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saiah_43 2011. 8. 17. 15:03

9기 북한학교 
2011년 8
월 15일(월)
강사: 김성욱기자

출처: http://mvtv.kr/7Z


posted by isaiah_43 2011. 7. 26. 14:07

내가 만나는 엉터리 목사들 
“원수를 사랑하라”며 악을 관용하는 죽음의 향도들   /출처: http://mvtv.kr/r3  /2011.07.24 

 
한국의 문제는 교회의 문제란 지적이 있다.
全인구 4분의 1 가까운 1000만 명이 기독교인이니 과장된 말은 아니다. 

 
사회에 만연한 從北(종북)주의·親北(친북)주의의 뿌리 역시 교회에 터 잡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북한의 가련한 2천만 동포에 대한 憐憫(연민) 대신 김정일 정권을 도와야 평화가 온다는
僞善的(위선적) 평화주의를 배우곤 한다. 

 
지하 기독교인들의 殉敎(순교)행전이 지금도 어둠의 땅, 북한에서 멈추지 않는다.
수용소 시설에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갇힌 이들이 1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오픈도어즈)마저 나온다.
그러나 한국 교회 主流담론은 북한주민 人權(인권)이 아니라 북한정권 支援(지원)이다.
공개처형과 정치범 수용소 문제는 물론 탈북자 강제송환·영아살해·강제낙태 등 죽어가는 동족의 절규에 침묵한다. 

 
김정은 등장 전후인 지난 1년간 북한에서 公開處刑(공개처형)된 사람이 확인된 숫자만 52명이다(출처: 북한인권백서2011).
그러나 일부 목사들은 김정은이 성경의 위대한 인물인 ‘요시야 왕’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시작했다.
邪惡(사악)한 정권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선 성도의 침묵을 유도하고 邪惡한 정권의 세습을 인정해 버린다.
그리고 한국의 1000만 기독교인들을 惡으로 이끈다. 
 
일부 목사들이 동원하는 성경적 논리는 간단하다. “원수를 사랑하라” “주린 자는 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惡에 대한 침묵, 방관, 동조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족이 살인범에게 유린당하고 겁탈당하고 있을 때 “원수를 사랑하라”며 기도만하고 있을 것인가?
북한의 가련한 동족이 당신의 아내와 자식이라면 저들이 공개처형당하고, 강제송환·영아살해·강제낙태당하고 있을 때
기도만하고 있을 것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惡에서 발을 떼고 惡을 중단시키라고. “사랑하는 자여 惡한 것을 본받지 말고 善한 것을 본받으라.
善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惡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한3 2:11)” “公義(공의)로 허리띠를
삼고 誠實(성실)로 몸의 띠를 삼아, 입술의 기운으로 惡人(악인)을 멸하리니(slay)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惡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惡人(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시 97:10)”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惡人(악인)을 멸
하리니 罪惡(악행)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시 101:8)”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북한정권이 저지르는 “백성을 파쇄하고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는(시 94:5~7)”
악행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범수용소는 해체시키고, 공개처형은 중단시키며 영아살해·강제낙
태를 저지하라고 명령한다. 악을 미워하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들었고 그일라를 구했다.

 
지금 당장 위급상황을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며 입과 눈과 귀를 막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북한동포가 당신의 가족, 아니 당신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장난인가?
사람이 불에 타 죽는데 불을 끌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짓인가? 

 
어제도 記者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룩한(?) 목사를 보았다.
그는 김정은을 위해 기도하지만 죽어가는 2천만 주민을 위해서 기도치 않는다.
이런 류의 눈 먼 牧者(목자)들은 남한의 기독교인마저 벼랑 끝에 내모는 죽음의 嚮導(향도)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남과 북의 갈등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선과 악의 싸움이다.

                                                                         - 김성욱 기자/2011년 07월24일 07시53분    



“배부른 북한군이 덜 잔인할 것”이라는 어느 對北지원 목사
  /출처: http://mvtv.kr/r7 /2011.07.24
“탈북자가 북한에 달러를 보내서 남한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현장을 돌다보면 별의 별 억지와 궤변에 부딪친다.
복잡한 논리로 떠들어 대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남한도 나쁘고 북한도 나쁘다’. ‘남한과 북한을 적당히 섞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類의 統一論(통일론)은 예외 없이 연방제, 6·15, 10·4로 귀결된다.
300만 餓死(아사)와 지옥의 땅이 된 북한의 현실을 외면한 환상이다.
 
 지난 주 만난 한 목사는 김정일 정권을 도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기자님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에 주는 쌀이 군량미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굶주린 군인이 우리에게 잔인하게 하겠습니까?
배고픈 군인이 잔인하겠습니까? 군인도 먹이는 게 하나님 뜻입니다.” 
 
천안함 46용사. 연평도 희생자 4명의 피가 마르지 않은 지금 나온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며 북한이 우리의 형제와 자식을 죽여도 계속 도와야 된다는 말이다. 
 
그는 “모니터링을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주는 쌀이 어디로 가는지 알 필요는 없다”며 “우리의 의무는 북한에 주는 것 까지”
라고 말했다.
그리곤 예의 ‘주린 자는 먹여야 한다’는 성경을 인용한다. 물론 이런 이들은 공개처형·강제낙태·영아살해, 정치
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한다. 

 
어제는 “북한의 정권이 아닌 주민을 도와야 하며, 남한에 탈북자 2만여 명을 도우면 북한의 취약계층 수십만에 돈이 직접
들어간다”는
記者의 주장에 혹자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그러던데요. 탈북자들이 남한의 달러를 중국을 통해서 북한에 보내니 남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요”
 
탈북자가 북한에 달러를 보내서 남한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늘은 한 학생이 기자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교회수련회에 어느 목사 겸 교수님 한 분이 왔는데 “독일이 통일 이전 동서독 기독교 연합을 했듯 우리도 북한 조선그리스도
연맹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외국서 공부도 했다는 이 목사는 “북한에 선교나 전도의 자유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는
말도 했다. 

 
북한은 쪽 성경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하는 곳이다.
조선그리스도연맹 역시 ‘主體神學(주체신학)’ 운운하는 가짜 기독교단체일 뿐이다.
대체 하나님을 팔아서 무슨 말을 뇌까리는가? 
 
한국의 기독교는 지난 60년 1000만 성도와 세계적 선교의 폭발적 부흥을 맞았다.
그러나 북한정권이라는 절대적 惡(악) 앞에 시험을 받고 있다.
김정일과 유착된 생계형 對北지원론자들을 중심으로 어둠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듯 나 또한 지금 이렇게 외친다.
“회개하라. 통일이 가까웠다. 북한의 가련한 2천만 동포의 분노가 당신들 눈앞에 있다”

                                                                           - 김성욱기자/2011년 07월24일 1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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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기독교인들   /출처:
http://mvtv.kr/r6  /2011.07.19

탈북여성들의 증언자료집인 ‘생존을 위한 여정’에 나오는 사례는 地獄(지옥)이 된 북한의 일상을 전한다. 89명의 증언을 토대로
 발간된 이 자료집은 성폭행·성고문·강제낙태·영아살해 등 북한정권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학살의 기록이다.
 
 16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탈북한 여성을 강제로 北送(북송)한 뒤 수감시설에서 ▲“보위부원이 비닐장갑을 끼고서는 조
사받는 여자들 자궁 밑을 검사하고 옷도 다 벗게 했어요.” ▲“밤에 불러내 조사한다면서 발로 차면서 그래요. 때려도 가슴 하고
자궁만 칩니다.” ▲“임신부를 마구 구둣발로 찼습니다. 결국 아이가 죽었죠.” ▲“그렇게 강제 낙태시키고도 그 다음날 바로 노동을
시킵니다.”는 증언을 비롯해 임산부 아이가 태어난 뒤 굶겨 죽일 때 ▲“아이가 얼마나 질긴지 이틀을 꼴딱 울다가 죽었다”는 등
筆舌(필설)로 기록하기 어려운 내용 투성이다. 이런 정권·이런 집단이 한민족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사악한 세력을 없애는 것은 勇氣(용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생존을 위한 여정’에 나오는 팩트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만 2만여 명. 증언은 차고 넘친다. 정부가
발간한 《북한인권백서》만 보아도 강제송환 후 ▲“임신한 여성의 배를 걷어차는 일은 일상적”이라는 증언이 반복돼 나온다.
 
 ▲‘운동장 100바퀴를 돌리게 하여 60바퀴를 돌다 실신하여 유산한 여성’, ▲‘영아를 조산시킨 뒤 죽이라고 명령하자 정신착란을 일
으킨 여성’, ▲‘강제노역 중 지도원의 구타로 유산한 여성’들이 우리네 여성들 처지이다.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 6개월 된 태아를 죽였다’ ▲‘지도원이 비닐로 아이를 덮어 죽였다’ ▲‘아이를 비닐에 싸 화장실에 버려 죽
였다’는 어머니들의 절규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는 증언은 김정일 정권을 저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결코 정당한 일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어이없게도 한국에는 악마보다 더 악마적인 김정일 정권을 지켜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자들이 넘쳐난다. 때론 평화, 때론 용서,
때론 사랑의 너울을 덮어쓴 채 한국인이 惡(악)을 관용하고, 방관하고, 협력하며 惡(악)과 한 편이 되도록 유혹한다. 별의 별 논리를
가져다 대어도 그들이 하는 일은 한국인의 관심을 끔찍한 그리고 불편한 북한의 일상에 침묵케 만드는 것이다. 악당의 변호일 뿐이다.
 
 북한에 3代세습이 등장한 뒤에는 ‘멀쩡한’ 기독교회들마저 이른바 ‘김정은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6월23일 오전 서울 온누리교회
여성모임인 “마리아행전” 집회에서는 데이빗 로스(한국명: 오대원) 목사가 3000명 정도의 전국 여성들이 모인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
이 이스라엘의 요시아왕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類의 집회에서 김정일 정권의 끔찍한 만행과 파괴된 북한의 일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고작해야 가난한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소위 人道的(인도적) 지원에 대한 호소(?)정도이다. 지금 당장 유린당하고, 겁탈당하고, 강간당하며 “살려 달라” “살려 달라”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수천만 동족의 비명에 침묵하고 나아가 대중의 침묵을 이끌어낸다.
 
 이날 집회의 메시지 역시 강제송환·영아살해·강제낙태, 480곳에 달하는 북한의 수용소 시설과 그 보다 더 넓은 추방지역, ‘자갈박이’한
채 공개처형으로 죽어가는 가련하고 불쌍한 동족에 대한 언급은 나오질 않았다. 오직 김정은이 요시아 왕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外皮(외피)를 걸친 이들마저 ‘원수를 사랑하라’며 ‘惡(악)’을 방관하고 ‘惡(악)’과 하나가 된
다면 이 민족에 희망은 없다. 김정일 집단의 悔改(회개)와 懺悔(참회)를 위한 기도, 북한에 自由(자유)와 人權(인권)의 식량을 주는 대
신 이른바 김정일·김정은을 위한 중보의 기도와 정권을 살려낼 체제 支援(지원)만 부르짖는 것은 7천 만 양떼를 저주로 내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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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新)신사참배로 유도하는 외국인 목사 
/출처: h
ttp://mvtv.kr/r4 /2011.07.19



지난 6월 23일 오전 서울 온누리교회 여성모임인“마리아행전”집회에서 데이빗 로스(한국명: 오대원) 목사가 3000명 정도의 전국 여성
들이 모인 가운데“북한의 김정은이 이스라엘의 요시아왕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온누리교회측은
공식적으로 이 내용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고, 이어서 같은 내용으로 다같이 기도했으며, 다음날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세계선교대회 주
강사로도 문제 없이 단에 섰다.

월간지 [빛과 소금]을 발행하고, [두란노서원] 출판사를 운영하는 등 한국 기독교 문화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온누리교회]
뿐만 아니다. 오대원 목사는, 대규모 건축사업으로 화제가 되어온 강남 최대 규모의 교회 [사랑의교회] 통일 관련 집회에도 단골로 등
장하는 강사이다. 만일 가장 복음적인 교회로 알려져 있는 이들 온누리교회와 사랑의교회가 이렇게 둔감하다면 다른 교회들이라고 해
서 영향권에서 안전하다고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 김정은이 요시아왕처럼 되다니!

북한의 김정은이, 솔로몬 이후 왕들의 우상 숭배로 몰락해 가던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 요시아왕처럼 되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백히’ 신성모독이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목사라면 이렇게 기도할 수 없다. 김정은이 요시아왕과 같이‘거룩한 전통’에 있는
왕(?)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전통에 ‘김정은’을 두고 빗대어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 목사가 신
성모독임을 모를 수 있을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우상을 숭배하여’몰락한 이스라엘왕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우상’이며 그것도 지구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극
악한 우상이다. 바알과 아세라가 요시아왕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오대원 목사는 그저 외국인이라서 모른다고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 대한 미움과 상처가 오목사를 여기까지 몰아왔다고 생각지 않는가!


2. 오대원 목사가 북한선교 캠프에 초대한 인물들

그의 스웨덴 북한학교(NKSS:North Korea Study School) 캠프에 참가했던 한 학생의 서신에 따르면 오대원 목사의 캠프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을 가르쳐 북한을 긍정하도록 훈련시키는 반역적 캠프다. 

<저는 NKSS에서 김일성 연구가 서대숙씨로부터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를, 그리고 북한과 김일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
는 시각을 배웠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평가서에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했더니 담당 교육자로부터 “드디어 자매님
안에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는 군요”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김성아, 오대원목사님께,
http://www.unifykorea.net/xe/1207)>

대한민국은 기도로 세운 나라며, 교회 부흥과 함께 온 나라이다. 북한은 모든 교회를 부정하고, 지금 극심하게 탄압하고 있는 사상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이다. 어떻게 이런 시각을 가르칠 수 있는가! 이것이 세련된 상대주의, 자유주의적 기독교가 도달한 인식인가? 십계
명은 무엇이고, 십자가는 무엇인가!

<홍정자 사모(홍동근 목사 부인)의 강의는 북한이 얼마나 괜찮은 나라인가를 역설하여 북한 체제를 그대로 대변하는 목소리로 여겨졌습니
다. 북한학교측에서는 북한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하는 용도로 들으라고 했지만 북한선교사가 되기 위해 이 분의 강의가 왜 필요
했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성아, 같은글)>

우선 홍동근 목사의 부인이 북한선교 캠프의 강사로 초청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대원 목사는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이 있다. (
http://blog.daum.net/hakema/480)

<-질문자: 홍동근 목사님과의 인연을 듣고 싶습니다.
-오대원 : 영락교회 다닐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의 부모, 형제, 친척이
모두 북한에 있어서 처음으로 김일성대학에서 ‘기독교학’을 가르치게 되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분은 한국 입국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한국정
부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남북관계에서 그분은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에 봉수교회를 세우게 된 것도 그분
이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설립도 그렇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역이라 빨갱이란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재평
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봉수교회가 교회인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자칭 ‘그리스도인의 모임’인가?
아니다.‘사단의 회(會)’이다. 홍동근 목사는 누구인가? 그의 ‘미완의 귀향일기’(한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본 고향나라는 듣던 것과 달랐다. 그곳 사람들은 외세의 지배가 없는 자주하는 나라를 세우고 주인이 되어 살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필요들을 갖추고 살고 있다. “김일성 생일에나 쌀밥을 먹는다”고 했던 것은 욕이었으며, 실업자도 거지도 없고 청소년
범죄도 없었다. (…) 식량의 자급자족도, 11년 의무교육도, 의료 및 사회보장도, 무료주택도, 세금철폐도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고향나라 사람들의 그 검소한 생활, 부지런한 노동,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전체사회의 복리에 기쁘게 바치는 자기 희생의 정신에 감동되었
다. 또 인민을 섬기는 것을 최고의 영웅으로 받드는 인간봉사심, 조국을 어머니라 부르고 민족을 친형제로 여겨 돕는 나라사랑과 동족사랑
의 열정, 그리고 공산주의 이상을 다그치기 위해 부단한 사상혁명으로 자기를 개조하고 혁신하여 쉬지 않는 영적 훈련 등을 보고 마치 종교
적 경건 같은 것을 느꼈다. >

홍동근 목사에게 박정희는 ‘독재자’고, 김일성은 ‘영웅’이고 ‘지도자’다. 그를 섬기는 북한 인민을 칭찬했고, 그 자신도 북한에서 사망하여 애
국열사릉에 묻히기까지(2001년) 김일성에 충성했다. 1980년대 말 주사파 대학생들은 이 책을 신봉했다.(주사파 교과서 [강철서신] 맨 앞부
분에 이 책이  인용돼 있음.)

한상렬 목사를 배출한 기독교장로교 교단의 증경총회장을 지냈고, 손학규 민주당 의원의 ‘멘토’ 로 알려져 있는 박형규 목사는 홍동근 목사를
적극 변호하며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3/h2007032515465621060.htm, )

<고국의 동지들이 유신독재를 저항하다가 투옥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는 이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자기의 자리에
서 최선을 다해 동지들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했었다. 우리는 홍동근 목사를 미국에 있는 우리의 세력의 일부로 간주했고 그의 활동이 우리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미완의 귀향일지, -머리말을 대신하여)>

한편 오대원 캠프에 빠지지 않는 강사 피터양 선교사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강사셨던 피터 양 목사님께서는 1980년대 말부터 북한 선교를 했다며 “탈북자 말을 믿지 말라”고 했고, 북한주민들에게 복음을 전
하기 위해 김일성 시체가 미이라 상태로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절하였던 본인의 경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절을 하면서도 마
음 속으로는 기도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김성아, 같은글)>

이것이 신사참배가 아니고 무엇인가! 총칼로, 강압으로 신사참배를 할 때 속으로도 천왕신앙을 믿었던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자발적인 신사참배가 아닌가! 이렇게 자발적인 신(新)신사참배 행렬로 끌려들어가는 것이 북한 선교이고, 이것이 오목사가 구상하는 “New Korea”의 미래인가!

오대원 목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누누이 북한의 인권 문제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김성아씨도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목사님께서는 강의 중에 “북한 정권을 상대할 때에는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
다. (김성아, 같은글)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나라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3. 한국 기독교는 점령당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누구의 원수인가? 당신들의 부모가 굶어죽고, 아이가 유린당하고, 딸이 강간당하고, 친구가
총살당하고, 당신 자신도 지금 폭압아래서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당신들의 원수가 아니다.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다.

성도들이 모은 돈 수 백 억을 들여서 세운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김일성주석은영원히우리와함께계신다”  일명 ‘김일성 임마뉴엘탑’이 올라
서도 “그것도 전략”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선교 전략이라는 것인가! 그런 식의 선교전략은 이슬람에는 몰라도 기독교에는 없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 교회는 왜 이토록 신앙심이 없는 것인가? 왜 이렇게 기독교를 모르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피값을 이토록 싸구려로 만드는 가짜 목사들! 원수를 사랑하라! 는 이 아름다운 말씀을 악을 허용하고, 악에게 무력해지기 위해
사용하는 거짓 기독교인에게 한국 교회는 점령당하고 있다.

 

4. 진짜 북한 교회는 순교자의 몸이다

가장 많은 기독교 순교자들이 지금 북한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 교회는 순교하는 북한 교회가 보이지 않는가?
피 흘리는 북한 교회가 어떻게 봉수교회처럼, 칠골교회처럼 생겼겠는가! 지금 진짜 북한 교회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다.
교화소(교도소)에 있다. 꼭꼭 숨어있다. 탈북했다가 교도소에서 잡혀 고초를 겪었던 어떤 여인의 증언이다.

“한 발을 들고 있어야 될 정도의 빽빽한 감방에서 갑자기 한 여성이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나는 중국에서 하나님을 잘 안 믿었는데
여기와서 보니 하나님을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질질 끌려나가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불렀
어요. 아마 보위부 감옥쪽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어요. 아마 죽었겠죠.”

북한 교회들은 이렇게 쓰러져 가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를 미워하면서 김일성을 숭배하게 된 가짜 지식인들에 의해 한국 지성사회도, 햇볕에 취한 정치계도, 이제 한국 교회도 무너져 가고
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회개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예레미야 1장 13~14절을 펴자.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
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출처 조갑제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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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원 목사님께   출처:
http://mvtv.kr/r5  /2010.09.25

목사님께서는 강의 중에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데이빗 로스(David Ross, 한국명 오대원) 목사는 1970년대 유신 반대 학생 운동을 지원했던 선교사로 1980년대 한국 정부로부터
한 때 추방되었다가 현재 미국 시애틀에 베이스를 두고 북한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국내외적으로 지명도 높은 개신교 목사이다.
필자는 2007년 스웨덴 북한연구학교 NKSS(North Korea Study School)를 석 달간 체험한 후 극심한 혼란을 겪다가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오대원 목사는 한 인터뷰에서 “스웨덴에서 (학교가) 열린 것은 유럽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일을 어떻게 하고 있
는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한 바 있다. 이 단기 북한학교는 북한 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스웨덴과 미국 시애틀에서 열려 왔고,
훈련후 평양으로 아웃리치를 가는 코스를 운영해 왔다. (편집자주) 

 

김성아(한동대국제어문학부)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스웨덴의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뵈었을 때가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한데 벌써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스무 살 막내였던 제가 20대 중반의 대학 졸업반 학생이 되기까지, 지난 3년간 제 삶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스웨덴에서 보낸 3개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 곳에서 느꼈던 엄청난 혼란 때문일 것입니다. 스웨덴의 그 아름다운
바다가 없었다면, 저는 2007년의 그 가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처음 북한학교(NKSS:North Korea Study School)의 입학허가를 받았을 때, 저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북한을 알아가게 될 3개월
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내 혼란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NKSS에서 김일성 연구가 서대숙씨로부터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
국에 대한 증오를, 그리고 북한과 김일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평가서에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했더니 담당 교육자로부터 “드디어 자매님 안에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는 군요”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강의 중에 “북한 정권을 상대할 때에는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강사셨던 피터 양 목사님께서는 1980년대 말부터 북한 선교를 했다며 “탈북자 말을 믿지 말라”고 했고, 북한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김일성 시체가 미이라 상태로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절하였던 본인의 경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절을 하면
서도 마음 속으로는 기도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 부인 홍정자 사모의 강의는 북한이 얼마나 괜찮은 나라인가를 역설하여 북한 체제를 그대로 대변하는 목소리로 여겨
졌습니다. 북한학교측에서는 북한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하는 용도로 들으라고 했지만 북한선교사가 되기 위해 이 분의 강의가 왜
필요했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3개월 간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이것은 옳지 않다”고 외치는 제 양심의 소리와 목사님의 가르침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꼈지만 결국 목
사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당시 제게는 수많은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고명하신 목사님의 가르침을 무시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그 후 3년 동안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만일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이거나,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전쟁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전쟁을 더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서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침묵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보다 전쟁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11)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4:18)"
 
또한 목사님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김일성의 무덤에 절을 한다면, 이것은 사탄의 일을 모두 멸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모욕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탄은 자신의 최고 권세인 사망의 권세를 사용하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탄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사탄의 모든 권세를
이기실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탄의 모든 일을 멸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김일성의 우상 앞에 절을 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승리를 믿지 않는 것이며 그 분을 욕보이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까지 악과 타협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도 악과의 타협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전쟁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의
승리를 의지하기 보다 악과 타협하는 목사님의 가르침은 결코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겨울에 한 손에는 김정일에게 보낼 편지를, 다른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북한에 들어간 로버트 박 선교사님을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무모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려 했던 로버트 박 선교사님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과 북한 주민들을 사랑한 분이었습니다(요15: 13). 이처럼 북한 구원과 한반도의 진짜 평화는 악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할
때에 실현될 것입니다.

 
 김성아 올림
http://www.chogabje.com/

  

*오대원 목사는 북한의 실체에 대한 한국교회의 눈을 가리고 오히려 죄악된 길로 인도한 장본인 입니다.
이 거대한 미혹에서 한국교회가 벗어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posted by isaiah_43 2011. 7. 5. 02:43
수만명을 강연으로 만나보니

 
 記者는 지금 힘겨운 수행 중이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연을 통해서 만나는 이들은 매주 최소 500여명. 많을 땐 수천 명이 넘지만 밥 사주며 찾아 가는 소그룹 모임이 잦아 총계(?)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보수층 이외의 다양한 그룹,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며 民心(민심)을 살필 기회를 갖는다. 지난 1년 동안 수만 명을 만난 후 내린 소결은 이렇다. 
 

 1. 北韓인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記者는 평소 한국인 심성이 선하며, 북한의 2400만 동족 노예에 대한 침묵은 無知(무지)의 결과로 생각해왔다. 진실을 알리고 사실을 전하면 변화할 것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北韓인권의 참담한 상황을 사진·영상·증언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전해도 마음이 움직여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5% 미만이다. 
  어딜 가든 유사하다. 통상 기독교인이 北韓인권에 관심을 보이지만 일반 교회는 北韓인권에 冷冷(냉랭)하다. 이런 무관심은 大型(대형)교회로 갈수록, 소득수준이 높은 곳일수록 심하다. 
  교회에서 北韓인권을 말할 때면 신도들 앞에 거대한 장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福(복)을 빌러 왔는데 왜 남 얘기를 하느냐?’는 눈빛부터 ‘끔찍한 얘기 좀 집어치우라’는 것 같은 눈빛 등 다양하다.  
 교인은 그나마 낫다. 목사님·장로님 상대로 한 강연은 곤혹스럽다. 100명이 모이면 1~2명은 “왜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하느냐”는 항의를 하고, 아예 “내려오라”고 따지는 이들도 여러 번 만났다. 모두 교회였고 목사였고 내가 전한 것은 가련한 북한동포를 해방하자는 말이었을 뿐이다. 
   경험측상, 北韓인권에 열린 집단은 ‘세상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기독교 모임 내지 작은 교회, 또는 청년 신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양심의 영역이 ‘비대칭적으로’ 발달된 이들이다. 그런 곳은 北韓인권 이슈를 리포좀이 물 빨아들이듯 흡수하곤 한다. 세상은 이래서 썩지 않는가 싶었다. 
  

 2. 안보에 무관심
 
 愛國집회에 나오는 확고한 보수층 이외의 중간지대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安保(안보)에 무관심하다. 핵무기·미사일 사진과 영상, 아무리 떠들어 주어도 반응은 대부분 얼떨떨해 한다.  
 청년층은 심각하다. 그들은 安保문제에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북한과 적당히 ‘화해·협력’하는 게 좋다는 얄팍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나마 나은 집단이 학군단, 軍장교, 공안기관 같은 곳이지만 이곳 청년들 역시 너무나 생소한 개념에 충격을 받는다기보다 의아해 한다. 
  예를 들어 보자. 記者가 어디서 강연을 하든 10·4선언의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20대는 만나 보지 못했다. 초·중·고교 시절은 물론 대학에서도 북한을 친구로 여겨온 데다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돈과 쌀을 줘야 평화가 온다는 좌파의 선동이 거세니 분별을 못한다. 몇 달 전 어느 청년우파 단체에 강연을 갔는데, 강연 직전 설문을 해보니 80%가 자유통일이 아니라 연방제 통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안보에 관심을 보이는 집단은 전쟁체험세대인 이른바 보수층이 유일했다. 요즘은 천안함·연평도 효과도 ‘약빨’이 다 떨어져 버린 것 같다. 전 국민의 70% 정도는 될 중간층 대부분 안보에 둔감한 상태니 愛國心에 호소를 해도 ‘소귀에 경 읽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3. 자유통일에 대한 격렬한 반응
 
 역시 ‘경험측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겠지만, 北韓인권에 무관심하고 安保문제에 둔감한 중간지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이슈는 ‘자유통일’이었다. 기독교인이건 非기독교인이건 마찬가지고 청년층은 더욱 그러하다.
  잠자던 청중도 통일비용이 아니라 통일이익, 북한재건과 북한특수를 통한 통일강국의 비전에 두 눈을 번쩍 뜬다. 북한이 열리면 경찰·군인·공무원 인력이 파견돼 진급할 것이고 기간제·임시제 교사가 교장선생이 되며, 시간강사가 대학교수가 되는 강대국 실현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에 귀 기울인다. “김정일이 다 죽었는데 한 방만 걷어차 버리자” “자유통일은 청년실업·장기불황을 30년은 날려버릴 것이다”라는 웅변(?)에 박수친다. 
  양심이 무뎌진, 애국심이 사라진 이 惡(악)하고 淫亂(음란)한 세대를 이끌어 갈 苦肉之策(고육지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땅의 백성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련의 터널을 벗는가 싶더니 다시 또 비전이 사라진 이 나라 국민은 북한의 절망적 현실은 보기도 싫고, 안보가 무너져 빚어질 재앙도 듣기 싫은 것 같다. 지금 당장 잡아 챌 希望(희망)은 아니어도 김정일 멸망 이후 오게 될 希望 찬 통일강국의 비전에 관심을 보이고 때로는 갈채를 보낸다. 
  양심이 무뎌지고 애국심이 사라진 그러나 상처 많고 가련한 이 땅의 대중은 慰勞(위로)를 원한다. 때론 좌파의 破壞的(파괴적) 변혁에 귀 기울이지만 記者가 전하는 創造的(창조적) 변혁에 무릎을 친다. 어쩌면 나 역시 북한의 2400만 동포에 대한 사랑만큼 이 나라 국민을 사랑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의 강연은 ‘백성을 향한 위로’가 되었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무어라 부르건...이승만의 건국혁명, 박정희의 근대화혁명을 잇는 60년 대한민국의 성취는 또 다른 英雄(영웅)의 통일혁명으로 완성될 것이다. 내가 받아 온 조롱과 비웃음, 경멸과 욕설은 조국이 英雄을 부르는 하늘의 나팔 소리였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불확실한 시대,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을 줄 신념이요, 용기이며, 慰勞者(위로자)다. 나는 소녀처럼 부푼 마음으로 英雄이 올 내일을 기다린다.


김성욱 /리버티헤랄드 대표,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 /2011.07.04 06: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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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iah_43 2011. 6. 11. 10:00

posted by isaiah_43 2011. 6. 11. 03:00




 


posted by isaiah_43 2011. 6. 11. 02:06


















posted by isaiah_43 2011. 6. 11. 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