세상은 유대문학에서 다가올 세상이라는 의미인 올람하바(Olam Ha-ba)로 종종 일컬어진다.
이 용어는 사후(死後)의 영적 세계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우리가 영어로 특정적인 메시아의 때를 언급할 때는 "메시아(의) 시대(messianic ag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모든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이 올람하바의 특징이 될 것이다.(사 2:4)
증오와 편협함, 전쟁이 사라질 것이다.
자연법칙들이 변하여 육식동물이 육식을 중지하고 농업에서는 초자연적인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생각한다. (사 11:6-11:9)
그러나 이 구절들은 단순히 평화와 번영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랑상태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각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사 11:11-12; 렘 23:8, 30:3; 호 3:4-5)
안식년의 율법이 회복될 것이다.

올람하바에는 전 세계가 오직 유대인의 하나님만을 진정한 신으로,
오직 유대인들의 종교만을 유일한 종교로 인정할 것이다. (사 2:3; 11:10; 미가 4:2-3; 스가랴 14:9)
그 때에 살인과 강도와 경쟁과 질투는 없을 것이며 죄가 없는 세상이 된다. (스바냐 3:13)
희생제사가 성전에서 재개될 것이나 이는 감사제에 한할 것이다.
속죄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방인들은 이러한 신학을 곡해하여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키려고 계획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주장과 똑같은 일을 저지르던 그들 자신의 종교 역사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유대인이 이해하는 메시아 시대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2+4=4라는 것을 그저 알듯이 진리가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되며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것은 전에 내가 목격한 상황과 비슷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두 명이 소란스럽게 한참동안 싸우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의 특정 위치에서 사용자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두고 싸우는 것이었다.
마침내 누가 자판의 키를 눌렀는데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진실을 알았고 논쟁은 끝이 났다.
마시아가 올 때 신학적 진리들은 인류에게 자명하게 드러나며 그것을 둘러싸고 논쟁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예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대인들은 예수가 마시아라고 믿지 않는다.
그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가정하고 기독교의 경전이 그를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가정하더라도(그러나 이 두 가정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성경 구절에 나온 것과 같은 마시아의 임무를 성취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이 메시아가 할 것이라고 말한 일들 중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세기가 지난 후 태어난 다른 유대인은 메시아적 이상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예수보다 훨씬 더 근접하였다.
그의 이름은 시므온 벤 코시바(Shimeon ben Koshiba)로 바 코흐바(Bar Kokhba별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카리스마적이었고, 뛰어나지만 무자비한 군벌(warlord)이었다.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인 랍비 아키바(Akiba)는 바 코흐바를 마시아라고 믿었다.
바 코흐바는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싸웠고, 로마 10군단을 급습하여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는 성전의 터에서 희생제를 재개했으며 성전을 재건할 계획들을 만들었다.
그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정부) 이름이 들어간 주화의 발행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마시아의 모습이며 예수는 명백하게 이 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은 그의 반란을 분쇄하고 바 코흐바를 죽였다.
그의 죽음 이후 모두 그가 마시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였다.

유대역사를 통틀어서 마시아를 자칭하거나 추종자들이 마시아로 여겼던 자들이 많이 있었다.
시므온 바 코흐바, 샤바타이 츠비 등 이름을 대기에도 너무 많다.
레오 로스텐은 '이디시의 기쁨(The Joys of Yiddish)'이라는 저서의 '거짓 메시아들(False Messiahs)'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재미있는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마시아의 사명을 성취하지 못한 채로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부 마시아가 아닌 것이다. 마시아와 올람하바는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이다.



마시아를 가리키는 성경구절

유대 경전에서 다음 구절들은 본질적으로 메시아에 관한 것 또는 마지막 때에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아적 관념을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이 구절들을 토대로 하여 의존한다.

이사야 2, 11, 42; 59:20
예레미아 23, 30, 33; 48:47; 49:39
에스겔 38:16
호세아 3:4-3:5
미가 4
스바냐 3:9
스가랴 14:9
다니엘 10:14

기독교인이 메시아 관련 구절이라고 여기는 구절들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고 싶으면
 'Jews for Judaism' 웹사이트를, 특히 'Knowledge Base under Resources'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Knowledge Base' 부분은 복음주의자들이 유대인들에게 던지는 130개 이상의 가장 보편적인 논쟁주제 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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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다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입니다.)
http://www.jewsforjesus.org/answers/jesus/proofessay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는 있는가?
2005. 1. 25.

어떠한 근거도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자에게는 확신을 줄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묻는 자들에게 근거는 자명하게 보인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가 있냐는 질문을 진지한 태도로 한다면 그것은 좋은 질문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대 역사에는 가짜 메시아들이 있었다.
바 코흐바(Bar Kochba)와 샤바타이 츠비(Shabbetai Zevi)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바 코크바는 서기 132-135년 로마를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일어나는 동안 유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랍비 아키바(Akiva)는 그가 "메시아 왕"이라고 선포하였다.
로마가 베타(Betar)의 요새를 습격할 때 불행히도 바 코흐바와 아키바를 비롯하여 수 천 명의 유대인들이 서기 135년에 살해당했다.
이에 비하여 샤바타이 츠비는 스스로 메시아라 일컬은 인물이다.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은 샤바타이 운동은 일반인과 랍비들에게 확산되었다.
샤바타이 츠비는 1666년 터키의 술탄에게 체포 당한 후, 죽음을 면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길을 택하였다.
우리는 과거에 이와 같이 비극적인 오류를 경험하였으므로
예수를 믿기 위해서 확실한 증거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시아라는 개념은 히브리 경전의 전반에 걸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메시아의 "아이디(I.D.)"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친구를 찾는 과정을 상상하여 보라.
처음에는 국가를 찾아내야 할 텐데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므로
다음에는 그가 사는 도시를,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번지수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의 전화번호와 집에 머무는 시간을 알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식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메시아의 "아이디"를 말하여 준다.
그의 민족적 배경, 출생지, 그가 임할 시간적 프레임 및 기타 신원 확인에 필요한 특징들이 주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자격들(credentials)"로써 메시아를 구별하며 그를 사칭하는 자들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자격들"이 명백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사람들이 바 코흐바와 샤바타이 츠비와 같은 가짜 메시아들에게 속았는가 하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예수의 시대에는 유대인들의 마음 속의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대단히 정치화 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구하고 있었다.
성경은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로마의 지배로 인하여 메시아의 승리자적 측면이 일반인들의 마음속에서 최상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적인" 메시아 관(觀)이 유대인들에게 박혀 있었으며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계속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 갔다.
그리하여 영적(spiritual) 메시아가 아닌,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사람들이 바 코흐바와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예수를 거부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이는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의 주장을 거부했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최초로 예수를 따른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당시 및 그 이후의 랍비들은, 사실상, 예수가 성취했다고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예언들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3장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에 탈무드 랍비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 당시에는 이 예언을 예수 개인에 적용시키는 자들로부터의 강압이 너무나 거셌던 나머지
중세의 경전 학자였던 라시(Rashi)는 이사야 53장이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재해석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유대인 학자들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그 역사는 고작 중세시대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메시아의 자격증명은 어떤 것인가?
다른 것도 많이 있으나 몇 개만 아래에 언급하였는데,
이 관련구절들은 모두 예전의(역: 중세 이전) 랍비들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다: 미가 5:1
- 메시아는 유다지파로부터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창세기 49:10
- 메시아는 자신의 모습을 나귀를 타는 모습으로 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스가랴 9:9
- 메시아는 고문을 당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되어 있었다: 시편 22편
- 메시아는 두번째 성전의 파괴 전에 오게끔 되어 있었다: 다니엘 9:24-27
- 메시아의 삶은, 고난, 체포와 심문(審問)에서의 침묵, 죽음, 부자의 묘실에 장사됨,
   부활 등의 특정한 묘사에 일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사야 52:13-53:12

혈통과 출생지, 시간 및 삶의 방식의 구체적 요소에 있어서 예수는 히브리 경전의 메시아 상과 일치한다.
이러한 성취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으나, 이에 더하여 몇몇 다른 요인들도 예수의 메시아 됨을 입증한다.

첫째로, 그는 스스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하였다!
한 여자가 그에게,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하니
그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고 답하였다. (요 4:25-26)
본질적으로 그것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만약 예수 본인이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가 메시아임을 애써 증거 할 동기가 있겠는가?
그분 스스로의 주장은 나머지 근거들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삶은 다른 거짓 메시아들의 삶과 날카롭게 대조되며, 그것은 우리가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입증이다.
예수는 수많은 치료의 기적을 행하였고,
사람들의 인생에 온전함을 가져다주었으며, 죄를 사하고 관계들을 회복시켰다.
샤바타이 츠비와 같은 자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는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였으며,
바 코흐바와는 달리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제3의 추가적인 근거이며 그것으로써 예수의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인 학자인 핀하스 라피드(Pinchas Lapide)는 유대사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는 책을 썼다.
(관심을 받은) 이유는 라피드가 예수의 부활은 사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 경전에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왜 예수만 다시 살아날 수 없냐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유감스럽게도 라피드는 예수의 부활이 다른 소생 사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기술된 점과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부활을 예언했다는 점 -이는 예수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한다.- 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이나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해명("사실 내막이 뭐냐면...")은
역사 속에서 계속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어떤 것이 가장 합당한지 판단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능성들에 대해서 검증해보라.
로마 당국이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을 훔쳤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질 때 왜 그들이 시신을 내놓지 못했는가? 제자들이 훔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자들이 날조를 했다면 그것으로 제자 자신들에게 일어난 태도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불과 3일 전만 해도 그들은 예수가 신세계질서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난 패배한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면 나중에 보여지는 그들의 소망과 그들이 용기 있게 공식적인 박해를 견딘 것과
그들이 설정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예수는 죽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단지 십자가 위에서 기절했으며 무덤에서 깨어났다는 소리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휴 숀필드(Hugh Schonfield)의 유월절 음모(The Passover Plot)이라는 책으로 대중화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작가는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으며 이것이 확실한 치명상이었을 것을 간과했다.
또한 로마군의 파병대는 입구를 덮은 거대한 돌과 함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부활한 예수가 탈출한 후 수 백 명의 의심 많은 목격자들에게 그가 죽음을 영원히 정복하였음을 확신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집단 환각이라는 말인가?
서로 다른 시간에 여러 장소에서 서로 광범위한 차이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환각이라면 필시 엄청난 환각일 것이다.
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겠으나 그를 동시에 본 오백 명을 속일 수가 있는가?
예수의 출현 현상은 부활 후 40일 만에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갑자기 동시에 멈추었는데 이것이 환각의 특성인가?

유일하게 만족할만한 설명은, 기록된 것과 같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예수의 메시아 됨을 받아들일 확고한 이유가 될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는 죄에 대한 속죄 물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수 없이는 진정한 평화와 (삶의) 방향에 대한 근거가 없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멀어(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수의 화해하는 사역에 의해서 이 멀어짐이 치유된다는 것은 그를 믿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 성경과 신약성경의 객관적 증거와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의 주관적 검증이라는 증거 사이에
예수가 스스로 주장한 것과 같은 분이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isaiah_43 2011. 7. 9. 13:45
우상숭배하는 한반도의 교회들
봉수교회, 악마의 연극무대



  





1.「선전(宣傳)용 가짜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가 봉수교회 再건축을 위해
500만 달러(한화 5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봉수교회에 50억 원의 거금을 쾌척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교인」은 가짜일지 몰라도 「교회당」은 진짜라는 것이죠.
심지어 『조선그리스도연맹의 강영섭 위원장도 울며 기도하고,
예수를 아는 이(미래한국 2월17일자 J목사 멘트)』라며
북한에 종교가 인정돼는 것처럼 선전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봉수교회는 「선전(宣傳)용 가짜교회」입니다.
50억 원 역시 김정일이 진짜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통치자금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지금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진짜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데 돈을 쓰고 있습니다.




2. 목사와 신도들, 훈련된 金日成주의자

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모두 金日成 종합대학 종교학과 등을 나온
조선로동당의 對南사업요원들입니다.

이들은 「金日成 主體思想」으로 철저히 무장된 자들로서,
기독교를 「金日成 수령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主體思想 선전가로 알려진
미국 심슨대 교수 신은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북한의 기독교 인식을
『주체신앙(主體信仰)』『주체영성(主體靈性)』이라 부릅니다.

「主體思想을 통해 기독교적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으로서
『기독교를 「조선식으로」·「한국식으로」 믿는
다원주의적 토착신학』이라는 것이죠.

북한은 그 근거로
『조선 사람은 조선하늘에서 조선의 하나님을 믿자』는
金日成 교시를 원용합니다.

쉽게 말해 金日成과 하나님을 동렬의 위치에서 이해하는 것이
봉수교회의 신앙인식입니다.

金日成을 통해 하나님이 되고,
主體思想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소위 주체신앙, 주체영성인 것입니다.



2. 예배는 金日成주의자들의 연극


봉수교회는 정기적인 주일예배가 없습니다.
남한에서 기독교인들이 오는 경우에만 예배형식이 이뤄집니다.
물론 일반주민은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목사·교인들의 전도나 선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주체영성, 주체신앙의 신학적 귀결입니다.

金日成주의로 체화된 기독교에선
주일예배, 전도와 선교 모두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金日成의 눈으로만 기독교를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군 고위간부출신으로 2004년 탈북 한
이금룡氏는 이렇게 말합니다.

봉수교회 참석자들은 훈련된 對南요원들로서,
남한사람들이 오는 경우에만 「연극」처럼 예배를 드린다.
봉수교회는 이를 통해 북한에 기독교가 있는 것처럼 꾸미고,
막대한 선교헌금을 빨아들인다



3. 예배 후 金日成주의 淨化의식

金日成주의로 무장된 對南요원들의 봉수교회 「예배(?)」는
사전과 사후에 독특한 「정화(淨化)의식」이 치러집니다.
金日成주의에 벗어나는 기독교신앙의 침투를 막기 위한
사전학습과 사후비판 행사입니다.

2003년 탈북한 前조선·체코 신발기술합작회사 사장 김태산氏 등
봉수교회 사정에 정통한 탈북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라는 이름의
일종의 자기비판을 하는데,
봉수교회 관계자들은 예배 전후 더욱 철저한 자기비판을 행한다.
특히 예배에서 남한사람들과 접촉한 후에는
「하나님은 없다」는 혹독한 총화사업을 벌인다

수령절대주의와 다른 사상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데 대한 일종의 「淨化의식」인 셈입니다.
봉수교회 예배는 이렇게 치러집니다.



4. 再건축헌금, 北기독교 박해 비용

金日成주의자들의 위장된 예배연극」의 목적은 「달러」입니다.

남한의 기독교인들을 불러 봉수교회 예배를 드린 후
거액의 선교헌금을 거둬들이는 것이죠.
예컨대 지난 해 12월4일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한
춘천시 S교회 관계자들은 한화 8천만 원의 헌금을
봉수교회에 쾌척했습니다.

예장통합의 봉수교회 재건축도
金正日 정권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될 것입니다.

이는 봉수교회 재건축에 들어가는 자재비용이
북한 내에서 조달되는 염가인데다,
건설인부 역시 강제로 차출된 「공짜인력」이기 때문이죠.

결국 남한 기독교계가 조선그리스도연맹에 주는
50억 원 대부분은 金正日 정권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5. 사탄의 조력자, 어둠의 협력자

지금도 중국에는 수십 만 탈북여성들이 돼지처럼,
개처럼 팔리며 性노리개로 전전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보다 더 끔직한 영아살해,
강제낙태 같은 유린은 북한의 변경(邊境)관리소에서 계속됩니다.

북한 자체가 이미 거대한 수용소로 변해 맞아죽고,
얼어죽고, 굶어죽는 동족들은 울부짖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해 대신 죽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우리의 누이, 동생, 형제들의 절규에 귀기울여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족을 죽이는 사악한 정권을
도울 궁리만 하는 기독교인이 넘치고 있으니,
남한도 폐허처럼 병들고 있습니다.

갇힌 자, 병든 이, 죽어가는 저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락만 위해 기도해 온 기독교인들은 회개해야합니다.

국가를 정상화하고 북한해방 나아가
자유통일의 물꼬도 그때 트일 것입니다.

선교를 앞세워 세상을 속이고 동족을 죽이는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조력자, 어둠의 협력자들일 뿐입니다








----------------------------------------------

북한의 가짜 교회는 대놓고 김일성을 하나님으로 우상숭배 한다.

또 우리가 김정일 정권에 주는 자금은
북에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탄압하는데 뿐만 아니라
사탄이 세운 정권이 사탄나라를 확장하는데 사용된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북한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부담을
돈 몇푼 주고 떼우며 스스로를 의롭다고 위로하는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세뇌당해 속고 있는 북한의 가짜 기독교인들과는
비교 조차도 안되게 악독한 인간들이다
(저 북한의 가짜 기독교인들은 불쌍히 여겨야할 구원의 대상이다)

하나님께서 북을 위해 물질을 후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다면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으로
헌금을 해야한다

물론 각자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에 헌금을 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탈북자들에게 헌금을 한다면
아직도 북에 남아서 생지옥을 겪고 있는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실제적으로 전달될수 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거짓말을 통해 사탄이 세운 북한...


정말 뱀처럼 지혜롭되 비둘기처럼 갑절로 순결히 대하자



박성업 선교사님의 사이트에서 퍼온 글.
http://minihp.cyworld.com/22911015/263935652





posted by isaiah_43 2011. 7. 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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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론 제사장의 손자이자 엘르아자르의 아들인 핀하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내 진노를 돌이키게했다.
그가 나의 열심으로 그들에게 열심을 내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나의 열심으로 끝장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러라. 이제 내가 그에게 평화의 언약을 준다.
그것은 그와 그다음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의 언약이다.
왜내하면 그는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냈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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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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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iah_43 2011. 7. 5. 19:45

한 사람으로 인해 그 땅을…





오늘도 북한성도들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한 사역을 하는 일꾼들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종종 듣기도 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북한의 감옥은 어떠할까?’, ‘그 안에 갇힌 성도들에게 가해지는 고문은 얼마나 모질고 끔찍할까?’를 생각한다. 그러한 상황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아파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눈을 돌려 다른 부분을 봐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한 사람을 소개하신다. 북한에 현존하는 욥과 같은 성도를 만방에 자랑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의인된 그 한 사람을 인하여서 그 땅을 멸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 성도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어둑해질 때 숨어들었던 산 속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했다. 거기다 강을 건너야 하는 스무살 처녀 한나(가명)는 장대비에 옷이 젖은 데다 세찬 바람까지 몰아쳐 온 몸이 추위에 오그라들었다. 혼자 있으니 무서워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출발 전에 암송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을 소리 내어 암송하는데 무서움은 온데간데없고 찬송이 흘러나왔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한나는 온 밤을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게 찬양을 부르노라니 지나간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예수를 믿는 아버지와 어머니

갈길 몰라 헤매일 때 나를 찾아오신 주~
내마음이 무너지고 내 몸지쳐 쓰러질 때
무거운 짐 대신지고 길 동무가 되신 주~
염려마라~ 염려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

어머니가 좋아하신 찬양이다. 뜨개질을 하시는 어머니가 흥얼흥얼 부르시던 찬양소리를 늘 들었던 한나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불러졌다.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 가서 예수를 믿게 된 어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씩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으며 무슨 일이든지 기도하고 하셨다. 처음 중국에 갔다 와서 “한나야, 이 세상의 우주만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가?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만드셨고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셨다. 짐승이 사람으로 되었다면 왜 지금은 사람이 되는 원숭이가 없겠는가?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 너도 그 하나님을 믿어라!”고 하시면서 성경책을 주셨다. 한나는 창세기에 나와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출애굽기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가는 내용을 읽으며 눈이 반짝였다. “어머니, 조선의 아동만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너무나 비슷합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중국에서 가져온 예수영화와 대단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이겨내는 영화를 한나에게 보여주셨다. 영화를 보던 한나가 “어머니, 나도 저런데 가서 예배를 한 번만 드려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하자 “그럼, 너도 중국에 가서 공부(성경공부)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2008년 10월, 중국에 건너와 성경을 공부하는 한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다. 높고 높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해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할수록 감동스러웠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조선에서 아버지가 보위부에 끌려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전도했던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이 발각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졌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한나에게 지금 조선에 돌아오면 위험하니까 기별할 때까지 중국에 머물고 있으라고 전해왔다.
한나는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아버지의 모습이 꿈에 자주 보였는데 이상한 것은 매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언제나 환하게 웃고 계셨다. 
한나는 조선에 혼자 남겨진 어머니와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걱정되어 빨리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한 달 지난 11월, 한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차가운 날씨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가는 길을 보호하시고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에 강을 건너는데 성공한 한나는 새벽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붙잡고 흔드는데 어머니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오셨다.




아버지의 순교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꿈결에 어머니가 부르는 찬양소리가 한나의 귓가에 아득히 들려왔다. 추운 날씨에 몇 시간을 걸어오느라 지친 한나는 어머니가 끓여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곤히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어머니가 속삭이듯 부르는 찬양소리가 잔잔한 물결처럼 들려왔다. ‘아~ 얼마만인가…’ 어머니 곁에 누워 들려오는 찬양소리를 듣는 것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한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누워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난 한나는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 앞에 앉았다. 밥을 뜨려다 말고 “어머니, 날씨가 지내(아주) 추운데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 너네 아버지는 아주 따뜻한 곳으로 가셨으니 걱정하지 말라!” 평안도 억양으로 대답하셨다.
“어머니, 기럼 아버지가 석방되었다고 알려줘야지 내 얼마나 걱정한지 아는가?”
“아버지는 여기 없고 하나님 품에 안겨 있으니 춥지 않을거야…”
한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렸다.
“어머니! 그거이 무슨 말입니까? 기럼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입니까?”
“그래, 아버지가 감옥에서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예수를 전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단다. 그래서 더욱 모진 고문을 받다가 하나님 품에 안긴거야…”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어머니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가? 어머니는 노래가 나오는가?” 한나는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를 앗아가는가?”
한나는 울면서 떼를 쓰듯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너네 아버지는 하나님께 진짜 받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아버지가 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너는 왜 모르나? 하나님 품에 있는 너네 아버지도 축복이고,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너와 나도 하나님의 축복이니까 찬양할 수 있는거이 아닌가?”

어느 덧 한나가 지난 일들을 생각하는 동안 날이 환하게 밝아 왔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그런 한나의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아버지가 즐겨 부르셨던 찬양이었다. 한기가 온 몸에 엄습해 오자 꾸려온 짐 속을 뒤져 비닐에 싸인 겨울 옷을 꺼내 입었다.
“하나님! 그때는 제가 참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사해주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 하나님을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한나의 얼굴에 눈물이 빗물과 범벅이 되어 흘러 내렸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예수님! 저는 정말 주님이 좋습니다. 그저 내가 주님을 너무 좋아하고 나는 하나님을 아는데, 그래서 하나님께 가고픈데 하나님이 이런 내 마음을 몰라줄까봐, 이따금 나를 외면하지 않으실까생각할 때 제일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내가 걸음걸음 죄 지을 때 넌 안되겠다 하실까봐, 내 죄를 회개합니다. 저는 주님이 좋은데…”
한나는 모기들이 ‘앵~앵~’하며 달려드는 숲 속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 밤새 내린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물살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을 찬양하는 동안 다시 어두운 밤이 되었다.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어머니!

2009년 6월, 두 번째 중국에 건너왔다가 조선으로 돌아가면서 한나는 가방에 성경을 가득 담아 짊어졌다. 위험하니 가져가지 말라고 하는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이번에는 꼭 성경책을 가져가야만 합니다. 어머니가 전도한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책이 없어 지내(아주) 속이 탔다 말입니다.” 성경책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mp3와 CD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강을 건너가기 전 “하나님, 이 딸이 가는 길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내가 걷는 걸음걸음 주님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하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한나가 안전하게 돌아온 모습을 본 어머니는 “내, 네가 없으니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더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니! 내 이번에 성경책을 쎄게 가져왔습니다.”하며 가방을 열어 책을 꺼내자 놀란 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어찌 이렇게 많은 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니까 일 없었습니다(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잖습니까?”
한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가져온 성경과 자료들을 재빨리 정리하며 어머니가 전도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였다.

“너, 기도하지 않나? 일찍 일어나 기도해야지 성경공부를 많이 했음 뭐하나? 모든 일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라!”
어머니는 한나가 늦잠을 잔다고 핀잔을 주셨다. 한나는 어머니의 성화에 투덜거리며 일어나 앉아 “어머니는 그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사는데 왜 이렇게 아파하나? 어머니, 기도할 때 무릎을 꿇지 않고 그렇게 앉아서 하니까 하나님이 기도 들어주지 않는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시니까 일 없다(괜찮다).”라고 하셨다.

아침을 먹고 집안 청소를 하느라 문을 열어 놓고 한나가 찬양을 부르는 것을 본 어머니가 깜짝 놀라 “너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불러도 일없는데, 앞으로 조선에도 그렇게 찬양해도 되는 세상이 오겠지만 지금은 조심하라.”고 꾸중하셨다. 중국에 있으면서 마음껏 찬양을 부르다가 돌아온 한나가 주변환경을 의식하지 못하고 부른 것이었다.
한나는 어디를 가도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읽었다. 그것을 알게 된 친척 동생이 가방에 있는 책을 몹시 궁금해 하며 보고 싶어 했다. 그런 동생에게 성경을 주면서 주의해서 보라고 당부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이다.
동생과 함께 역전에 앉아 있는데 곁에 있던 할머니가 미신(점쟁이)을 봤던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동생이 벌떡 일어나면서 “언니는 하나님 믿는다는 게 저 소리를 듣고 있나?”라고 쏘아 붙이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바로 뒤따라간 한나에게 “언니, 나도 성경책을 읽어보니까 그 말씀이 다 사실인 것이 알려지더라(알겠더라).”고 하였다.
“너 그게 믿어져?”
사촌 동생은 “난 다 믿어진다.”라고 대답했다.
혼자 성경을 읽고 다 믿어진다는 동생의 말을 들으니 왠지 성경책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책 4권을 챙겨서 동생에게 잘 간수하며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하면서 주고 돌아왔는데, 집안이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군화를 신은 채로 방에서 나오는 보위부원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한나를 보며 “이 간나!”하며 심한 욕지거리와 함께 발길질을 해댔다. 보위부원들은 집을 수색하여 성경책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이미 끌려가 보이지 않았다. 한나도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맨발로 끌려갔다.

감옥에 갇힌 어머니와 한나는 매일 취조를 받으며 얻어 맞아 피 범벅이 되었다. 어머니는 한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혼자만 아는 사실이라고 진술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나는 어머니가 불려갈 때마다 ‘하나님, 어머니가 오늘도 쎄게 매를 맞을 텐데 지켜주세요.’ 자면서도 기도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인 채 주먹 쥐고 앉아 있으면서도 한나는 어머니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감옥에 처음 갇혀서는 ‘하나님 믿고 회개하면 사랑과 축복을 준다고 했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 믿어서 행복하던 가정이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원망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는 기도 할 때 욥이 생각나면서 ‘아~ 그랬댔구나! 사탄이 욥과 같이 우리를 시험하는구나! 욥처럼 몸을 치고, 집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빼앗아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책략이구나! 그래, 여기서 내가 하나님 믿고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고 구원의 손을 내게 내밀어 보라! 네가 직접 통해보라!’고 하나님이 시험하신다고 깨달아졌다. 그 뒤부터 신기하게도 눈을 감으면 그동안 암송했던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고, 중국에 있을 때 한번 들었던 찬양의 1절, 2절이 또렷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계속 불렀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한나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이 정말 힘을 내라고 곁에서 자기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 하나님이 이렇게 나와 함께 하는데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이 어려움을 꼭 이겨 승리해야지…”라며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다. 하루는 10월 30일 너는 감옥에서 나가고 어머니는 또 다른 감옥으로 갈거라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 그 날에 한나는 감옥에서 나왔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은 어머니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 뒤로 2년 동안 한나는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한나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집도 몰수 되어 없어졌고,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친척 동생에게 주었던 성경책 4권이 남아 있었다. 그 성경책 한 권을 품에 안아든 한나는 “하나님만 있으면 살 수 있으니 일없습니다!”라고 나지막 하지만 간절하게 고백하였다.

숲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정치범 수용소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느덧 다시 아침이 밝아 왔다. 이틀을 산 속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으려니 힘이 없었다. 그런데도 찬양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한나는 중국으로 오면서 통행증을 받기가 어려워 직접 글씨로 써서 증명서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가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차를 타면서 “하나님, 천군천사들로 이 딸을 지키게 해주시고, 모든 권세자들의 눈을 몽땅 가려 주셔서 이 딸이 아버지 품으로 가는데 지켜주세요.”기도했다. 그런데 셀 수 없이 많은 보안원들이 검열을 했는데도 어떻게 된 것인지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봐도 가짜인 것을 알 수 있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증명서를  단속하고 검열하는 많은 안전원들에게 검열을 받았는데 무사통과시켜 주었다.
한나는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열어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이 보안원들의 눈을 완전히 가리우고 기도한 그대로 행해 주셨다. 그 하나님을 향해 한나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십니다.”라고 찬양하였다.

예수님 예수님 우리구주 예수님~~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네
우리네 인생살이 힘이 들고 어려워도~~
예수님 한분 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하나님 정말 만족합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우주만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지금도 제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는 하루 한 순간 산다 해도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만 바랄 뿐 그 외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물이 침몰치 못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2010년 10월 밤 10시,
중국에 가기 위해 강가에 서서 “하나님, 죽으리라 생각하면 살고, 살겠다 하면 죽을 것이라 했는데, 나의 생명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옵소서!” 기도하고 차가운 물속에 들어섰다. 온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발을 내딛는데 물살이 거세지면서 몸이 물에 휩쓸렸다. 순간 맥(힘)이 없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OO도의 날씨는 기차게(많이) 차가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국 땅의 물가에 몸이 걸쳐 있었다. 아침 6시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채 8시간이나 서리를 맞았는데 감기 하나 걸리지 않고 살아 있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3일 밤낮을 산 속에서 있으며 먹지 못해 배고픈 중에도 한나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 하며 찬양하였다.



출처: 모퉁이돌선교회  http://mvtv.kr/d2


posted by isaiah_43 2011. 7. 5. 02:45
posted by isaiah_43 2011. 7. 5. 02:43
수만명을 강연으로 만나보니

 
 記者는 지금 힘겨운 수행 중이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연을 통해서 만나는 이들은 매주 최소 500여명. 많을 땐 수천 명이 넘지만 밥 사주며 찾아 가는 소그룹 모임이 잦아 총계(?)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보수층 이외의 다양한 그룹,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며 民心(민심)을 살필 기회를 갖는다. 지난 1년 동안 수만 명을 만난 후 내린 소결은 이렇다. 
 

 1. 北韓인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記者는 평소 한국인 심성이 선하며, 북한의 2400만 동족 노예에 대한 침묵은 無知(무지)의 결과로 생각해왔다. 진실을 알리고 사실을 전하면 변화할 것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北韓인권의 참담한 상황을 사진·영상·증언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전해도 마음이 움직여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5% 미만이다. 
  어딜 가든 유사하다. 통상 기독교인이 北韓인권에 관심을 보이지만 일반 교회는 北韓인권에 冷冷(냉랭)하다. 이런 무관심은 大型(대형)교회로 갈수록, 소득수준이 높은 곳일수록 심하다. 
  교회에서 北韓인권을 말할 때면 신도들 앞에 거대한 장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福(복)을 빌러 왔는데 왜 남 얘기를 하느냐?’는 눈빛부터 ‘끔찍한 얘기 좀 집어치우라’는 것 같은 눈빛 등 다양하다.  
 교인은 그나마 낫다. 목사님·장로님 상대로 한 강연은 곤혹스럽다. 100명이 모이면 1~2명은 “왜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하느냐”는 항의를 하고, 아예 “내려오라”고 따지는 이들도 여러 번 만났다. 모두 교회였고 목사였고 내가 전한 것은 가련한 북한동포를 해방하자는 말이었을 뿐이다. 
   경험측상, 北韓인권에 열린 집단은 ‘세상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기독교 모임 내지 작은 교회, 또는 청년 신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양심의 영역이 ‘비대칭적으로’ 발달된 이들이다. 그런 곳은 北韓인권 이슈를 리포좀이 물 빨아들이듯 흡수하곤 한다. 세상은 이래서 썩지 않는가 싶었다. 
  

 2. 안보에 무관심
 
 愛國집회에 나오는 확고한 보수층 이외의 중간지대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安保(안보)에 무관심하다. 핵무기·미사일 사진과 영상, 아무리 떠들어 주어도 반응은 대부분 얼떨떨해 한다.  
 청년층은 심각하다. 그들은 安保문제에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북한과 적당히 ‘화해·협력’하는 게 좋다는 얄팍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나마 나은 집단이 학군단, 軍장교, 공안기관 같은 곳이지만 이곳 청년들 역시 너무나 생소한 개념에 충격을 받는다기보다 의아해 한다. 
  예를 들어 보자. 記者가 어디서 강연을 하든 10·4선언의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20대는 만나 보지 못했다. 초·중·고교 시절은 물론 대학에서도 북한을 친구로 여겨온 데다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돈과 쌀을 줘야 평화가 온다는 좌파의 선동이 거세니 분별을 못한다. 몇 달 전 어느 청년우파 단체에 강연을 갔는데, 강연 직전 설문을 해보니 80%가 자유통일이 아니라 연방제 통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안보에 관심을 보이는 집단은 전쟁체험세대인 이른바 보수층이 유일했다. 요즘은 천안함·연평도 효과도 ‘약빨’이 다 떨어져 버린 것 같다. 전 국민의 70% 정도는 될 중간층 대부분 안보에 둔감한 상태니 愛國心에 호소를 해도 ‘소귀에 경 읽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3. 자유통일에 대한 격렬한 반응
 
 역시 ‘경험측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겠지만, 北韓인권에 무관심하고 安保문제에 둔감한 중간지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이슈는 ‘자유통일’이었다. 기독교인이건 非기독교인이건 마찬가지고 청년층은 더욱 그러하다.
  잠자던 청중도 통일비용이 아니라 통일이익, 북한재건과 북한특수를 통한 통일강국의 비전에 두 눈을 번쩍 뜬다. 북한이 열리면 경찰·군인·공무원 인력이 파견돼 진급할 것이고 기간제·임시제 교사가 교장선생이 되며, 시간강사가 대학교수가 되는 강대국 실현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에 귀 기울인다. “김정일이 다 죽었는데 한 방만 걷어차 버리자” “자유통일은 청년실업·장기불황을 30년은 날려버릴 것이다”라는 웅변(?)에 박수친다. 
  양심이 무뎌진, 애국심이 사라진 이 惡(악)하고 淫亂(음란)한 세대를 이끌어 갈 苦肉之策(고육지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땅의 백성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련의 터널을 벗는가 싶더니 다시 또 비전이 사라진 이 나라 국민은 북한의 절망적 현실은 보기도 싫고, 안보가 무너져 빚어질 재앙도 듣기 싫은 것 같다. 지금 당장 잡아 챌 希望(희망)은 아니어도 김정일 멸망 이후 오게 될 希望 찬 통일강국의 비전에 관심을 보이고 때로는 갈채를 보낸다. 
  양심이 무뎌지고 애국심이 사라진 그러나 상처 많고 가련한 이 땅의 대중은 慰勞(위로)를 원한다. 때론 좌파의 破壞的(파괴적) 변혁에 귀 기울이지만 記者가 전하는 創造的(창조적) 변혁에 무릎을 친다. 어쩌면 나 역시 북한의 2400만 동포에 대한 사랑만큼 이 나라 국민을 사랑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의 강연은 ‘백성을 향한 위로’가 되었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무어라 부르건...이승만의 건국혁명, 박정희의 근대화혁명을 잇는 60년 대한민국의 성취는 또 다른 英雄(영웅)의 통일혁명으로 완성될 것이다. 내가 받아 온 조롱과 비웃음, 경멸과 욕설은 조국이 英雄을 부르는 하늘의 나팔 소리였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불확실한 시대,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을 줄 신념이요, 용기이며, 慰勞者(위로자)다. 나는 소녀처럼 부푼 마음으로 英雄이 올 내일을 기다린다.


김성욱 /리버티헤랄드 대표,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 /2011.07.04 06: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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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iah_43 2011. 7. 2. 19:43

posted by isaiah_43 2011. 7. 2. 13:30
posted by isaiah_43 2011. 7. 2. 13:25

 


6차 JESUS ARMY 컨퍼런스 Here am I, Send Me!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탈북민과 함께하는 통일체험 컨퍼런스
북한 이슬람권 이스라엘선교 컨퍼런스
세상과 죄악과 마귀를 이기는 예수군대 컨퍼런스

날짜: 2011. 7.4(월) - 9일(토)
장소: 수원 흰돌산기도원
주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주관: 에스더기도운동 www.pray24365.org


강사: 크리스티김 선교사(YWAM 열방대학) 김성욱 기자(리버티헤럴드) 라하라 필레이(이슬람권 선교)
로버트 박 선교사(북한한교)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박호종 목사(하베스트샬롬 교회)
스티브 라이틀 목사(이스라엘 선교) 신영철 국장(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이규 목사(아름다운교회) 이만석 선교사(이슬람권 선교) 이삭 목사(모퉁이돌선교회) 이성숙 간사(YWAM월요중보)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도운동) 장진성(탈북시인) 장진성(탈북시인) 정베드로 목사(북한정의연대)
주선애 명예교수(장신대) 조갑진 교수(서울신대) 최광 선교사(탈북자 사역) 외


* 탈북민캠프, 어린이캠프가 동일 기간 진행됩니다.
* 숙소는 제공되나, 침구류는 지참하셔야 합니다. (집회 기간 침낭 구입 가능)
* 집회 본당에는 좌식의자가 배치됩니다.


컨퍼런스 등록
인터넷 등록: www.jesusarmy.kr
 (클릭하시면 등록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전화 등록: 02) 711-2848

등록비:
1차: 6만원(6/15까지), 2차: 7만원(7/2까지) / 현장 등록 8만원
목회자( 사모,전도사), 선교사(간사),신학생 50% 할인 /
탈북민, 65세 이상 등록비 없음

등록비 입금 계좌:
국민은행 270101-04-203238 이철우(JESUS ARMY)

문의: 02) 711-2848, jesusarmy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