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isaiah_43 2012. 4. 28. 21:00

 

 

 

 

 

 

 

 

posted by isaiah_43 2012. 3. 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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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iah_43 2012. 1. 21. 22:46



posted by isaiah_43 2011. 11. 19. 20:05
posted by isaiah_43 2011. 9. 8. 23:07



posted by isaiah_43 2011. 9. 1. 23:03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신사도 운동교회들의 회개에 대한 설교는 강하다. 그들은 자주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한다. 나는 신사도 운동이 뭔지도 몰랐을 때에 그들 몇 목사의 설교를 듣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일단 회개라는 단어가 자주 설교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요즘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에서 회개라는 단어는 과연 일 년에 몇 번이나 등장할까? 한번 신경쓰고 들어보는 것도 약간의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에서는 회개라는 말은 깊은 산 속의 산삼같이 진귀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개독교인”이라는 말에 합당한 저질 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가 무우처럼 흔하지는 않더라도 산삼처럼 보기 드물지 않았더라면 개독교라는 단어가 쉽게 한국 사회에서 먹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는 떼를 지어 부지런히 다녔지만, 세상의 마음이 숙연해지게 하는 믿음의 참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독교라는 조롱하는 말이 쉽게 먹히고 말았다.

신사도운동 교회들의 강한 회개의 외침은 바로 이런 상황과 잘 맞았다. 마치 천상으로 호출되어 진노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고 곧 바로 세상에 보내어진 선지자의 일성으로 다가왔다. “교회만 다니면 다 구원 받습니까? 예수를 영접한다고 기도만 따라하면 다 구원 받습니까? 죄를 짓고도 아무 가책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 회개하지 않고 어떻게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까? 회개하세요! 회개하지 않으면 믿는 자도 지옥에 갑니다!”

그들 몇 목사들의 회개에 대한 설교는 확연하게 나와 다른 목사들의 설교와는 달랐다. 그래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설교를 들으며 나에게 부족하고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을 배우고 보충하려고 시간을 들였다. 그런데 조금 더 듣고 연구하니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세례요한 같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세례요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을 닮은 것 같기도 하였지만, 바울의 스타일은 더욱 아니었다. 별종의 회개 멧시지였다.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회개운동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믿는자들을 다 싸잡아서 저질이라며 욕을 보이는 부끄러운 개독시대를 살며 “왜 이렇게 되었나?”, “무엇이 잘못되었나?”, “정말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인가?”라며 반성의 부담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회개의 메신저로 다가온 바로 그들이 알고보니 신사도운동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도, 선지자들이었고, 아니면 그 주변에서 함께 얼쩡거리는 쟁쟁한 신사도운동가들이었다.  

<신사도운동의 회개는 십자가와 맞지 않다!>

회개에 대해서 제대로 바르게 전하기나 하면서 그런다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그냥 봐 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왜곡하면서 회개에 대한 강박관념만 가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들의 설교를 듣고 금새 그들의 회개 병에 동화된다. “회개해야 해!”, “회개해야 해!”, “회개해야 해!” ... 쉽게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리면서, 그런 이상한 회개의 열기를 전파하는 작고 이상한 선지자들로 변해버린다. 그럴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가 그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는 확실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이 전하는 회개의 가르침의 내용은 복음적이지 않고 율법적이다. 율법적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내실 형벌을 예상하고서 그 형벌로부터 미리 벗어나기 위하여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하게 만드는 원인은 하나님의 진노이고, 신자가 회개하는 긍극적인 목적은 진노 아래 떨어지지 않고 현재의 행복과 번영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할 때에 대부분 곧 임할 전쟁, 지진, 화산, 기근 등의 재앙에 관한 묵시가 동반되는 것이 그 증거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곧 그런 일들이 임한다고 한다.

2010년 6월에 검은 아프리카 사람 데이비드 오워(자칭 선지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에 대해 하나님이 미리 경고하신 예언이라면서 전했던 황당한 메시지가 그랬었다. 한국이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난다고 했다. 미사일이 날아들어 발전소가 터지고, 빌딩들이 무너지고 ... 어쩌면 핵이 터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무렵 주일 설교 시간에 아프리카 무당의 형편없는 개소리라고 말해 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 한편으로 두려워했고, 심지어 많은 목사들까지 들어서 손해 될 일이 없다며 성도들에게 회개를 권유했었다. 회개라는 중요한 단어와 개념을 강조하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비해져야 한다고 하니 사실 여간 혼란스럽지가 않다.

그러나 그런 회개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하라고하시는 바라시는 회개가 아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무엇일까? 그런 말을 듣고 아무리 회개를 아무리 많이 해도 마음에 평안이 오지 않고 영혼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오래 회개기도를 해야 그 재앙이 철회된다는 것인가? 또 그 당시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다. 다음에 다시 잘못하거나 죄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진노를 보내시지 않으실 것인가? 지금 회개한 것이 그때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율법적인 회개에 세뇌당하면 계속 이러한 진노와 회개의 쳇바퀴에 벗어날 수가 없다. 영원한 구원으로 인한 성도의 행복과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확실한 은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성도에게 주신 자유 등의 기독교 신앙의 중심 기둥들이 부러지고 만다. 그래서 사탄은 시시적절하게 이런 율법적인 회개사상을 퍼뜨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회개는 복음적 회개이다. 복음적인 회개의 원인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심판과 재앙이 아니고 이미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다. 심판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회개가 아니고, 십자가를 통하여 보내신 성령의 감동을 입어 변화된 마음으로 인한 자발적인 회개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고, 그 말씀에서 심히 벗어나 있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됨으로 회개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가 많아지고 깊어 질수록 그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그 영혼이 더욱 행복하게 되고 자유하게 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함으로 두려움이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복음적 회개이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제 15장 회개에 관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질과 의로우신 법에 반대되는 자기의 죄들의 위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더러움과 가증함에 대해서 보고 느낌으로,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음으로, 자기의 죄들을 매우 슬퍼하며 미워하며, 그 모든 것들로부터 들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와 그의 계명들의 모든 길들에서 그와 함께 걷기를 결심하며 노력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신사도운동가들의 회개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율법적이다. 외국의 신사도운동가들보다 이상하게 한국의 신사도운동가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간다는 것을 강조한다. 피터 와그너나 다른 외국의 신사도운동가들이 노골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한국과 미국의 이민교회의 대표적인 신사도교회의 목회자들은 거침없이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간다고 설교하고 있다.  

그러한 회개 설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회개가 하나의 구호가 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구호를 외치면서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떠나 다른 곳으로 빠져 들어 간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한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떤 교회로 옮기고 나더니 그렇게 변해가는 친구나 이웃을 보고서 걱정하고 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친구가 새로운 교회로 옮기고 난 후에부터 갑자기 회개에 대한 이야기 하고, 전쟁이니 지진이니 ... 그런 소리를 갑자기 자주 하고 있다면 걱정하시면 상담하는 매일을 주셨다. 그 교회의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도처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사고와 재해들에 대한 소식이 CNN 방송같이 빠르게 보도되고 있었다. 신사도운동 교회였다. 그런 것들이 모두 그들의 불순한 회개사상과 얽혀있는 것들이었다.

온전치 못한 연약한 양들을 지배하려는 술책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뭔가 다른 선지가적인 설교로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각 크고 작은 다양한 죄를 달고 사는 죄인들이며, 누가 강하게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이 찔리고 약간이라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충 아무에게나 조금만 분위기를 잡으면서 “당신의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색이 달라진다. 오래 전에 영국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정치인 10여 명에게 아무런 보충설명을 달지 않고 아주 간단하게 “다 들통났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의 전보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 전보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조용히 잠수하여 한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죄를 항상 달고 산다. 성도들에게도 죄가 달려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오직 공동묘지에서 누워있는 자들에게만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마음이 더 순수하고 여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신사도운동의 회개에 속아서 함께 휩쓸리는 것이다.  

<죄에 대한 바른 태도가 참 믿음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는 믿음의 증거가 확실하게 드러나야 한다. 믿음의 증거들 가운데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참 믿음의 증거는 죄에 대한 우리의 자세이다. 이전에 즐기던 죄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지적으로 친근하지 않아야 한다. 혹시 죄를 범하더라도 속히 하나님 앞에서 바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비성경적이다. 죄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해야 성경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나는 성경을 제대로 아는 바른 목사라고 자부한다. 또한 목사이건 일반 성도이건 상관없이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다시 죄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일평생 신실했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던 사람이라고 칭창 받았던 다윗도 그만 쉽게 죄에 빠지고 말았다. 이웃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서 그만 죄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르게 지도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왕의 권세로서 자신의 죄의 욕망을 쉽게 성취하여 버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의 아내였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시 그 충성스러운 부하까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이용하여 죽이는 또 다른 악한 죄를 짓고 말았다.  

인간은 죄에 대해서 너무 연약하고 대책이 없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부분에서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조금 낳을 수는 있을지라도 다른 심각한 죄에 대한 큰 구멍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음란의 유혹에는 비교적 강하나 돈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돈에는 비교적 강하나 또 다른 죄에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귀는 한 가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공략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각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맞추어서 공략한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면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2,3)

다윗이 그렇게 넘어지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정말 실망스럽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이 죄에 빠지는 그 장면으로만 그의 믿음을 결론 내리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적을 받게 되자 다음과 같이 그의 더러운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토하였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절하게 구했다. 성경은 그 모습까지도 전체 속으로 포함시켰다. 바로 이 모습도 참 믿음을 가진 성도의 진짜 믿음의 증거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인간의 실존을 설명했다. 구원 받은 한 성도 속에 두 가지의 상반된 성향이 존재하면서 서로 심히 투쟁한다고 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육신의 속성을 여전히 죄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한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 안에 이 두 가지가 있다.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두 힘이다. 우리 속에서 서로 대치하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두 속성의 싸움,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이다. 어떤 세력이 더 자주 이기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질이 변한다. 우리의 믿음의 품격도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서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며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80년대에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연배우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후에는 캘리포니아주의 주지사가 되었던 신체가 탁월한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는 외모와 인기와 명성과 돈과 권력 등의 인생들이 사모하는 모든 것들을 갖추고 누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도 알고 보니 죄의 종이었다. 25년 동안 자기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와 아내 몰래 죄를 지으면서 아들까지 낳아서 기르고 있었다. 이제 그 죄가 드러나서 명예와 가정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육신을 지배하는 죄로 인해 평생 쌓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또 한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며 현재 IMF 총재인 분이 맨하탄의 호텔에서 방 청소를 하기 위해 들어온 호텔의 여직원에게 죄를 지으려다가 인생을 망쳤다.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간신히 감옥행은 피했지만, 무장경관의 감시를 받게 되었고, 부끄럽게도 발에 전자발찌를 차야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나와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자리에 서지 않았지만, 본성이 같은 죄인들이다. 시장의 상인이나, 밭의 농부나, 청와대의 대통령이나, 대학의 교수나, 병원의 의사나, 군대의 장군이나 모두가 같은 죄인이다. 예외가 없다. 아무리 세계적인 사람들일지라도 죄의 힘과 권세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초라한 죄인일 뿐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게 36:26).

죄를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 오직 성령만이 죄를 구별하고, 거부하고, 이기게 하신다. 인간이 가장 죄를 잘 대적하고 이기는 때는 성령의 지배와 다스리심을 충만하게 받는 상태, 성령충만한 때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이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시면 마음에 죄를 대적하고 싫어하는 새로운 성향이 생긴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마음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죄를 탐하는 마음이 경계하고 대적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우리의 전 인격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면 죄가 들어올 수 없다. 성령충만은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미 들어온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은혜이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절대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에 대한 애통이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에 구두 속으로 모래가 한 두알 들어갈지라도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데 왜 눈 속으로 들어가면 견디지를 못하는가? 감각의 차이이고 부드러움의 차이이다. 발바닥의 감각은 너무 무디고 두껍다. 그러나 눈은 너무 섬세하고 감각이 예민하다. 그래서 모래알 보다 작은 이물질이라도 들어오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발바닥의 피부와 감각이 그렇게 변하면 모래에 대해서 똑 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마음에서 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살아난다. 완악하고 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럽게 녹아버린다. 그래서 사람을 여럿 해친 사형수도 성령이 임하면 울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회개는 성령이 그와 함께하시는 증거이다. 성령은 죄인들을 항상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결케하시는 영이시다. 그러므로 죄가 못 들어오도록 막기 위해서 성령충만해야 하고, 들어온 죄를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성령충만이 회복되어야 한다. 죄를 대적하는 자세와 죄를 범했을지라도 참되게 회개하는 자세는 그 사람의 믿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회개는 영적전쟁의 절대적 요소이다>

물론 그 누구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다 그렇지!”라고 하며 너무 쉽게 죄를 용인하지 말고 죽도록 싸워야 한다. 가장 큰 마지막 싸움은 항상 바로 자신의 죄와의 싸움이다. 우리 자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싸움이 최고의 전투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가장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마감하기 위한 절대적 요소이다.

회개 없이 영적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는 없다. 회개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수 없다. 회개 없이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도 없다. 회개 없이는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도 없다. 회개 없이 죄를 부리며 다가오는 마귀를 이길 수도 없다. 회개와 영원히 담을 쌓은 것은 하나님과 담을 쌓는 것이다. 회개 없는 믿음은 결국 죽은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자주 많이 회개해야 한다. 나도 충분히 강력하게 회개에 대해서 설교하는 목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말로 회개! 회개! 회개! 하면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성경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목사와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사도운동 교회의 목사들의 회개 설교는 또 다른 심각한 골치이다. 회개를 이상하게 남발하면서 복음을 왜곡해 버린다. 그들은 “진짜 구원 받은 성도도 회개 안하면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거침없이 설교한다. 얼핏 생각하면 나쁠 것이 없다. 가능한 죄를 짓지 않게 만들고, 죄에 빠지더라도 빨리 회개하도록 하니 좋은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좋은 회개라도 어디까지나 성경적이어야 한다. 울어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맞게 울어야 애통이고 간구이고 기도이다. 회개를 어찌 하느냐에 따라 참된 회개일 수도 있고 사탄을 즐겁게하는 종교적인 회개일 수도 있다. 회개가 잘못되면 사탄적일 수도 있을까? 복음적 사고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가슴을 시리게하는 서글픈 사실이다. 혹시 쉬지 않고 "회개해야 해! 회개해야 해!" 하는 사람의 영혼 속에서 구주의 피 묻은 십자가가 점점 왜소해지다가 그만 사라지고 마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 이제부터 신사도 운동하는 목사들의 구원과 회개에 관한 설교를 주의깊게 들어보기 바란다. 그 설교를 듣고 흥분하고 돌아오는 성도들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 뭔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신사도 운동에 앞장서는 그들의 설교를 듣노라면 과연 영혼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지에 대해 의심이 일어난다. 구원은 내가 나 자신의 회개를 통해 힘들여 획득하고 끊임없는 회개를 통하여 껄떡거리면서 유지하고 보수해야 하는 인간의 힘겨운 노력의 결실이라고 여겨진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써야 했던 동일한 상황이 2,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미국의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들에게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참된 회개의 빈자리를 다른 것들이 넉넉히 메우고 있다>

그런 이상한 회개를 전하는 그들은 모두 자신을 선지자나 사도라고 한다. 강력한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그들이 일반 목사도 아니고 더욱 위대한 사도와 선지자라고 하니 일반 성도들로서는 감히 대항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권세가 어떻게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는지, 새로운 기독교 세계가 어떻게 열리고 있는지 ...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면 좋겠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설교를 들어보라! 그들의 입에서 예수의 보혈의 위대한 능력과 권세가 과연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카랑카랑한 선지자 분위기 풍기는 음성으로 회개를 죽도록 외치기는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이 없다. 그들이 이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회개를 매우 강조하는 것도 일반 교회와는 다른 점이지만, 더 심각하게 다른 점은 구원의 영원한 보루인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별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들의 복음은 우리의 복음과 질적으로 다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을 통하여 마귀가 집요하게 벌이고 있는 배교라고 하는 연극이다.    

그 잘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창안하는 신기독교에는 십자가가 없거나 너무나 왜소해졌다. 십자가가 없어진 그 공간이 그들의 요상한 복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열심과 기도와 회개와 봉사와 충성과  순종과 찬양과 기적과 입신과 방언과 다른 많은 것이 들어선다.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화려해 진다.  그러면서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부흥하는 모든 교회들이 신사도운동을 추진하는 교회들이다!", "하나님은 신사도운동하는 종들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신다!"라며 자랑한다. 동시에 그들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부흥으로 홍보된다.

나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들의 이 거짓 부흥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빈번한 단기선교, 뜨겁고 감동적인 찬양, 특히 일어서서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손춤을 주면서 찬양하는 사람들, 신비적인 기도 소리들, 자기들끼리의 뜨거운 결속, 그 지도자들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순종 ... 이것들이 부흥의 진정한 증거들일까?  

이 자체가 꼭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부흥의 알맹이도 결코 아니다. 십자가의 권세와 능력을 힘써 선포하지 않으면서 이런 따끈따끈한 현상이 일어나고 유지된다면, 절대로 반길 일은 아니라고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는 별난 회개의 복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면, 그것이 부흥이고 성령의 역사일 수가 없는 것이다.    

<끝까지 구원을 간직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라고 주장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의 회개의 복음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 결국 구원 받는 사람은 2%~15% 정도이다!"라고 거침없이 말해도 통한다. "입신하여 천국 상황을 보고 온 사람들의 간증을 종합하여 보고, 예언자들의 예언을 종합해 보니 그런 통계가 나옵니다"라고 오중직을 모조리 다 가지신 서울의 한 자칭사도가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그 인사의 회개복음에 은혜 받아서 십자가를 부여잡기 보다는 더 힘써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 어찌 사람으로 부터 왔겠는가? 어떤 영리한 인간이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 이름이 S로 시작되는 그 영리한 것과 그의 종들이 벌이는 일일 것이다.      
구원의 복음은 본질적으로 놀라운 은혜이다. 그 은혜의 넓이와 깊이는 인간의 필설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십자가에서 발원한 구원의 강의 깊이와 넓이는 너무나도 엄청나다. 그래서 "Amazing Grace"라는 찬양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신사도운동의 별종의 회개를 전파하는 그 추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간다! 회개하라! 회개해야 한다!"라고 설파하면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인 보혈이 흐르는 십자가를 떠나게 한다. 대신 부지런히 회개하자고 한다. 그들은 십자가를 뽑아 버리고 사람의 회개의 말뚝을 대신 그 자리에 세우려는 신 율법주의자들인 셈이다.  

<구원의 회개와 성화의 회개를 구분하지 못한다!>

회개와 구원의 관계, 회개와 성화의 관계를 잘 모르는 성도들은 그들의 간교한 설교에 속게 된다. 우리는 두 차원의 회개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구약성경에는 회개라는 단어가 없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로)돌아오라”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회개의 개념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사31:06).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2:12).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간의 행위의 개념을 신약성경은 “회개”(메타노에오)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회개의 개념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차원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구원(Salvation)을 위한 회개이고 또 하나는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한 회개이다.  

사도행전 초반에 나타난 사도들의 회개의 설교는 대부분 구원을 위한 회개를 다룬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회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다리를 통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니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곧 구원의 회개이다. 다른 길들과 다른 다리들을 향하여 걸어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향하여 인생의 길과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구원의 회개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5:31)라고 선포했다. “임금과 구주”라고 했다. 더 이상 예수를 평범한 사형수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를 사회운동하다 실패하고 죽은 죄인이나, 나사렛 출신 저질 이단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와 사망에서 건지움을 받고자 하는 자들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니 그길로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 인격적으로 굴복하여 주인으로 영접하여 겸손하게 생명을 의탁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베드로와 사도들의 회개의 선포의 중심 내용이었다. 이 회개로 인하여 죄에 떨어져 실패한 에덴의 아담으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다. 에덴의 아담이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도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도 바울도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 5:15)라고 한 것이다.    

<회개를 언급하는 성경구절을 멋대로 도용할 뿐이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에 빠진 그 목사들은 베드로의 이런 설교조차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 전혀 엉뚱하게 제 멋대로 설교한다. “구원은 예수를 자기의 임금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가 임금인데, 어떻게 예수가 싫어하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임금이 싫어하는 일을 그대로 달고 살수가 있습니까? 임금이 싫어하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를 자기의 임금으로 삼은 사람이 예수가 싫어하는 죄를 그대로 둘 수 있습니까? 임금이라면서요? 그게 정말 예수 믿는 겁니까?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니고, 목사라고 다 같은 목사가 아닙니다. 영혼을 죽이는 소경된 설교자들에게 영혼을 맡기지 마세요! 진짜로 구원 받은 사람일지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갑니다!”라고 거침없이 외친다.

참으로 살 떨리게 하는 강한 회개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는 베드로의 의도와는 전현 상관이 없는 설교이다. 베드로가 구원의 차원에서 언급한 회개를 그들은 성화와 영적성장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한다. 바로 여기서 복음의 중대한 변질이 일어난다. 구원을 위해 자기 지혜와 자기 노력을 버리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의탁할 것을 결단하는 구원의 회개와 영적성장과 더 깊은 성화로 나아가기 위한 성화의 회개를 혼탁하게 섞어서 외친다. 그러니 성도들이 구원과 회개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결국 그들의 구원이 시시때때로 출렁거리고 덜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의 회개는 구원의 영속성을 훼손한다!>

더욱 중대한 사실은 그들의 설교에는 구원의 영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복음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은 오직 그 자신이 죄를 짓느냐 마느냐, 그리고 회개를 하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죄를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에서 어떻게 건강한 성도가 태어나고, 자라고, 훈련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수시로 확실하게 구원 받은 성도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자주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서 외친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하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히6:5,6).

이 말씀으로 이미 구원 받은 성도의 구원의 박탈을 자신있게 말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신사도 운동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구원에 지극히 합당한 삶을 풍성하게 가꾸어가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값없는 구원의 은혜와 풍성한 성령의 내주하심과 역사하심을 다 알고 경험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서 그리스도를 다시 부인하면 비록 후에 회개할지라도 결코 이전과 같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신령한 관계를 얻을 수 없고, 그와 같은 믿음의 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핍박이 거셀지라도 배교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라는 격려이며 동시에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상한 회개사상을 전파하는 신사도운동가들은 이런 중요한 말씀을 이미 얻은 성도의 구원의 박탈과 변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본문으로 삼아 버린다. 그리고 은혜로 얻은 구원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성도 자신의 역할의 지극히 중요하다는 근거로 삼는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요10:28).
“너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으니라”( 요 10:29).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절대적 주권에 의한 성도의 구원의 영속성을 말하는 위의 말씀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조화를 시킬 것인가? 결국 그들의 가르침과 사상은 정확무오하고 우리의 신앙과 삶의 절대적인 절대적 기준이 되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사상과 운동이 마귀에게서 나왔다는 증거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근사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면 무조건 버려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진리일 수 있는 것은 우주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회개 설교로 영혼들이 시계추처럼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간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9)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이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와 신앙적인 선택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선물로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인간이 스스로 만들고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믿는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오래전에 택하셨고, 때가 되어 믿음 속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열매를 기대하시고 계시다. 인간의 그 어떤 조건에 근거하지 않았으니, 구원받은 영혼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속하였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행위와 믿음에 구원의 유지가 달렸다면, 과연 처음 구원을 끝까지 유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사람이 처음 구원 받고서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갈 때까지 시계추처럼 얼마나 자주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다가 마지막 한 곳에 안착하는 것일까? 신사도 운동의 복음은 우리 영혼을 이렇게 기구하고 불안스럽게 만든다.    

조금만 신경을 쓰고 들으면 그들의 설교에는 십자의 대속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하리만큼 그들은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를 말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게도 예수의 보혈의 공로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의 외침은 Satanic하다. 십자가와 예수의 보혈이 없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아무리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풍성해도 그런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교회가 아니다. 우리 구원과 구원의 영속성의 사유가 십자가와 보혈이라는 사실을 거의 강조하지 않는 목사들은 대부분 신사도운동에 미혹받아 진리에서 벗어난 그들이다.  

신사도 운동을 앞장서 전개하는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그는 처음 예수를 믿는 단계에서부터 모든 죄를 회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설교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말하지 않는 것은 입장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값없는 구원의 은혜, 오직 십자가를 부여잡는 믿음으로 인해 임하는 구원의 은총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라는 구절을 그럴 듯하게 인용했다. “복음을 믿으라!”라고 하는 부분보다 “회개하고”라고 하는 부분이 앞서 있으니까 먼저 모든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한 후에 드디어 예수를 믿을 수 있고, 그때 구원이 임한다는 식이었다. 신사도 운동은 이렇게 복음을 왜곡한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렇게 구원받았습니까? 아직 영혼이 죄 속에서 죽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 은혜로 부어주시는 성령의 세례없이 어떻게 자기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과연 자기 죄의 몇 %의 회개해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갈 자격 생긴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끝가지 구원을 간수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더럽고 추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를 의지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아무 공로 없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합니다!”라며 진심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구원 받는다. 이것이 구원의 회개이다. 이 외의 그 어떤 것도 구원에 작용하는 것은 없다. 다른 어떤 것도 추가할 인간의 것이 없다. 이것이 참 복음이고, 이것이 구원을 얻는 회개이다.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는 영적성장과 성화이다>

그렇다면 이 구원의 회개가 진정이었는지? 정말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것은 삶의 변화이다. 삶, 사상, 가치관, 세계관에서 성경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거듭난 영적생명의 성장이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구원의 회개가 확실할지라도 영적훈련이 아직 너무나도 미비하면 뚜렷한 변화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흔적이 없다하여 쉽게 죽은 영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의 감격을 느끼는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성경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좋은 예가되는 인물은 예수님을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이다. 그는 구원의 감격을 느끼는 순간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눅 19:08).

구원의 회개로 인해 거듭남과 새로운 생명을 얻고 나면 즉시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전까지 즐기고 좋아하던 죄에 대한 새로운 태도이다. 느낌이 달라진다. 서서히 결별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시작되는 성화이다. 성령께서 성화의 역사를 시작하시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치 못한 오래 묵은 죄악된 습성들과 취미와 기질과 각 종의 죄들이 다스려지는 성화의 회개가 일어난다.

이 일은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쉬지 않고 일어나는 과정이다. 전인격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활동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사도 바울은 이 과정을 “구원을 이룬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그러나 신사도운동가들은 이 말씀을 성도의 구원의 불안정안 달랑거림으로 해석한다.

<성화의 회개는 일평생 지속되는 성령의 열매이다!>

신사도운동에 미혹된 불쌍한 목사들과 참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의 차이는 여기에서 극명하게 갈라진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구원의 회개와 성화의 회개를 구분하지 않는다. 구원의 회개와 성화의 회개를 동일시하거나 혼합하여 설교한다. 구원 받은 후에 성화와 영적성장의 도상에서 일어나는 회개를 지옥으로부터 건지움 받은 구원의 회개와 같은 차원에서 가르친다.

그리고 그 회개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구원을 유발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신앙적 공로와 조건으로 만들어 간다. 성화의 도상에서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어지는 성화의 회개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도 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인 것처럼, 그때마다 천국과 지옥이 교차되는 것처럼 선포한다. 이것이 사탄의 계교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보가 더 큰 말씀의 변질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사도바울이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했던 일이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성경에는 말씀을 변질하거나 왜곡하거나 더하거나 빼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9).

이런 일을 기어이 당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신사도운동에 빠진 불쌍한 목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빗나간 회개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서 다 나타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일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 마치 벌건 대 낮에 강도가 기승을 부리듯이 버젓하게 그런 설교를 하고 다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순진하고 우매한 성도들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은혜 없는 종이 되어간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구원을 유지하는 사람은 2% ~ 15%에 불과하다고 그 자칭 사도가 입신하여 천국을 보고 온 사람들의 간증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시니 더욱 오금이 조리고 떨릴 것이다.              

구원의 여정에서의 회개와 성화의 여정에서의 회개는 다르다. 성화의 여정은 일평생이며, 성화의 회개도 일평생의 일이다. 전혀 열매가 없는 나무는 산 나무가 아니라 죽은 나무이듯, 전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그러나 성화의 회개가 더디고 느리다고 해서 그가 죽은 영혼이거나, 지옥에 떨어질 영혼이라고 설교하면 안 된다. 영혼이 분명히 거듭났을지라도 영적훈련이 시작되지 않았거나 미약하면 행동과 성품과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보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였다!>

아무리 믿음이 게으르고 열매가 없을지라도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설교할 수 없다. 성도의 영혼의 보존은 성도 자신의 노력과 힘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의 영속은 인간 자신의 행위와 믿음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그렇게 구원받았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롬 5:8).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에 우리 영혼에 이미 미쳤고, 아무 공로가 없음에도 그 은혜와 사랑 때문에 주권적으로 구원하셨다고 바울은 선언한다. 성도의 영혼의 보존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 성도의 구원의 영속성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달렸다.

마귀는 절대로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에 도전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있는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을 빼앗지 못한다. 만일 마귀가 우리의 죄나 다른 어떤 다른 수단으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내어 다시 지옥에 떨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이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못 믿겠다. 나를 마귀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그가 왜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부분에서 마귀와 타협하거나 협상하지 않으신다. 마귀는 하나님의 그 영역을 절대로 넘보지 못한다.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 1:12).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라”(롬8:39).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아무도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한번 영생을 얻은 자는 다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인간의 머리는 이 진리를 이해하고 담기에는 너무나 작다. 그래서 나도 어리석게 이전에 이 진리를 바로 가르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마귀는 하나님이 택하신 영혼을 건드리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죽였다 살렸다 변덕을 부리시지 않는다. 마귀는 우리에게 고난을 줄 수 있을지라도 영혼을 빼앗거나 죽이지는 못한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신사도운동 교회의 이단 목사들의 사상은 마귀의 힘을 찬양하는 악한신학이다. 마귀가 죄를 짓도록 유혹할 때에 걸려드는 대부분의 불완전한 성도들이 다시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구원하는 하나님이나, 다시 지옥에 가도록 만드는 마귀나, 서로  잡아당기는 방향이 다를 뿐 단순 능력으로 치자면 누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신사도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마귀를 높인다.

사랑하는 자녀가 지옥가게 되어도 그대로 방관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죄에 빠진 자녀를 회개하도록 책망하시고 때리시기까지 하심으로 기어이 건지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않는다. 불순종의 죄를 짓고 도망간 요나를 깊은 물에 던져지게 하시고, 큰 물고기가 삼키게 하시고, 다시 뭍으로 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영혼과 지옥과 천국, 모든 것을 다스리고 주관하신다. 주권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마귀와 공유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신사도 운동은 어느 정도 죄를 회개하고 도덕적 영적 수준이 평균은 넘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고, 그래야 구원이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성경은 모든 죄인들이 조건없이, 값없는 은혜로 피 묻은 십자가를 의지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한다.

▣신사도 운동은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만 회개하는 것처럼 강조한다. 각자가 회개하고 안하고에 따라 영혼의 생사가 갈린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하여 은혜에 이르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신사도 운동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확실하게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과 은혜에 근거하여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신사도 운동은 죄인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진부한 주제라고 가르친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교회의 질이 떨어지고 성도들이 저질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주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십자가를 통해 부으시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이다.  

<신사도운동은 기독교의 핵심을 약화시킨다!>

생각을 조금만 하면 신사도 운동의 성경을 파괴하는 악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대도 많은 목회자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성도들을 경계시키지 않고 있다. 신사도운동의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 성령의 인도하심, 보혈의 권능을 약화시키거나 실종되게 하고 있다. 그 대신에 자력구원, 자력갱신, 자가회개를 가르친다.

그들의 최고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가 있는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다양한 모든 것들이 풍성하게 넘치고 있다. 더욱 뜨거운 기도, 더욱 빈번한 회개, 뼈와 살까지 다 녹이는 굉장한 찬양, 여름보다 뜨거운 단기선교, 매 주일 이웃 교회에서 이탈하여 몰려오는 교인들이 넘친다. 이것을 부흥이라고 자랑한다.  

과연 그들의 중심에 피 묻은 십자가가 있는지 보라! 과연 그들의 의가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의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독교의 시작이고 근거이고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의는 자신이 회개하는 행위를 통하여 얻고, 계속 회개함으로 유지되는 의이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 이상하게 여러 면에서 그들의 색채는 구약적이다. 갈보리 언덕에 피 묻은 십자가가 서기 이전의 유대인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빼 박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신사도 운동 교회의 신앙이다. 특히 그들의 회개도 구약적이다. 그들의 많은 설교들과 핵심 주장들을 보노라면 지금 우리가 신약 교회에 속했는지,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결국 하면 할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멀어지게 만들고 있으므로 신사도운동의 회개도 짝퉁인 것이 분명하다.



2009.12.04 정이철 목사님 http://www.cantoncrc.com/
posted by isaiah_43 2011. 8. 31. 23:21


posted by isaiah_43 2011. 8. 27. 23:50
posted by isaiah_43 2011. 8. 19. 19:24
말세 논쟁들에 대한 근본적인 답
(666,종교통합,이스라엘,동성애 등등)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이스라엘의 회복,
휴거, 민족의 부르심 등등

아무리 성경이 말하고 있는 현상들과 계시들일지라도
그것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복음안에 뿌리 내리지 않고
그런 것들을 다룰때 나오게 되는 끔찍한 육적인 열매들 때문에
그 사람들만 이상하게 보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성경안에 있는 그 계시와 현상들도
터부시하고 부인해버리게 되고
단지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특히나 요즘은 참 논쟁이 많은 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때가 정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24:4)

우리가 잘아는 대로
복음은 신학지식이나 교리 따위가 아닌
하나님과 살아있는 언약관계를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50:5,요17:3,마26:28)

개인적으로는
지금 정작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할 바인 복음에 힘쓰지 못하도록
우리의 집중을 다른 곳으로 흐트러 놓고
우리끼리 쓸데없는 것에 치열한 논쟁을 붙여놓고는
뒤에서 웃고 있을 사탄 새끼의 싸다구를 최소 천대는 후리고 싶다

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에 대한 논쟁
종교통합의 찬반여부
동성애의 찬반여부
휴거의 시기
프리메이슨 관련 루머에 대한 진위 논쟁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
이스라엘 관련 신학적 논쟁
짐승의 표 관련 논쟁 등등

요즘 교회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논쟁은
정말 무의미하고 쓸데 없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들이 논쟁거리가 되는것은 쉽게 말해
우리가 복음에 정말 뿌리 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에 거하지 않기)
맺게되는 열매 들일 뿐이다
(딤전1:3-7)

이 모든 논쟁의 주제들은
단순히 복음에 관한 신학적 지식이 아닌
복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딤전1:9-11)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창조와 진화 중 무엇을 믿겠는가?
(창1:1)

정말 복음이신 예수님께 뿌리 내린 사람이
과연 종교통합을 찬성하겠는가!?
(행4:12)

정말 복음에 의해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된 사람이
음란의 마지막 절정의 모습인 동성애를 찬성하겠는가!?
(롬1:18-32,엡5:31-32)

정말 복음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사람이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휴거 시기와 같은 무익한 논쟁을 하는데 시간을 들이겠는가?
아니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겠는가?
(살후2:1-15,엡5:15-17,딤후1:7-8,딤후4:1-8)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사람들의 외모에 관한 뜬소문만을 듣고
그것을 믿으며 사람들을 판단하겠는가 아니면
예수님 처럼 하나님께 듣는 것만 판단하며 살겠는가!?
(요5:30,요7:45-52)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복음으로 이루신 일들 더욱 깊이 알아
감사와 사랑(복음)에 빚진자로 살겠는가?
아니면 그에 따라 열리게 되는 종교적 지식들에 뿌리내려
다른 사람에 대해 교만해 질뿐만 아니라
세련되어 보이는 유대적 종교에 빠져
은혜를 버리고 다시 종이 되겠는가!?
(마5:17,요19:30,골2:11-3:11)

결국 이 모든 논쟁들은
복음이 없기에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들이다

복음으로 돌아감 없이
창조와 진화에 대한 무익한 과학 지식들을 나열면서 논쟁을 한들
하나님 나라에 무슨 진보가 있는가!?
종교통합 찬반에 대해 온갖 이유들과 인간의 논리들을 나열하며
논쟁을 한들 하나님 나라에 무슨 진보가 있는가!?

복음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주제들에 아무리 지식을 쌓고 논리를 쌓은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치 이런 것은
생명의 강이 옆에 대놓고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그 강물을 마시지 않고
그 옆에 스스로 판 메마른 웅덩이들의 깊이를 자랑하며
누가 더 깊냐 옅냐며 논쟁하고 까부는 정말 한심한 짓인것이다

생명의 강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
생명없는 웅덩이의 어떠함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자신도 강을 마시고 생명을 얻을뿐 아니라
주변에 영혼들을 이 강으로 인도해오기 바쁠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복음에 온전히 돌아온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과 서로 생명다해 사랑하는
살아있는 관계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이런 문제들은 더이상 논쟁 거리가 아니게 된다
(갈3:22-25)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엇보다 복음에 힘써야 할 이때에
복음의 부재 때문에 나오게 된 이 결과들의 찬반에 대한 논쟁에
힘쓰게 하는 것은
답도 없고 결론도 나지 않고
열매도 없고 무익하고 쓸데없는 짓이다
즉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짓인 것이다
(딤전6:4-5,딤후2:23)

아무리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찬반의 여부를
내가 정확히 안다할지라도
이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답인 복음으로
영혼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에 대한 논쟁 자체에 머무른다면
정작 속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일 것이다

특별히 짐승의 표와 베리칩에 관한 쓰잘데 없는 논쟁이
최근 난무하는 것을 보면 정말 사탄한테 열받는다

짐승의 표는 어차피 주님안에 있지 않은 사람(참 구원)들은
모두다 받는 다고 되어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다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말하고 있지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은 사람도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계13:8,13:15-18)

그런데 우리는 다들 성경보다 더 똑똑하시고 지혜로우셔서 그런지
성경도 말하고 있지 않는 상황을
우리 스스로 가정해 만들어 놓고 이상한 신학적 논쟁에 빠져
이상한 우리 논리로 쥐어짜낸 결론을 붙잡고 까분다
(롬12:1-3)

마치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자기들만의 가정을 만들어 놓고
예수님과 논쟁하려고 했던 사두개인들 처럼 말이다....
(마22:23-33)

한마디로 우리는
신학적으로 구원을 잃냐 안잃냐 하는
성경도 말하고 있지 않는 논쟁에 빠지거나
`그 표가 정확히 무엇이냐`에 대해
논쟁하는 것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주변 영혼들을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로 인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즉 복음으로 영혼들을 인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지금 짐승의 표가 베리칩이던
지금보다 더 발전된 다른 무엇인가로 이름이 바뀌던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지금 굳이 짐승의 표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어도 된다
굳이 짐승의표에 대하여 내 자신의 의견과 동의 안해도 된다
(막9:38-40)

정말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에만 있다면
정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정말 복음안에 거한다면
자기와 교제하는 한 영혼 한 영혼에게 필요한 때에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해 줄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은
결국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 때문이다
(요16:12-13,요14:26)

정말 하나님안에 거하고 있는 구원받은 살아있는 관계이지만
아직은 하나님께서 짐승의 표에 대해 안열어 주셨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들이나 단체를
버림받은 자나 뭐 저주받은 자라 단정한다면
정작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고전13:9-13,눅9:53-55)

어차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언약 관계(구원)에 들어 있지 않다면
모두가 다 짐승의 표는 편하게만 여기고 당연히 여기며 받을 것이다
(계13:8,13:16)

모든 관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결국에는 지옥 갈수 밖에 없는 단순한 종교적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정말 살아있는 언약관계에 있는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 때문에 짐승의 표를 안받을 것이다
(마5:20,마7:21-27,요14:15,14:21,14:23,요일2:5-6,시50편)

논쟁에 빠지지말고
하나님 마음에 빠지고
다른사람과 논쟁에 힘쓰지 말고
다른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하는 때이다

정말 주님 오실때가 가깝다
논쟁의 찬반 자체가 미혹이기 이전에
복음이 아닌 논쟁에 메이고 머물게 하는 것이 근본된 미혹이다

주님이 주의 거룩한 자들과 곧 임하실 때가 가까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음에 힘쓴 에녹처럼
우리도 논쟁이 아닌 복음에 힘써야할 때이다
(유1:14-15)

곧 오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논쟁꾼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전도꾼으로 살것인가?

제발 제발 논쟁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 거하자

주님이 곧 오신다


출처: 박성업 선교사님 트위터 http://www.twitlonger.com/show/cgbd6p
posted by isaiah_43 2011. 8. 11. 17:49
지금은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지난 8월 2월 난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담임)님의 소천 소식을 접했다.
그분은 내 생애 첫 휠체어를 선물해주신 분이셨다.

난생 처음 동대문 의료상회를 돌아다니며 그 많은 휠체어 중에서 작고 아담한 갈색 휠체어가 눈에 띄었다.
마치 내 모습처럼 작고 아담한 모양이 내 마음을 끌어 당겼다.
사실 난 그동안 “난 죽어도 휠체어 따윈 안 타!”라는 고집을 피웠었다.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
내가 휠체어에 앉는 것은 내가 장애인임을 세상에 드러내고 포기하는 것 같아 피해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걸을 수가 없을까? 이제 다 된 것인가?”라는 나 자신의 내면의 질문들...
하지만 그 휠체어를 타고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 세상,
누군가 밀어줘야 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상과 만난 것이다.

그 첫 스타트를 끊게 해주셨던 자애로운 미소의 하용조 목사님은
내겐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열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목사님은 주님 품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 속에 기쁨을 누리시겠지.
지금 이 시간 난 그 분이 한없이 그립고 또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때, 마지막 주자들
 
97년 5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거의 1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국내외적으로 많은 곳을 다니며 주님의 마음을 전했고,
그 여정 가운데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 자신의 어떠함 보다는 한 영혼이라도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마음,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던 사역 가운데 적신호가 켜졌다.

그날도 피곤에 지쳐 봉고차에 몸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약 2시간여 동안 쉼 없이 달렸는데 목과 척추에 큰 무리가 느껴졌다.
심각한 목디스크에 의한 전신마비. 난 더 이상 사역을 위해 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병상에 눕고부터 주님은 내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이시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속에 주님은 마지막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세계지도를 보여주시면서 세세히 알려주시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미국 집회를 갔다가 미국에 대해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부터 마지막 때에 관한 은밀한 징조들...
나는 매일 새벽과 낮, 수시로 깨어 있을 때마다 주의 음성을 들어 귀찮고 시달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나
불안하거나 공포감은 없었다. 너무 너무 힘겹게 잠들었는데 주님은 수시로 나를 깨우셨고, 계속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난 그 주님의 끊임없는 음성대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놀라운 반면 신기하기도 했다.
다니엘서와 마태복음 24장과 요한계시록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숨은 그림처럼 그 베일이 벗겨지는 현실과 미래가
하나하나 보여 져서 숨 막히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것들이 너무 직설적이고 충격스러워서 주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표>라는 소설 형식의 책이었다.
내가 본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적어도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깨어 기도할 것인가.
주님의 신부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마지막 때 사탄은 어떻게 주의 자녀들과 교회들을 미혹하고 저들을 이용하게 된 것인가 등...
이 책의 초판이 2004년이었으니까,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는 성경이 증거 하는 여러 가지 마지막 때의 일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마지막 주자들이다.

무엇보다 교회들이 깨어나야 하고, 청년들을 주께로 되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매일 TV나 인터넷을 열어보기 두려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유명스타, 대기업 총수들이 자살을 하고, 그걸 또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군가가 표현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묻지마 살인 같은 강력범죄들이 쉴 틈 없이 일어나는 이때 믿는 자들이 이것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는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매일의 삶이 전쟁 같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죽어가는 가녀린 생명조차 살려내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여야 하는데
저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고통 앞에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은 너무나 적다.

도무지 저들에게 관심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살인방조죄’를 저지르고 있다.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이거나 아니면 아예 세상과 담을 쌓고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안하는 교회,
혹은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치닫는 교회들은 마지막 때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할 능력과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성령의 역사로 다양한 이적들이 나타나고 은사들이 부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 즉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람의 인생 자체를 바꾸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난 지난해 1월 아이티 대지진속에 힘없이 무너진 교회들을 보았다.
‘건물’인 교회는 이처럼 순식간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사람’인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마치 빌립집사가 걸어 다니는 교회가 되어
에티오피아 관원을 만나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듯이...각자의 걸어 다니는 교회인 우리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절망 가운데 처해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갇힌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늘 꿈꾸는 것이 있다.
기독교 문화사역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
수많은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비전을 찾고 세상 가운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음을 택하려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안식을 찾고,
다시 세상 가운데 용기 있게 그 발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일,
집안에만 갇혀 있던 수많은 장애우들이 자신만의 달란트를 발견할 수 있는 학교가 세워져
그곳에서 꿈을 키워내 세상 가운데 당당히 자신의 일을 갖게 되는 일,
진보와 보수가 기독교 매체들을 통해 만나 진실된 토론을 나누고 협의점에 도달하게 되는 일 등...
이러한 일들이 교회와 기독교방송국들, 그리고 기독공동체들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일반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에덴의 동쪽’이나 ‘제중원’ 같은 드라마를 제작하지 못하는가.
모든 교회가 연합한다면 충분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과 물질들을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주셨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라는 이름 안에 하나 되어 미디어문화사역기금들을 모으고, 인재를 키워내는 일,
기독교적 마인드가 면면에 흐르는 훌륭하고 수준 높은 영화들과 다양한 공연들, 작품들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우리는 해야만 한다.

이러한 꿈들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 요즘 내 기도제목이기도 하다.(생략)

(월간 플러스 인생<신앙계>9월호 인터뷰 내용 중에서............)

출처:
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BOKT/15364

posted by isaiah_43 2011. 7. 29. 00:25

주기철 목사님 마지막 설교 원고

- "나의 5종목의 기원"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 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잠시 기도)
"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야말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시는가 싶더니 또 풀어주시어 이렇게 강단에 다시 서게 되었나이다.
아직까지 제가 받은 핍박과 고난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 이르지 못한 걸 알고 있사오나,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스런 육신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나이다.
사랑하옵는 주님이시여!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간악한 마귀의 흑암권세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주님의 강하신 손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빛되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저 어두움의 사망권세를 물리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불쌍한 어린양들을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이제 이 종이 선포하는 주님의 말씀에 은혜 받고 힘을 얻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5종목의 나의 기원!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으로 내 가까이에 뻗어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숨쉬는 인생은 모두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사망의 권세는 마귀가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인 것입니다.
죽기가 무서워 의를 버리고 죽음을 피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서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도 세 번이나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제왕(帝王), 장상(將相), 재사(才士), 가인(佳人)도 다 죽었고
성현(聖賢), 군자(君子), 위인(偉人), 걸사(傑士)도 다 북망산(北邙山)에 가 묻혔습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는 약자도 불쌍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는 사람, 가엾은 아이를 두고 가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도 허다합니다.

폐결핵 환자로 요양원에 눕지 아니하고 예수의 종으로 감옥에 갇히우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수백 번의 죽음을 당한들 무슨 후회가 있으리오만은, 주님을 버리고 천 년 살고 만 년 산다한들 그 무슨 저주스런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을 욕되게 마옵소서! 주님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이올시다.

(설교 중간에 잠시 기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여!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에게 부활의 믿음을 굳게 하사 나도 부활을 믿고 사망의 권세를 내 발 아래 밟게 하소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발을 쾅 구르며)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주님 밖의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 수는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청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나의 두 번째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가지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문이 끈질긴 만큼 나는 더욱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웬만한 믿음 가지고는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단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 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 주는 데는 용감한 신자들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이 연약한 약졸(弱卒)이 어떻게 장기간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4)고 신신부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도 십자가를 직면하자 그 받으실 고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질 때,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리요!
나와 여러분의 피, 억만 죄인의 죄짐을 대신 지실 때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를 우주도 감당하지 못하여 태양도 빛을 잃고 그 고통의 핏방울은 땅도 감당할 수 없어,
지축이 흔들리어 지진이 터졌던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날 위하여 이렇게 고난을 참으셨는데 내 당하는 고난이야 그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제 받는 고난, 길어야 70 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천 년 만 년 영원무궁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어차피 한 번 죽어 썩을 몸이 죽는 것 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불사의 몸이며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국 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羞辱)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나의 세 번째 기원은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저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아비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가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우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맞아 상할 때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춘풍추우(春風秋雨)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에,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에 어머니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재차 요한에게 부탁하실 때의 심정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셨을까요?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 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어머님을 80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인생을 내게 바치었거늘 나는 남편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 두고 잡혀 다니는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 되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경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不肖) 이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에 제 자식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4명의 아들이 있어 어린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한정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든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 끝없이 처절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셨으리이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저의 자식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저의 자식들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시여! 저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 내 양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의 이리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맡기나이다.
대목자장이신 예수님 손에 이들을 맡기옵니다.

저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저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은 줄 압니다.
저의 어린 자식들도 자비하신 주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한 자를 주님 보혈로 사유하여 주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 마음 차마 못할 일이올시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옵소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떨리는 목소리, 깊은 흐느낌, 흐르는 눈물, 흐느끼는 회중. 감시하던 일본 형사들도 슬금슬금 교회당 밖으로 나가버림)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께 짐 지울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우리 주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네 번째 기원은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漢)나라를 붙잡고 오장원(五丈原)에서 죽기까지 국궁진쇄(鞠躬盡鎖) 사이후이(死而後而),
즉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의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주를 위하고 또 그 교회와 그 의를 붙들고 "국궁진쇄 사이후이", 죽도록 충성하여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백이(伯夷) 숙제(叔齊) 두 형제는 은(殷)나라의 신민으로서 주(周)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 수양산에 숨어 서산(西山)의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굶어 죽으니 백세청풍(百世淸風) 모두 그 고상한 인격에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나라를 위해서 선죽교에다 피를 뿌리니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 대보다 청청창창 시푸르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건 없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와 같은 시를 읊은 그의 충절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귀한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이 땅, 이 나라에 대한 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가 있으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지키느라 풀무불에도 뛰어들었고,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예수를 사랑하는 까닭에 믿음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예수를 사랑하니 굶주린 사자굴도 두렵지 않도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백제나라의 도미(都彌) 부인은 개루왕의 협박과 부귀의 유혹도 물리치고
두 눈 뽑힌 남편 도미를 찾아 일엽편주 조각배로 만경창파 서해(西海) 바다에 떠서 황주(黃州) 마을 뫼 아래서 한 평생 그 남편을 섬겼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의 딸들이 정절을 지키던 피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주후 2백년 카르타고의 벨빼추어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젖먹이와 늙은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뒤에 두고 형장에 나가서
사나운 소뿔에 찔려 죽었습니다.
천고(千古)의 열녀(烈女) 벨빼추어는 지금 주님의 나라에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 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이 몸 죽고 죽어 열백 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정절 변치 아니하겠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 몸 드립니다.
우리 초로 인생 살면 며칠입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살으십시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예수께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짐승의 삶만 같지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는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흐느끼는 교우들을 바라보다가 찬송가 196장을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3절까지 부른 다음, 숨을 돌려 다시 설교)

나의 다섯 번째 기원은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가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시옵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주여, 영광 받으옵소서!!!

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기쁨을 주신 주님께 모두 감사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송가 384 장을 함께 부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출처: http://gagul59.blog.me/8289207





posted by isaiah_43 2011. 7. 25. 10:00



북한에도 라디오방송으로 보내진다는 광야의 소리 남북연합예배(모퉁이돌선교회).예배방송 중, 한 분이 특송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 소리는 노래가 아니었다.그 소리는.. 아픔이고, 사랑이고, 비장함이었다. 흙도 묻어져 나오고 피도 묻어져 나오고..어느새 주님의 눈물이 내 마음을 타고 뺨으로 흘러내렸다.


사명
2011.07.10 광야의 소리(남북연합예배/모퉁이돌선교회) 방송 중에서
전체예배:
http://mvtv.kr/mf
posted by isaiah_43 2011. 6. 8. 09:30















말세에 대한 성경 말씀과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한 설교.

1. 이스라엘의 독립
2. 예루살렘의 회복
3. 복음이 전파됨
4. 유브라데강이 마름
5. 나일강밭이 마름
6. 마지막 시대의 나라
7. 유럽연합
8. 신세계질서
9. 곡 마곡 전쟁의 전조
10. 평화협정
11. 제3성전
12. 통신의 발달
13. 적그리스도의 표
14. 교통수단의 발달과 방대한 지식
15. 미혹
16. 전쟁소문
17. 지진, 기근, 온역
18. 해, 달, 별의 징조 (테트라트, 일식, 월식)
19. 말라키의 예언
20. HAARP

posted by isaiah_43 2011. 6. 6. 00:48




posted by isaiah_43 2011. 4. 29. 23:00


David Wilkerson - A Call to Anguish / http://t.co/hOyGHsO 데이빗 윌커슨/비통함을 구하는 기도


posted by isaiah_43 2011. 4. 19. 10:55




posted by isaiah_43 2011. 4. 5. 21:55



출처: 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BOKT/1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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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동안, 에콰도르의 어린 소녀 Angelica는 천국과 지옥, 주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우시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영원히지옥으로 가는 모습을 볼 때, 이세상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 모습을 볼때, 교회가 예수님을 거의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이 길을 잃은많은 사람들에게 증인된 삶을 멈춘 모습을 볼 때,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사탄의 길로 유혹하는 연예, 오락사업을 볼때, 주님이 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또 그녀가 목격한 것은 우리들의 존경받는 문화의 우상들- 가수, 연예인, 심지어 교황까지도 함정에 빠져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Angelica는 또한 천국이 얼마나아름답고 멋지게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영광스런 곳,전혀 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천국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거룩한 백성들만을 위해 다시 오시지만,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아직도 그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리고 멸망할 이 세상에 남겨질 것입니다.

  ( 장소: 에콰도르 El Empalme 시간: 2009년 9월 29일 오후 7시 )

-Maxime ( angelica의 엄마)

제이름은 Maxima Zambrano입니다. 우리는 El Empalme 의 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고, 우리는 15일동안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제 딸 Angelica도 우리와 함께 참석하고 있었어요. 15일간의 금식기간 동안, 나는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초자연적인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수련회 장에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주셨어요. 우리의 시련과 고통 때문에 우리는 종종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늘 함께 하셨어요. 주님이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예레미아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비록 그당시에 난 몰랐지만,나의 딸은 주님으로부터 아주 강하고 단호한 요청을 받고 있었습니다.

 ★Angelica :

제 이름은 Angelica Elizabeth Zambrano Mora입니다. 전 18살이고, 이곳 EL Empalme에 있는 “Colegio Jose Maria Velazco Ibarra"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제가 12살 때 주님을 영접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 친구 중 누구도 복음적인 삶을살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나쁘고, 끔찍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나를 끌어 내셨습니다. 내가 15살 생일 되던 날에, 난 주님과 화해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두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8절에서는, 두 마음을 품은사람은 모든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런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아빠는 말씀하시기를, “너는 저애들처럼 될 필요는 없어, 보기도 흉하고, 저것은 잘못된 거야” 그러면 저는 대답하곤 했지요, “이게 바로 저의 모습이고, 내가 원하는모습이에요. 아무도 나에게 내가 어떻게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할 권리는 없어요.” 그러면 아빠는 “하나님께서 너를 만져 주실거야. 그가 너를 변화시켜 주실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17번째 생일에, 전 주님과 더 가까워 졌어요. 4월 28일에 전 하나님께 말했어요.“ 주님 전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전 제가 죄인 인 것을 알아요” 그리고 주님께 제 마음을전했어요.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께서 제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 해 주시기를 원해요. 그리고 저를 주님의 자녀로 받아 주세요.” 나는 회개하고 나의 삶을 주님께 다시 드렸어요. “주님 저를 변화 시켜 주세요, ”나는 전심으로 울며, 주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아무 변화를느끼지 못했어요. 유일한 변화가 있었다면, 난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변화였어요.

  그러던, 팔월 나는 15일간의 금식에 초대받았어요. 전 참석하기로 결심했고, 그러나 참석하기 전에 전 주님께, “ 주님 이곳에서 저를 만져 주세요” 금식을 하는 동안,주님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말씀해 주셨지만, 오직 저에게는 아무 말씀도 해 주지 않으셨어요. 그것은 마치 주님께서 나만 보지 못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상처가 되기도했습니다. 전 기도했어요. “ 주님 절 사랑하세요? 이곳에 계신 거에요? 저와 함께 계신 거에요? 왜 모든 사람에게는 말씀하시면서 저에게만 말씀하지 않으시는 거에요?” 나는 주님께 나와 함께 계시다는 어떤 증거를 요구했고, 그때 주신 말씀이 에레미아 33장 3절말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나는, 주님 제게 하신 말씀이에요? 라고 주님께 물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에레미아 33장 3절의 말씀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에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과 그들이 본 것을 간증하는 동안,나는 주님께, 주님 이것은 제게 주시는 말씀인가요? 라고 물으며, 그것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내게 부르짖으라’는 것은 기도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크고 비밀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천국과 지옥일거야’ 그래서 저는 주님께,“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천국을 보여주시는 것을 원해요. 하지만 지옥은 싫어요. 지옥은 끔찍한 곳이라고 저는 들었어요. 주님 그러나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실 것이 꼭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라면, 주님 뜻대로 하세요. 그러나 먼저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 저는 주님께서 저를변화시켜 주시길 진심으로 원해요. 전 달라져야 해요”

  우리가 금식을 끝냈을때, 시련과, 어려움이 닥쳤고, 때때로, 나는 기절할 것 같았고,주님과 함께 걸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고, 그를 더 잘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 관계가 되었습니다. 주님, 성령님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주님, 주님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에요. 저는 주님을 더 알기 원해요.”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생각을 주님과 나누었습니다.

  나는 팔월 한달 내내 기도를 드렸고, 그리고 구월, 주님의 종(목사님)이 우리집에와서 말하였습니다.

“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나는 “아멘”했고, 그러자 그는“나는 너에게 전해줄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어서 왔다. 너는 반드시 준비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네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예레미아 33장 3절 말씀으로 네가 간구했기 때문에 주님이 너에게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실 거야” 나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난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자주의 종은 “네가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 똑같은 하나님을 나도 찬양하고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곧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교회의 몇몇 자매들과 우리 가족중 몇 명도우리의 기도에 함께 참여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하늘이열리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길,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과, 두명의천사가 내려오는 것이 보여요”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 왜 오셨는지 물어봐라”

  그들은 크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크게 빛나고있었고, 투명해 보였고, 황금처럼 찬란하게 빛이 났어요. 그들은 크리스탈 샌들을 신었고, 거룩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 왜 오셨어요?” 그들은 웃으며 말하길,“ 우리는여기에 우리가 수행해야할 일이 있어서 왔단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이제 네가 천국과 지옥을 방문해야하고, 우리는 네가 그 모든 것을 다 마칠 때까지 네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란다” 난 대답하길, “ 아주 좋아요, 하지만 저는 천국만 가고 싶어요.지옥은 아니에요” 그들은 미소지었고,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않고 그냥 머물러계셨다. 우리가 기도를 끝낸 후에도 나는 그들이 거기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또 성령님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그는 거룩하고, 전능하며, 그는 어느 곳에나 계시고, 나는 그를 볼 수 있었는데, 그는 투명했고, 똑같이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빛나는 용모, 나는 그의 미소와 그의 사랑에 넘치며 바라보는 눈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거의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천사들 보다 더 아름다웠고, 천사들은 천사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있었지만, 성령님은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그의 사랑이 넘치고 열정적인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음성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빛 (번개)같았고 ,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나는 네 곁에 있다”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비록어려움이 우리를 둘러쌀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우 어렵지만 동시에 승리의 순간을 겪게 될 것입니다. 난 “ 주님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 합니다”라고 기도 했고, 나는 학교에서도 수업 중에도,천사들을 계속해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행복했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 집을 방문했던 그 주의 종이 나에게 너는 천국과 지옥을 볼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다른 말씀도 하셨습니다. “ 너는 죽게 될 거야”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죽어요? 난 이렇게 젊은데?’ 라고 물었더니, 그는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완벽하단다. 그리고 그분이 너에게 다시 생명을 돌려 주실거야. 그래서 네가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알기를 원하는 천국과 지옥을간증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아멘, 그런데 제가 차에 치어 죽나요? 제가 어떻게죽어요?”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모든 것이 잘 진행 될 것이라고 하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나는 말하였습니다.

  11월 6일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 내가 주님을 찬양하는 동안에도 천사들은 여전히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거룩하고 영광스런 찬양을 올려 드리며“ 거룩, 거룩, 거룩, 할렐루야 ” 라는 말만을 하였습니다. 성령님도 천사들과 함께 있어서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이 따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악마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존재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커다란 거짓말입니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지만, 내가주님과 성령님을 만난 후 복음은 결코 따분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성령님을 볼 수도 있었고, 함께 놀 수도, 걸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나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찬양하기만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나와 함께 이런 저런 일들을 하기 위해 오셨다” 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은 그곳에 계시고, 나는 성령님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일어나려고 할 때, 그 분을 보았고, 심지어 그분을 위한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볼 수 없을 지라도, 그 분께서는 이곳에 계십니다! 일단 당신이 그것을 경험해본 이상 그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중단될 이유도, 물러날 방도도 없습니다. 그 분께서 내가 전에 있던 곳에서 나를 이끌어내셨을 때, 나는 온 인류와 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과 자비로우심에 너무나 감사드렸습니다.

  11월 7일,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너는 오늘 죽을 것이니 준비해라”는 음성을들었습니다. 나는 성령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 분의 음성이라는 것을알았습니다. 나는 그 분의 음성을 무시하고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오늘 죽고 싶지않아요!” 그러나 성령께서는 되풀이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죽을 것이니준비해라!” 성령께서 이번에는 더 크고 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단지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는 주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어떤 것이든지 다 할게요. 비록 제가 두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저는 주님께 순종할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실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예요.”

  나는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이전에 사용한 적이 있는 주의 종이 제게 메시지를 가져오게 해주세요. 지금 즉시, 제가 도착하기 전에 그를 제 집에 오게 하시고, 제가 오늘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해주세요.” 지금, 주님께서는 어떻게든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그 분께 부탁한 것을 알고계셨습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주님의 종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Maxima:

제 딸이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부엌에 있었습니다. 안젤리카가 주님의 종을 보았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주님의 종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준비되었습니까? 오늘은 주님께서 4시에 당신을 데려가시기로 한 날입니다.” 그녀는 그곳에 선 채로, 주님께서 그녀의 부탁에 응답하신 데 깜짝 놀랐습니다.

  ★Angelica:

 내가 이것을 들었을 때 나는 말했습니다. “아멘... 그러나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저는 죽을 수 없어요! 안돼요, 주님, 저는 두려워요, 너무 두려워요, 너무나 겁이나요!”주님의 종은 말했습니다. “당신의 두려움이 지금 당장 떠나가도록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멘”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나는 곧두려움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동안 미소 짓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울적해하다가 기뻐하는 모든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웃고, 뛰어오르고 노래했습니다.

  ★Maxima:

제 딸은 즉시 마음에서 기쁨을 느끼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조금씩먹으며 말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는 배불리 먹어야해요.”
 
★Angelica:

모든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슬퍼하는 대신에 그렇게 행동했으며, 행복해하고, 기뻐했나요?”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저는 주님을 보러가는 것이었고, 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었지만 저는 제가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고 그래서 모든 나의 소유들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응시하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려 했나요?” 제 어머니의눈이 놀라움으로 커졌습니다!

  ★Maxima :

제 딸은 자신의 소유물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모든 것을요! 보통, 우리 교회의 자매들은 우리와 함께 있었고, 그녀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제가 안젤리카에게 의도를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만약 제가 돌아온다면, 그들은 제게 모든 것을 돌려 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돌아오지못한다면, 그들은 그 모든 것을 간직할거예요.”

  ★Angelica :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 엄마가 얼마나 슬퍼했을 지 상상이 갑니다. 그러나 나는너무나 행복했고, 나는 만약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내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나의 옷들, 나의 침대, 나의 핸드폰 등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웃기 시작했습니다.

  ★Maxima:

그녀는 아주 단호했지만, 엄마로써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쉽지않은 일이었어요. 나는 궁금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순간에, 어떻게 그 일이이루어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집에서 물건들을 정돈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자매님, 오셔서 기도합시다.” 그러나 나는 대답했습니다. “당신 먼저 가세요, 나도 곧 합류할게요. 지금은 내가 이 일을끝내도록 내버려두세요.”

  ★Angelica:

 그들은 우리가 기도할 때, 모두 나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뜻대로 행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거짓말하거나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십니다.

저는 주님께서 실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만약 제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못하게 된다면, 저를 주님께로 데려가시는 것이 최선 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주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게 된다면, 저를 돌려보내주시되, 제가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저를 준비시켜주시고, 제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회개하라 말할 수있게 저를 도와주세요.” 이것은 나의 가장 짧은 기도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주님의종에게 말했고, 그리고 “제 엄마에게 제가 주님께 말한 것을 전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주님께서 당신을 데려가시면, 나는 그녀에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원을 만들어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Maxima :

3시 30분에,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제 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 중 일부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주의 종께서는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전신에 기름을 부으라고 2분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죽음

  ★Angelica :

나의 엄마와 교회의 또 다른 자매인 Fatima Navarrete는 나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기름을 부을 때, 나는 유리와 같은 어떤 것이 나의 주위를 덮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갑옷과 같은 것으로 덮여진것을 느꼈고, 어떻게 내가 덮여진 것인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 그들이 나를 만지려고 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Maxima :

우리가 안젤리카에게 기도해 주려고 할 때, 나는 내 손을 그녀에게 올려놓으려고 했지만, 그녀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어떤 막이 씌워져 있었습니다.그것은 이상했고, 아무도 그녀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 막은 그녀의 머리끝에서발끝까지 약 30cm정도로 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전에 나는 사람들에게 내 손을 얹곤 했지만, 이와 같은 일은 이전에 단 한번도 일어난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거예요”그리고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갑자기, 나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습니다. 내 마음에 있던 슬픔이 사라졌고, 고통도 사라졌으며, 나는 지금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했고, 4시 정각에 내 딸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Angelica :

기도하는 동안, 나는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고,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나는 복부와 심장에 고통을 느꼈습니다. 나는 심장이 서서히 멎고, 온 전신에 엄청난 고통을느꼈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 제게 힘을 주세요!”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는 힘이 없었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육신의 눈을 사용하지 않은 채, 영안으로 올려보았을 때, 천국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두 명도 아니고 열 명도 아닌, 수많은 천사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오시는 군요!”


  ★Maxima :

그녀가 쓰러졌을 때, 우리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그녀는 스스로 설 수 없었습니다. 이때는, 우리는 그녀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하세요. 나는 힘이 없어요. 엄마, 나는 힘이 없고 고통스러워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심장에 고통을 느꼈고, 그 고통은 그녀의 복부 가까이로 내려왔습니다. 우리는계속해서 주님께 간청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를 데려가셨습니다!

 이전에 저는 어떤 사람이든지 죽는 장면을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내딸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그녀의 마지막 몇 마디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결국 그녀는 잠잠해졌습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손을 얹었고, 그녀가 숨을 쉬는지 보기 위해 그녀의 입가에 거울을 갖다대었습니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는데, 그녀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나는 얇은 천으로 그녀를 덮었고, 얼마 안가서 그녀는 아주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죽은사람의 머리카락처럼 검게 되었고, 그녀는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습니다.

★Angelica :

예수님께서 오셨고, 나는 내 육체가 죽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과 천사들이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내 육체를)떠난 것을 느꼈고,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았고, 죽었으며,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내 몸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을 때, 그들은 아직 그 곳에 있었습니다. 나의 집은 천사들로 가득했고, 천사들의 가운데에서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을 보았습니다! 내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느끼는 것은 매우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있는 내 몸을 보았을 때, 울며 소리 질렀 습니다. 나는 “주님, 무슨 일이일어난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내 몸을 만지고다시 안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시도해 보았을 때, 그것은 공기를붙잡으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몸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내 손은내 몸을 통과했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하던 사람 중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소리쳤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Maxima :

제 남편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도착했고, 그는 안젤리카를 보았습니다. 나는무엇을 어찌해야 좋은지 몰랐기 때문에 그 순간 주님께서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코마상태에 빠진 것 같았으나, 나는 이것이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당신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Angelica :

그 순간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천둥과 같고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다. 나는 약속한 것을 너에게 보여주러 왔다. 일어나라, 나는 너의 오른손을 붙드는 여호와이다.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를 도울 것이다.” 갑자기, 나는 일어났습니다. 나는 꿇어 앉아 나의 몸을 바라보았고, 그 안으로 돌아가려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두려움이 나를 떠났고,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걷기 시작했을 때, 천사들은 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는 강렬한 빛이반짝이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았을 때,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름답고, 키가 크고, 우아하며, 건장한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빛은 그 분에게로부터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기에는 그 빛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의 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넓은 금빛 띠를 가슴으로 가로질러 두른그 분의 하얀 가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띠에는 “왕의 왕 주의 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눈부신 금빛 샌들이 신겨진 그분의 발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분께서는 내게로 손을 뻗으셨습니다. 내가 그 분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내 몸을 만질 때와 달리, 내 손이 그것을 통과하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무슨 일이 일어 난 거죠?”라고 물었고, 그 분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지옥을 보여줄 거란다. 그래서 네가 돌아가 인간들에게 지옥은 현실이고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길 원한단다.”                                               

 또한 너에게 보여줄 천국과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 자녀들에게 알려 준비하게 하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두려워 마라” “주님 저는 천국만 가보길원해요. 지옥은 아니예요. 거긴 끔찍한 곳이라 들었어요.”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딸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지옥을보여줄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기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대해 모르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구나. 천국으로가는 이들보다 사망으로 가는 이들이 많기에 너에게 이곳을 보여주는 거란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주님의 눈물이 옷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주님 왜 우세요?” “딸아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내가 지옥을 보여줄테니 너는 세상에 가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너도 다시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여라”

 


§ 지옥

주님이 말씀하실 때 갑자기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더니 아주 컴컴한 구멍이 아래에 보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천사들과 함께 바위 위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 저 가기 싫어요.” “딸아, 내가 너와 함께할 테이니 두려워 마라” 순식간에 우리는 그 어두운 구멍으로 내려갔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이였습니다.아주 큰 둥근 원 같은 것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그곳은 피부가 타듯이 뜨거웠고 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게 뭐죠?저 여기 가고 싶지 않아요!” 주님은 이곳이 지옥의 터널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선정말 지독하게 역겨운 구역질나는 냄새가 났고 난 주님께 거기에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 하였습니다. “딸아, 넌 꼭 거기에 가봐야 하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한다.” 난 울었다. “ 왜요? 주님 왜요?” “ 그래야 네가 많은 이들이 사망의 길로 가고있고 소수만이 천국을 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말을 하실 때 주님은 슬피 우셨습니다. 난 주님 말씀에 힘을 내어 계속 걸었습니다.우리는 터널의 끝에 도착했고 아래 화염에 휩싸인 구렁텅이가 보였습니다. “딸아,이걸 받아라.” 주님은 나에게 큰 백지묶음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이 펜슬을 받고,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 네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기록하여라. 넌 네가 본 모든 것을 적음으로 기억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럴께요, 그런데 전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어요. 고통 받는 많은 영혼들, 거대한 불길들을 보고 있어요.”

 ★Maxima

시간은 흐르고 내 딸은 여전히 거기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주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나와 닦아주니 눈물이 다시 흘러 나왔습니다. 나는 딸아이가 숨을 쉬는지 알아보려고 거울을 입에 갖다 대었는데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딸의 맥박을 체크했고 배에 손을 얹어보았지만 아무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당신 딸이 있는 곳은 오직 고통만 있는 곳입니다.”

  ★안젤리카(Angelica)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 전 지옥이 실제로 있고 존재한다고 간증할거예요. 저를여기서 지금 나가게 해 주세요.”
“딸아, 우린 아직 거기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너에게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단다.그런데 넌 벌써 여기를 나가게 해달라고 하는 거니?” “ 주님, 제발 여기서 나가게해주세요.” 그때 우리는 그 깊은 구렁텅이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안돼요,안돼요..가기 싫어요...” 나는 울며 소리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이걸 봐야 한다.”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여러 형태의 크고 작은 소름끼치는 마귀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빨리달렸고 손에 뭔가를 들고 다녔습니다.

“주님, 저들이 왜 저렇게 뛰고 또 뭔가를 들고 다니는 거예요?” “딸아! 마귀들이 저렇게 뛰는 것은 그들 시간이 다 끝나가기 때문이다. 인간들을 파멸시키고 특히 내 자녀들을 실족시켜 파멸시키기에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지. 그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인간들을 파멸시키는 다트이다. 각각의 마귀들은 이름이 다 있고 그 이름에따라 다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다트로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지옥으로 데려오지. 그들의 목적은 인간들을 파멸시켜 지옥으로 끌고 오는 거란다.” 나는 마귀들이 이 세상을 향해 뛰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을 끌고 와 이 지옥에 몰아넣기 위해 세상으로 가고 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매우 슬피 우셨습니다. 주님은 계속 슬피 우셨고 나 또한 눈물이 났습니다.

  ★맥시마(Maxima)

내 딸은 23시간동안 죽었었지만 난 외부에 알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전24시간만 기다리겠어요. 그때까지 제 딸이 깨어나지 않으면 의사를 부르겠어요.” 주님은 제 딸을 24시간이 되기 전에 보내 주셨습니다.

  ★안젤리카(Angelica)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너에게 보여 줄 것인데 볼 준비가 되었느냐?” “네, 주님” 주님은 나를 어떤 방으로 데려 가셨는데 거기엔 젊은 남자가 불길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난 그 방이 번호가 매겨진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숫자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뒤편인 거 같았습니다. 그 방엔 큰 액자판 같은 것이 있었고그 남자 이마엔 “666” 숫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 살갗에 큰 금속판이 박혀 있었는데 벌레들이 그를 갉아 먹어도 그 철판은 멀쩡했으며 화염 속에서도 타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용서해주세요..주님!”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 늦었다.. 너무 늦었다. 난 네게 기회를 주었지만 넌 회개하지 않았어.” 나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 주님, 왜 그가 여기 있나요?” 나는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있을 때 복음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술, 마약을 더 좋아하고나쁜 길로 빠졌습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여러 번 경고하셨습니다.

“ 딸아,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이것이다. 누구든 내말을 저버리는 자는 이미 심판을받음이요,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 를 심판하리라” (요한12:48) 그리고 주님은 우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주님이 우실 때, 그것은 우리와 달랐는데 심장 속 고통을 느끼시며 또 굉장히 흐느껴우셨습니다.

“난 인간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 난 여쭈었다. “ 그럼 왜 인간들이 여기 있나요? 주님 ”

“딸아, 나는 사탄과 악령들인 그 사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었다.(마태25:41)  그런데 죄와 회개의 부족으로 인간이 이곳에 오는 것이고 그 수가 내 영광에 도달하는 자들보다 많구나.” 주님은 계속 우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무척 아팠습니다.

“딸아, 난 인류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다. 너희들이 사망으로 가지 않도록..이 곳에오지 않도록..사랑과 연민으로 내 생명을 주었다 그래서 인간들이 회개하여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주님은 고통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처럼 슬픔으로 신음하셨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주님이 느끼시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주님이 함께 하심이 날 안심시켰다. 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주님을 놓치면 난 여기서 꼼짝도 못할거야.”  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이곳에 제 친척이 있나요?”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주님은 날 다른 방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난 그 곳에서내 친척을 만나리라 상상도 못했지만 난 고문받고 있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벌레들이 그녀 얼굴을 갉아 먹어 치우고 마귀들이 그녀 몸에 창을 찔렀습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안돼요. 주님! 절 불쌍히 여기사 제발 용서해주세요. 여기서 1분이라도 나가게 해주세요.”

  지옥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했던 일들의 기억을 가지고 고문받습니다.마귀들은 사람들을 놀리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네 왕국이니 경배하고 찬양하라.” 사람들은 그들이 살았을 적 하나님을 알았던 것과 그 말씀을 기억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예수님을 알았던 사람들은 두배로 고문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기회도 없다. 오직 살아있을 때만 기회가 있다.” 나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우리 할머니가 여기 있나요? 전 할머니가 살아생전 주님을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왜 여기 계신건가요? ”

“딸아 네 할머니는 용서하지 않았기에 여기 있는 것이다..딸아, 용서하지 않는 자는나 또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난 여쭈었다. “하지만 주님은 용서하시고 또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시잖아요.” 주님이 답하셨습니다. “ 그래, 딸아. 하지만 사람들은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그들이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이다. 가서 사람들에게 전해라. 특히 내 자녀들에게...

이제는 용서해야 할 때라고...많은 내 자녀들이 용서하지 않는구나. 용서해야 할 때이니 그들의 마음에 증오, 미움, 원한, 원망을 없애라고 말하여라. 만약 용서하지 않은 그들에게 불시에 죽음이 닥치면 그들은 지옥으로 가야 한다. 아무도 생명을 더할수 없기에..” 우리가 거기를 떠날 때 내 할머니는 불 속으로 빠져들었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악..”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고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 지옥에 가득 찬 고문받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 손을 뻗으며 도와달라, 그곳을 떠나게 해달라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고 그들은 욕하고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슬피 울며 말씀하셨습니다. “저 소리를 듣는 것, 저들의 고통을 보는 것이 내게는 너무 아프구나...

저들을 위해 난 아무것도 해줄게 없기 때문이야. 그들이 오직 세상에 있을 때에만 기회가 있다. 죽기 전 오직 살아있을 때에만 회개할 시간이 있다.”

  주님은 내게 많은 유명인사들과 주님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에게 다른 용광로를 보여주겠다.”

우리는 화염에 휩싸인 어떤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고 비명을 지르며 주님께 애원했습니다. 주님은 손으로 그녀를 가르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가 보고 있는 불길에 휩싸인 저 여자가 셀레나이다.” 우리가가까이 갔을 때 그녀는 소리쳤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절 용서하시고 제발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주님은 그녀를 보고 말씀 하셨습니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넌 이제 회개할 수 없어.”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사람들에게 가서 꼭 말해주세요. 침묵하지 말고 꼭 분명히 말해주세요.

이곳에 오지 말라구요. 그리고 내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말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물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시죠? 왜 내가 그러기를 원하시죠?”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부르고 들을 때마다 난 여기서 더 고통받고 고문받아요.

그리고 내 노래를 부르고 듣는 사람도 이 지옥으로 오고 있는 것입니다. 꼭 가서 말하세요..절대 이곳에 오지 말라고...지옥은 정말 실재한다구요..” 그녀는 소리 질렀고마귀들은 멀리서 그녀 몸에 창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울며 애원했습니다. “ 도와주세요, 주님 저 좀 살려주세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무 늦었다.”

  내가 그곳을 둘러보았을 때 그곳은 죽은 많은 가수들과 아티스트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오직 노래하고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설명하셨습니다. “딸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이상 세상에서 했던 일을 여기서 계속 반복해야 한단다.”

  그곳을 유심히 보았을 때 난 마귀들이 비같은 것을 쏟아 붓는 것을 알았습니다. 난그것이 비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화염 속에서 그 비를 피하려 이리저리발버둥 치면서 외쳤습니다. “안돼요, 도와주세요...주님..”그러자 마귀들은 웃으며말했습니다. “여기가 너희의 영원한 왕국이니 경배하고 찬양하라! ” 불길은 더욱 치솟았고 사람들에게 있는 벌레들은 훨씬 많아졌습니다. 거기에 물은 없었고 불길을치솟게 하고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유황이 있었습니다.                                          

 불길이 더 치솟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벌레들도 무수히 증가했습니다. 거기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불길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유황이었고 각각의 사람들의 고통은 더 커졌습니다.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무슨 일이에요?  이건 뭐에요 ?”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삯이 이러 하니라”

 그리고 나서 주님은 저를 매우 유명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이전에저는 두 마음을 품은 크리스챤 소녀로 살았었습니다. 저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사를 올리는 성직자들 또한 천국에 가는 줄로알았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교황 ㅇㅇㅇㅇㅇ 2세가 타계했을 때 친구들과 친척들 모두 그는 천국에 갔다고 제게 말했었습니다. TV 나 Extra의 모든 뉴스와 다른 매체에서도 “교황 ㅇㅇㅇㅇㅇ 2세가 타계하셨습니다. 평안히 잠드시길 기원합니다. 그는 지금 주님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천국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전했었고 저는 이 모든 것을 믿었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그가 불꽃 가운데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을 봤을 때 분명 ㅇㅇㅇㅇㅇ 2세 였습니다.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보아라, 네가 보고 있는 저 남자가 ㅇㅇㅇㅇㅇ 2세란다.그는 여기에 있단다.그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거란다.”  저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그가 왜 여기 있는 거죠? 그는 교회에서 설교도 했었어요”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간음 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 탐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는 그 어느 누구도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단다” 저는 대답했습니다.“예.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고 싶어요“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 딸아, 그는 많은것들을 말했지만 진리 그대로를 전하려 하지 않았단다. 그는 진리를 결코 말하지 않았지. 비록 그는 진리를 알았지만 구원에 대해 설교하는 것 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겼단다. 그는 지옥이 실재이고 천국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았단다. 딸아,지금 그는 이곳에 있구나 “

 이 남자를 쳐다봤을 때, 가시들이 난 한 마리의 큰 뱀이 그의 목을 감싸고 있었고 그는 그 뱀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청했습니다. “주님,저 사람을 도와주세요” 그 남자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 도와주세요, 주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이곳에서 저를 나가게 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회개합니다. 주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회개할 수 있도록 세상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 주님은 그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잘 알았었다. 너는 이곳이 실재한다는 것도잘 알고 있었다... 매우 늦었구나, 다른 기회는 없다 ”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보아라. 너에게 이 남자의 삶을 보여 주겠다” 예수님은 제게 거대한 화면을 보여주셔서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차례 미사를진행하던 모습들과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보아라. 이곳 에는 우상을 숭배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단다. 우상숭배는 구원을 얻지 못한단다. 구원은 오직 내게 있고 나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단다. 나는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를 미워한단다.딸아,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사랑하니 내게 반드시 와야 한다고 전하 거라. ”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저는 이 남자가 수많은 동전들과 지폐들을 수거해서 어떻게 그 많은 돈들을 개인이 소유하게 되었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소유했었습니다. 이 남자가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상의 것을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직자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저는 지금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말해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 사람들이 거기서 많은 여자들, 수녀들과 같이 자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간통하는 사람들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은 간음한 자들은 천국을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있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보아라.  지금 너에게 보여준 이 모든 것들은 그의 과거일 뿐만 아니라많은 성직자들과 교주들,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들 이란다”  그리고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딸아 가서 사람들에게 내게로 돌아서야 할 때라고 전하거라”

 주님은 제게 한 장소로 인도하셨는데 거기에는 지옥으로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이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 주님, 어째서 그들이 이 곳 으로 오고 있나요?”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여주겠노라” 주님은 제게 많은 사람들이 통과하며걷고 있는 한 터널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손에서 발끝까지 묶여있었습니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보아라, 네가 보는 저 사람들은 아직 나를 알지 못하고 있단다. 그들의 등에 지고 있는 것은 죄란다. 가서 저들에게 그들의 무거운 짐들을 내게벗어놓으면 참된 안식을 얻겠노라고 전하거라. 바로 내가 그들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느니라, 딸아...두 팔을 벌리고 저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서 사람들에게 내게 오라고 전하 거라,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그들에게 가서 전하거라 ”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저기에 있는 사람은제 사촌입니다. 저 젊은 남자가 제 사촌입니다. 주님, 저기 내려오고 있는 저 젊은 여자 또한 제 친척입니다. 제 가족도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그들은 이곳으로 오고 있단다. 그러니 가서 그들에게 그들이 어디로 가고있는지 전하거라, 가서 그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전하거라. 가서 그들에게 내가너를 나의 파수꾼으로 선택하였다고 전하거라. 너를 나의 파수꾼으로 선택했다는말은 네가 가서 사실을 반드시 전해야 함을 의미한다. 너는 가서 네게 보여준 이 모든 것을 전해야만 한다. 만약 네가 전하지 않아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그의 피는 너에게 부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말한 바를 네가 가서 전했다면그 사람은 나와 상관할 터인데,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아도 너에게 놓여진 책임은 제함을 받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책임은 그 사람에게 물을 것이므로 그의 피가 너에게부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게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저 곳으로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이 있습니다. 이 남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지만 사탄숭배자였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남자는 사탄과 계약을 가졌습니다. 그는 인기를 얻고 많은 펜들을 끌기 위해 마귀와합의를 하였습니다.

 지옥에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마귀들이 걷는 모습이 다름 아닌 그가 공연할 때 보여준 스텝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즐기면서 마귀들이괴성을 지를 때 앞으로 이동하지 않고 뒤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지옥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주님께서 죽은 뒤에 그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불꽃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을 보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왜죠?” 이 남자가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괴성을 지르는 것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을 듣거나 부르거나 혹은 마이클 잭슨의 펜인 사람이라면 저는 사탄이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올가미로 가두려 한다는 사실들을 당신에게 경고하고자 합니다. 지금 당장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물리치세요. 예수님은 당신이 묶임에서 풀리셔서 결국 당신이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나를 알지만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단다.”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을 아는 자가 어떻게 이곳으로 올 수 있습니까?”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길에서 떠났거나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렇단다.” 주님께서 제게 지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은 손에서부터 발끝까지 묶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어떤 옷을 입었습니다.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 옷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옷이 찢어지고 얼룩지고 구겨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나의 자녀들이 내게서 어떻게 멀리 떠나는지를 잘 보거라. 딸아, 나는 앞으로 이러한사람들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란다. 나는 주름도 없고 더럽히지도 아니하였으며 한점 흠 없이 준비된 거룩한 사람들을 위해 올 것이니라. 가서 그들에게 처음 가던 길로 돌아오라고 전하 거라.” 저는 주님의 길에서 멀리 벗어나 걷고 있었던 제 삼촌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가서그들의 무거운 짐들을 내게 넘기라고 전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겠다고 전하거라.” 주님께서 울고 계셨습니다. “딸아, 그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구나. 가서 네 삼촌들에게 전하거라, 가서 네 친척들에게 그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전하거라!, 딸아 많은 사람들이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의 충실한 증인이란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딸아, 비록 그들이 너의 말을믿지 않을지라도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니 가서 그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 거라. 딸아, 이제는 사람들이 이곳에 어떻게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겠노라.”
 주님과 저는 어떤 터널로 갔었는데 거기에는 깊은 구렁으로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천명이나 이천 명이 아닌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많은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줌의 모래가 떨어지 듯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혼들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슬프게 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이것이 멸망하는 인간의 모습이란다. 이리하여 영원히 끊어지게 된단다!. 딸아, 멸망하는 인간을 보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하는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들은 또한 이곳에서 회의를 한단다 ”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마귀들도 회의를 한다고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단다, 딸아, 그들은 인간에게 무엇을 할지 계획하기 위해 모인단다. 그들은 매일 비밀회의를한단다. 주님께서 저를 어느 감방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의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종류의 마귀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딸아, 그들은 지금목회자들과 가족들, 선교사들, 전도사들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파멸로 몰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단다. 딸아, 마귀들은 그들을 파멸하길 원하고 있단다. 그들을죽일 많은 화살들을 준비하고 있단다“

 마귀들은 비웃고 조롱하면서 말했습니다. “인간을 파멸시켜 이곳으로 데리고 오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고 전하 거라. 그들에게 사탄이 들어갈 자리를 내주지 않도록 문을 열어놓지 말아야 한다고 전하 거라. 왜냐하면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단다,” 말씀은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자처럼 다닌다 라고 ’, 왜냐하면 유일한 진짜 사자는 유대지파의 사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저들은 특히 목회자들과 그 가족을 파멸하기 원한단다.” 저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왜 저들은 목회자 가족들을 파멸시키길 원하는 거죠?” 그러자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왜냐하면 저들에게 맡긴 양떼들, 많은 사람들을 그들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귀들은 사람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길 원한단다. 뒤를 돌아보게 해서 결국지옥행으로 종결짓게 만든단다. 가서 목사들이 진리를 양떼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전하여라.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자신들만 간직하지 말고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전하게 하여라.”
 
주님과 제가 그 곳을 떠났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른 곳을 너에게보여주려고 한다. 거기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단다.”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 주님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구요? 어째서 왜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거죠? 말씀에 이르길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라고하셨잖아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천국은 그런 자의 것 이니라 그것은진리니라. 그러나 아이들도 반드시 내게로 와야 한다. 왜냐하면 내게 오는 자는 내가버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즉시, 예수님께서 제게 8살 먹은 남자 아이가 불길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소년은 소리쳤습니다. “ 주님 살려주세요, 저를여기서 꺼내주세요. 저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요! ” 그 소년은 계속 울면서 비명을질렸습니다. 저는 이 아이 주변에 만화 인물들과 닮아 보이는 마귀들을 보았습니다.거기에는 드래곤, 보이즈, 벤 10, 포키몬, 도랄 등등이 있었습니다.
“주님 , 왜 이 아이가 여기에 있는 거죠?”  주님께서 제게 이 아이의 생애를 담은 큰화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만화들을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TV 앞에서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TV에서 매일 보여주는 에니메이션 만화, 영화, 드라마는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한 사탄의 도구들 이란다 ”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보아라 어떻게 되는지를.” 저는 그 소년이 부모님을 향해 반항하고 불순종하는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말하고자 하는데 그 아이는 불손종하고 물건을 던지며 도망갔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뒤 어떤 차가 그 소년을 치었고그 아이의 인생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로이곳에 지금까지 있는 것이란다.”

저는 그 아이가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딸아, 가서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말씀이 말한 대로 교육하라고 전하거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자녀들을 아무 때가 아닌 오직 부모의 말에불손종할 때에만 징계하는 회초리를 통해 잘못된 점들을 바로 잡으라고 말씀하고계십니다.(잠언 22:15)

 주님은 제게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만화 영화 때문에, 반항 때문에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많단다,” 저는 주님께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만화영화가 지옥으로 오게 만드는 거죠?” 주님께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반항과 불순종, 분쟁과 미움 등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마귀들이기 때문이란다. 결국 다른 마귀들이 이러한 아이들에게 들어가면 선행보다는 악행을 일삼도록 만든단다. 아이들이 TV를 통해 보는 무엇이든지 현실에서도 그대로 따라 하길 원하게 만들지.” 지옥은 존재합니다. 지옥은 현실입니다. 어린 아이들 조차도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 주님, 말씀해 주세요. 왜 어린 아이들이 여기에 와야 하는 거죠?”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아이들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지식을 얻게 되면, 그 때는 그들도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단다,”    (12-15페이지)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지옥에 대하여 많이 얘기했음으로 이게 제가 본 천국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내 딸아, 이제 내가 나의 자녀를 위하여 준비한 것을 보여 주겠다.” 우리는 터널을 지나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어둠, 육체적 고통, 지옥의 불길을 보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아 나의 영광을 보여 주겠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천국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천국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곧 우리는 금으로 쓰인 거대한 문구가 붙여 있는 문에 도착 했습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 딸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10:9)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문은 열렸고 우리는 들어갔습니다.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계시록:7:11-12) 우리는 계속해서 걷고 있었고나는 시작은 볼 수 있으나 끝을 볼 수 없는 식탁에 다가갔습니다.(계시록10:9)

나는 하나의 큰 옥좌와 수천 개의 의자에 둘려 쌓여 있는 작은 왕좌를 보았습니다.모든 의자들은 면류관과 함께 의복이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길 “내딸아, 네가 거기서 본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 이니라” (계시록 2:10)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보아라 내 딸아, 이것이 내 자녀들을 위하여 준비해 둔 것이다.” 나는 금으로 장식된 하얀 식탁보에 덮혀진 식탁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접시들과 잔들과 과일이 있었고 모든 것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식탁의 중앙에는 아주 큰 화병이 놓여 있었고 저녁식사를 위해 포도주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아 나의 교회의 도착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고 거기에서 정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성경에 있는 잘 알려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나이 들지 않았고 젊었습니다.거기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손에 큰 스카프를 들고 춤을 추며 주님께 찬송하며 주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딸아, 저기보이는 젊은이가 나의 종 다윗이다.” 그는 우리 아버지에게 영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젊은이가 지나갔고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그는여호수아

이다. 그는 모세다. 또 다른 이는 아브라함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 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딸아 네가 거기서 본 여자는 나의 종 막달라 마리아 이다. 또나의 종 사라도 있다” 그러나 그때 예수께서 내게 말하셨습니다.“딸아 이 여자는 마리아이다. 나, 예수 그리스도를 출생케 한 마리아이다. 딸아 나는 네게 마리아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해 주고 싶단다.” 나는 네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에게 가서 지옥은 정말 있고, 우상 숭배자들은천국을 소유 하지 못할 것 이지만 만약 그들이 회개하면 나의 천국 처소에 들어 올수 있다고 전하기를 원한다.그들에게 가서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라. 또한 그들에게 마리아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줘라. 정말로 그들이 높여야 하는 자는 오직 나 하나이니라. 왜냐하면, 마리아도 성 그레고리 교황도 어떤 다른 성자도 구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나만이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니라. 나 외에는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구원할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세 번이나 아무도 구원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오직예수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인간들은 거짓 성자를 믿음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을 통하여 마귀가 역사하도록 현혹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주님은 너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너희가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너희에게 너희와 전 인류를 위해 그의 생명을 주심으로 너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주님은 인간들을 위하여 위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울며 내게 말씀 하셨습니다. “제발 딸아, 침묵하지 말고 가서 이 진리를 전하고 내가 너에게 보여준 것을 말하여라.” 나는 마리아가 주님께 얼마나 경배를 잘 하는지 보았고 매우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여인들을 보았습니다.나는 “주님,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질 수 있나요” 라고 말했더니,

“딸아, 네가 본 것은 내가 여인에게 준 면사포란다.” 하고 말씀 하시며, “딸아, 여인들이 내가 준 면사포를 잘 관리한단다.” 라고 덧 붙이셨습니다.그리고 또, “내가 너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 주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좀 떨어진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금의 도시를 보았습니다.나는 “저게 워예요?” “저기 가보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딸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보여주겠다. 네가 보는 것은 내 하늘 처소이며 나의 백성들을 위해 준비한 집들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금으로 만든 다리에 도착할 때까지 걷기 시작했습니다. 좀 지나자 우리는 순금으로 만든 거리에 왔습니다. (계시록21:21)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웠고 반짝이는 유리처럼 빛이 났습니다.

그것은 정말 초자연적 이었고 불가사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처소 들을보았고 수천의 천사들이 그것들을 짓고 있었습니다. 몇몇의 천사들은 매우 빠르게짓고 있었으며 또 다른 천사들은 천천히 또 다른 천사들은 전혀 일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왜 몇몇의 천사들은 빠르게 집을 짓고 또 천천히 짓는 천사가 있는 반면에 집짓기를 멈춘 자도 있습니까?” 주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딸아, 얼마나 많은 내 백성들이 땅에서 일하며 천사들이 일 하며 내 아이들이 일하고 있느냐... 딸아 내 백성들이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구나. 내 백성들이 더 이상 빨리 일하지도 않는구나. 사람들이 더 이상 진리를 전하는 말씀도 길가에서 전하지 않는구나. 내 백성들이 이제 나를 부끄러워하는구나. 내 백성들이 이전 길로 돌아오라고 가서 전해라. 네가 본, 아무것도 일하지 않는 천사들은 나의 길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자들에 속한 천사들이다. 딸아 내 백성들에게 이전 길로 돌아오라고 가서전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우셨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사람들이 노래하는 저기에 나를 데려다 주세요.” 예수님은 나를 천천히 자세히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뚫어지게 보셨지만 나는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다만 그분의 얼굴의 움직임만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따라 흐르며 적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 왜 울고 계시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에게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의 하늘의 집들 가운데서 하늘거리는 꽃들을 보았습니다.

아 저기가 내가 들은 노래가 들려온 곳이구나.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보아라. 그들이 나를 찬양하며 경배하는 구나. 그러나 내 백성들이 더 이상 이전에 했던 것처럼 경배 하지 않는구나. 내 백성들이 더 이상 나를 찬양하지도, 경배하지도 않으며 이전처럼 나를 찾지도 않는구나. 이것이 내가 말한 이유다. 딸아 가서내 백성들에게 내가 갈 것임으로 나를 찾으라고 전해라. 내가 갈 것이다.

영혼에서 진심으로 나를 찾는 자를 위하여, 준비된 백성들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내가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간다. 내가 간다.”

  그때서야 나는 왜 울고 계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시지만 마음에 반만드리는 자 때문에 우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영혼과 전심을 다해 예수님을찾는 자들을 위해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내게 이 땅에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게 무슨 뜻이냐 면요. 저는 주님과함께 여기서 머물고 싶어요! 주님이 저를 여기에 불러주셨고 저는 주님과 함께 있고싶기 때문에 아무 곳도 가지 않겠어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너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내 영광이 실제 상황이며 내가 보여주는 진실을 증언하라. 네가 본 것은 사실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회개하며 비명횡사 하지 않고 내게로올 것이다.” 울면서 나는 그분의 발아래 꿇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그분의 발등의 상처를 보았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주여 여기 상처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대답했습니다.

“딸아 이것은 내 생명을 너희를 위하여 주었던 그때부터 있던 흉터란다.” 예수님은또 손에 있는 상처의 흔적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여쭤봤습니다. “주여 왜 지금까지 이게 남아 있나요?” 예수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딸아 그것은 남아있는 흉터란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 이것들은 없어지지않나요?”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딸아 모든 성자들이 여기에서 다시 연합될때 이 상처들이 없어 질것이다.“  ”딸아 나는 너를 세상에 보내야 한다. 네 가족과 족속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거절하려고 시도 했지만 그분의 손가락으로 땅을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내려다보이는 사람들을 보아라. 저기 너의 친척들이 있다. 저기 보이는 육체가 네가 돌아가야 할 몸이니라. 여기를 떠날 때가 되었다.”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나는 아름답고 보석 같으며 깨끗한 강을 따라서 데려 가시며말씀하시길, “딸아 강으로 들어가라. 그러고 물에 잠겨라.” 내가 생수의 강의 수정같은 표면에 들어가기 전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 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온 후 나는 흥분 되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너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딸아, 내가 네게 보여줄 것이있다. 내가 어떻게 성도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는지 얼마나  큰 기쁨의 날 들이 오게될지 네게 보여주겠다.” 우리는 대형 스크린이 있는 장소까지 걸었고 거기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전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수천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신한 여자가 유산을 하였고 그들이 미친 듯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리며 비명 지르고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라고 소리 쳤습니다. 나는 주님을 알았던 자들이 남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오셨다고 말했으며 휴거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 자살하기를 원했으나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길,
“딸아, 이때에는 죽음이 도망칠 것이다. 딸아, 이때에는 성령이 더 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단다.” (요한계시록9:6)

거기에 사고는 있었으나 나는 쉽고 단순하게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고 그들 모두 비록 부상은 당했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교통지옥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딸아,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거라” 사람들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가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리스도가 오셨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간청 했습니다. “주여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러나 슬프게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늦었구나. 이제야 회개 하는구나.”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더 이상 기회가 없으니 지금 이때 나를 찾으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여라.”(이사야서55:6)

“딸아, 뒤에 남아 머뭇거리는 자들은 너무 늦을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얼마나남겨졌는지 관찰하시고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내가 말한 대로 세상에 간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4:16-17)

  그러나 누구도 주님과 함께 가지 못하며 오직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 (마태복음7:21) 와 성도의 삶을 사는 자 만이 주와 함께 갈수 있다. “오직 거룩함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히브리서12:14) 예수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아무도 내가 내 성도들을 위하여 올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나니 천사들조차도그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24:36) 그 화면에서 나는 사람들이 뛰어 다니는것을 보았습니다. 잡지나 TV 뉴스에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셨다” 화면이 닫히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내가 거룩한 자를 위하여 갈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내게 보여 준 모든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분은 나를 세상에 데려다주셨습니다.            

 


 §땅으로 돌아오다

 ★Maxima

내 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린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 딸은 계단에 축 늘어져있었습니다. 그녀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습니다. 난 말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딸이 돌아왔어요” 우리 모두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곧이어 내 딸이 천천히그리고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5시간이 지난후 그녀는 눈을 뜨고 말할 수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불분명한말이었기에. 그녀는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그녀의 눈이 빛을 견딜 수 없었기에 우리는 창문을 계속 가려 놓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호기심에 충만하여 그녀가 본것을말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허약해져 있었으므로 우리에게 아주 조금 밖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2주가 지나서야 그녀는 완전한 간증을 우리에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마귀가 와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마귀들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들의 모습을 그림자 속에 감추려 했습니다.그녀가 돌아온지 3일이 되어 완전히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마귀들은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녀가 마귀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마귀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린 너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여기에 왔다. 너는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 네가 본 것을 여기 지상에서 아무 것도 말해서는 안된다. 만일 네가 말하면 우린너를 죽일거다” 그녀의 묘사에 의하면 마귀들은 추하게 생겼으며, 거대하고 뚱뚱하며, 매우 추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험상?게 생겼는지 그녀는 표현할 말이 없다고했습니다. 그녀는 마귀들을 꾸짖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귀들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습니다. 그녀는 마귀들을 꾸짖으며 싸우려 했지만 힘이 없었습니다.그녀가 그들을 다시 꾸짖자 갑자기 굉장한 빛이 나타났고 마귀들은줄행랑을 쳤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내 딸이 겪은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을 구하라는 놀라운 메세지를 받았습니다.그러나 사람들은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며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며 그런 것은 괜찮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 딸이 경험한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지옥에서 수 많은 연예인들을 보았으며 심지어 교황 바오로 2세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지금은 주님을 찾고 회개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출 때입니다. 다음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13:31) 주님의 말씀은 때가되면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또한 그녀에게 사람들이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는 터널을 보여주셨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옥에 있습니다. 그것은 실재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주님의 백성들도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안 믿으려 하겠습니까.

  이 메세지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우리는 예수님을 구해야 하며 입술이 아니라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문 앞에 있지 않다. 문을 지나서 있다. 나는 곧 올 것이다. 나의 재림이가깝다. 나의 백성들이 나를 떠나 세상적인 것들로 돌아갔다. 나의 백성들에게 말해라. 옛날의 그 길로 다시 돌아 오라고.”

오늘날의 교회들은 다시 옛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불 가운데 있으면서 주님을 찾는 그 길입니다.

나팔소리가 울릴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합니다.그 것은 멋진 일일 것입니다.

 


§주님의 긴급한 메시지

★안젤리카가 청중들 앞에서 말하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그날이 되면 성령은 더 이상 지상에 없을 것이다.그날에 성령은 지상에 없을것이다(계9:6)

난 사고 때문에 발생한 엄청난 교통혼잡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자 했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죽기를 구하나 죽음이 그들을 피해 도망할 것이다. 그 기간동안 죽음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난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과 잡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다 라는 기사를 보고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도가 그의거룩한 백성들을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알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거리를 다니고 있었고 죽기를 구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하늘나라에 있을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난 거룩한 백성들을 위해 갈 것이다.나의 교회를 위해 곧 갈 것이다.”

 그러나 두 주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가 하는 일이 기쁘구나. 내가 준 사명을 네가 완성해가는 것이 기쁘구나. 그러나 나의 백성에게 내가 곧 가리라고 말하지 마라. 나의 백성에게 내가 당장 가리라고 말하라. 또다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에게 말해라. 내가 당장 갈 것이다.거룩한 백성들을 위해 갈 것이다. 내 백성에게 말해라. 오로지 거룩한 자들, 오로지거룩한 자들만 나를 보게 될 거라고.!....침묵하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들을계속 선포해라”
 내가 하늘에 있을 때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뱅 둘러모이더니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단은 꽃들로둘러 싸인 흰색의 계단이었습니다. 난 계단으로 내려가면 예수님께 내내 간청했습니다. “주님, 제발 저를 여기서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저를 다시 데려가 주세요”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딸아, 나라들이, 너의 식구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딸아, 너는 몸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생명을 받아라 딸아. 그래야만 네가 가서 증거할 수 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너를 믿지 않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믿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너의 신실한 증인이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청중과 기도하다

 여러분 눈을 감으시고 여러분의 오른손을 가슴에 올려 놓으세요. 왼손을 드시고 부르짖고 싶으시면 부르짖으세요. 이제 여러분이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주님께 말하세요. 주님을 영접하기 원하시는 분은 저를 따라해 주세요.

 주님,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자비를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이 저의 마음에 임하게되어,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나를 용서해 주세요.예수님의 귀하신 피로 나를 씻어 주세요.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주세요. 주님, 나를 지금 이 순간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세요. 제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용서합니다.용서 못하고 있는 마음을 내려 놓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방해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 놓습니다.

예수님께 간구하오니  저를 변화시켜 주시고 매일매일 주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주소서. 아버지, 아들, 성령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안젤리카

이 간증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스갯 소리도 아닙니다.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닙니다. 꿈도 아닙니다.지옥은 실재합니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지옥은 실제로 있습니다. 정말로 실재한다!고 지옥의 실재를 당신에게 말로 표현할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체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안젤리카가 해설자와 말하다.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징표들을 허락하십니다.비난하는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그것은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지옥으로 가는 터널을 걷고 있지 않은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이 당신 생애에 구원자가 되시는예수님을 초청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음의 이말은 간단하나 위대한 말입니다.“예수님,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유일하신 구원자로 받아들입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나의 삶과 나의 목숨을 주님께 내어드립니다.

난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최종 목적지를 선택하십시오. 생명인지 죽음인지. 천국인지 지옥인지, 예수님인지 마귀인지. 당신이 예수님께 속하든지 마귀에 속하든지 둘중의 하나입니다.당신은 옳은 것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목적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영원한 생명인지 불못인지.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결정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분의 자비로 인해 구원의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당신의 유일한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이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순간이 지옥에서 당신이  영원히 후회하는순간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참고말씀) .............................
계시록. 19:9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신말씀이라
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있지 않더라.
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믿지 아니하는 자들과,흉악한 자들과,살인자들과,음행하는  자들과,점술가들과,우상 숭배 자들과,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불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우상숭배"는 천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
출애굽기. 20-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계시록.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같은  정금이더라.
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계시록. 22: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라.
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시록22:13-15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살인자들과,우상 숭배자들과,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밖에 있으리라

 

posted by isaiah_43 2011. 4. 5. 21:50

 

 

 


posted by isaiah_43 2011. 3. 30. 03:44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주님은 15-16절에서와 본 장 말미에까지 한 가지 큰 원리, 한 가지 큰 메시지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단 한 가지, 좁은 문으로 들어감의 중요성과 우리가 참으로 좁은 길을 따라 걷고 있는가를 확실히 할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13-14절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에 대한 일종의 강화인 것입니다. 13-14절에서는 초대 또는 권면의 형식으로, 우리가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계속해서 걸어 가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것을 정교화(精巧化)하여 세부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 일을 시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주쳐 오는 위험과 장애와 방해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내 중요한 이 원리, 즉 복음은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끝나거나, 찬양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적용되어야 할 것임을 계속 강조하고 계십니다. 야고보가 표현한 대로, 저 완전한 율법의 거울을 끈기 있게 바라보고 그것을 기억하고 실천에 옮기는 대신,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서 우리가 본 바를 즉시 잊어버리는 것에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산상설교 말미까지 줄곧 강조하신 주제입니다. 우선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마주쳐 오는 두 가지 특정 위험의 형태로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이 위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으며, 이 위험들을 알아본 후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처리하시고 나서 주님은 논증의 끝을 맺으시며, 두 집(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의 관점에서 명료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진실로 나타내시고 산상설교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주제요, 포괄적 진술 속에 들어 있는 공통점은, 심판의 사실에 관한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7장을 일관하는 주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난제와 문제의

 


    대부분의 원인은 이것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너무나 일반화된 경박하고 피상적인 복음전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들 대다수에게 있어 성결과 성화된 삶이 부족함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에 계심과 우리 모두 최후 심판의 방향으로 착실하고 확실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이것을 계속 반복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이것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긴 하셨지만, 내내 심판의 사실과 심판의 성격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피상적인 검토나 단순히 외부적인 것들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을 탐사하고 전 성품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은 심판의 최종성과 심판에 이어올 결과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미 13절과 14절에서 어째서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인즉, 다른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이요, 이 멸망은 최종 심판 후에 불경건인에게 따라오는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것에 너무 심려하신 나머지 계속해서 반복하고 계십니다. 이 점은 다시 교사로서의 그분의 방법의 완벽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반복의 중요성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둔하며, 얼마나 더딘가를 아십니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는데, 우리가 어떤 일을 안다고 생각하기가 얼마나 쉬우며,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변함없이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원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가 어려운 것을 우리 모두 아는 터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일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계신데, 무엇보다 두 특수경고를 우리 앞에 제시함으로서 그렇게 하십니다. 첫째 경고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우리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할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말하자면, 이 좁은 문 밖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산상설교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권면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 중입니다. 우리 주님은 결국 ‘자, 이 지점에서 너희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 한 가지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위험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기에 항상 있다. 그들은 항상 저 좁은 문 바로 밖에 서 있다. 그곳이 그들이 애용하는 장소이다. 만일 그들에게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너희는 전적으로 파멸이다. 그들은 너희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좁은 길을 걷지 못하게 설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하도록 너희를 단념시키려 애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그 특유의 교활한 유혹을 가지고 오는 거짓 선지자의 위험을 항상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즉각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언뜻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해석은 흥미와 매혹으로 가득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본문을 놓고 교회사상 두 해석학파로 갈라져 있습니다. 각 학파에는 교회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학파는 본문이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만을 언급하는 것이라 말하는 학파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열매는 교훈과 교리를 가리킨다. 열매는 오직 이것만을 가리킨다.’는 말을 우리는 듣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의미를 이것에만 제한시켜 풀이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프로테스탄트 해석가들은 대체로 이것의 최고의 실례를 로마교회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는 이것과 전적으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이 부류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 교훈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이 사람들이 어떤 유의 삶을 사는가 하는, 순전히 ‘그들의 삶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맥클라렌 박사와 같은 잘 알려진 해석가는 ‘본문은 이단들을 탐색해 내는 시금석이 아니요, 위선자들 특히 무의식적 위선자들의 가면을 벗겨내는 시금석’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해석을 따르는 사람이 많거니와 그의 논증인즉, 본문은 교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온통 문제되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은 옳으나 그들의 생활은 잘못되어 있고, 자기네가 위선자들임을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해석학파가 있습니다. 본문에 대하여 그들의 상이한 두 가지 해석에 마주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둘 중 어느 해석을 믿을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두 해석은 둘 다 옳은 동시에 둘 다 잘못되었으며, 잘못은 둘 중의 어느 한 해석이 바르다고 말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타협한다는 말이 아니요, 두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는 본문을 만족스럽게 해석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만 교훈이 문제요, 이단적 교훈만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단의 가르침을 탐색해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분별력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단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강단에 올라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설교를 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이적을 부인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이단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어려울 것도, 미묘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묘사하신 말씀을 보면 이것에 어려움이 있고, 이것에 미묘한 것이 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주께서 양의 가죽을 묘사하실 때 사용하신 용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주님은 이런 유의 거짓 선지자에게 문제되는 것은, 처음에는 그가 그런 자라고 결코 상상할 수도 없다는 점을 암시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극히 미묘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것에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주목하실 것입니다. “이 자들은 이단을 가만히 몰래 끌어들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른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양의 가죽을 입고 옵니다. 아무도 거짓된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은 거짓 선지자의 이런 성격을 늘 나타내고 있습니다. 위험한 것은 실로 그의 미묘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 바로 해석하려면 이 특정 요소를 참작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것을 이단과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경고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편 해석에도 역시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에 어떤 극악 무도한 것이 있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행위로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묘하지도 어렵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우리에게 오는 사람이요, 처음에는 바람직한 것을 모두 갖춘 외모로 오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음에 들고, 붙임성 있고 유쾌합니다. 그는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보이며, 옳은 것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대체로 아주 옳고 참된 기독교인 교사가 마땅히 사용해야 하고, 또 사용하는 용어들을 구사합니다. 하나님을 논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논하고, 십자가를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등, 기독교인이 마땅히 해야할 말을 모두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방식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잘못된 곳이 있음을 여러분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즉각 여러분의 주목을 끌거나 혐의를 일으키거나 눈에 거슬리게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그런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으며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침내 이 사람은 가르침에서나 생활에서나 모두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가서 보겠거니와 이 두 가지는 항상 불가분리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란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가르침과 생활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모양 어떤 형태로든 잘못이 있는 곳에는 어느 점에선가 잘못된 생활 유형으로 인도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서술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가르침에 잘못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을 대답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그 속에 ‘좁은 문’이, 그 속에 ‘좁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그런 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가르침이며, 그 거짓됨은 그들이 ‘논하는 것’에 있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황의 미묘함을 자각하는 것도 바로 이 점에서 인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기독교인이 옳은 것들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제외시키는 사람을 색출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고 냉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과오란 크게 잘못된 것만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라는 관념을 우리는 아무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사람은 옳은 것들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본문의 거짓 선지자들을 바로 이해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의 복음에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갖고 있지를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연인에게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는 양의 가죽을 입고 옵니다. 보기에 너무나 매력적이요, 너무나 붙임성 있고,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그는 너무나 멋지고 기분 좋게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모든 사람이 그를 좋게 말합니다. 그는 결코 설교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일이 없으며, 호되게 비판을 받는 일도 결코 없습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현대주의자들에게도 찬양을 받으며,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이른바 약방의 감초 격입니다. 그에게는 ’좁은 문‘이 없으며, 그의 메시지는 ‘좁은 길’이 없으며,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이상이 거짓 선지자에 대한 대략적 서술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져 볼만합니다. ‘이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설교에 거슬리는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고 말입니다. 그 대답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후서 2장에서 어떻게 논증하고 있는가 기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민간(구약 이스라엘 백성)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2:1)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으로 돌아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기록을 읽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유형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기에 항상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나 그와 같은 참 선지자가 올 때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거기 있어서 그를 문제삼고, 그를 적대하고 탄핵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무엇과 같았습니까? 그들에 대한 서술을 보기로 합시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가볍게, 피상적으로)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8:11). 거짓 선지자는 항상 매우 위로 적인, 기분 좋은 설교자입니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면 그는 여러분에게 항상 잘못된 것이 별로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그도 잘못이 약간은 있는 것을 인정합니다. 잘못이 조금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바보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만사가 괜찮으며 잘 되어 나갈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말하며,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는 편협된 사람이요, 이단을 추적하는 사냥꾼이요, 그는 비협조적이다. 그의 말을 듣지 말아라. 모든 것이 잘 돼 나간다.’고 말합니다.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고치며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적인 사람들에 대한 무서운 진상으로써 놀랍게도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렘5:31)란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결코 불안케 하거나 언짢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전과 같이 계속합니다. 여러분은 만사가 괜찮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이나 이런 저런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이렇게 양의 가죽을 쓰고 있는 거짓 선지자는 항상 속 편하게 하며, 매우 안심을 줍니다. 그는 항상 악의가 없고 기분 좋고, 항상 변함없이 매혹적이어서 마음을 끄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모양으로 정체를 드러냅니까? 전체로써 그 메시지에 교리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그의 메지시는 항상 모호하고 일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교리를 특수화하여 하나 하나 상세히 열거하지를 않습니다. 그는 교리적 설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설교는 항상 매우 모호합니다. 그러나 ‘교리를 특수화하여 자세히 열거한다는 말은 무슨 소리이며,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어디서 들어갑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답은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결과 의와 공의와 진노에 대해서는 매우 드물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말하나 그 밖의 일들은 말하지를 않습니다. 그는 우리들이 모두 관계를 맺고 있는 이 거룩하고 존귀한 분에 대해 설교할 때, 그 아무도 두려워 떨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가 이 진리들을 믿지 않는다고 입밖에 내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말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썽인 것은 그가 이것들을 조금도 말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체로 하나님에 대한 진리 하나만을 강조하는 데 곧 사랑입니다. 그는 성경에 두드러진 기타 진리들은 말하지를 않습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는 분명히 잘못된 것들을 말하지 않으며, 분명히 옳고 참된 것들을 말하지 않고 피합니다. 그가 거짓 선지자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진리를 감추는 것은 철저한 이단을 전파하는 것만큼이나 괘심하고 저주받을 일입니다. 그런 가르침의 결과를 ‘노략질하는 이리’의 결과로 비유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기분 좋게 하고 붙임성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결과 의와 공의를 직면케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결코 강조하지 않는 또 다른 교리는, 최후 심판과 버림받은 자들의 영원한 운명입니다. 지난 50-60년 동안 최후심판에 대한 설교는 많지 않았습니다. 지옥과 악한 자들의 ‘영원한 파멸’에 대한 설교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베드로후서와 같은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베드로후서의 정경성을 부정하려고 애썼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교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장(章)은 성경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는 그토록 강하고, 그토록 폭발적입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는 거기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산상설교에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양의 가죽을 입었으나 노략질하는 이리들인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말씀하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들을 썩고 악한 나무로 서술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바울이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을 설교했을 때(행24:24-25)와 꼭 같이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동시에 거짓 선지자의 교훈은, 죄의 사악성과 인간 스스로의 구원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실로 죄가 있음을 믿지도 않으며, 그 사악성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완전하다고 말하지는 않으나 죄가 그리 중대한 문제는 아니라고 암시합니다. 그는 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별적이거나 어떤 특정 죄에 대해서만 말할 뿐입니다. 그는 타락한 인생에 대해서나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버림받고 부패했다고 말하지를 않습니다. 그는 전 인류가 죄의 연대책임을 지게 된 것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바 ‘죄의 사악성’(롬7:13)의 교리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었고’, 철저히 무력하고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할 필요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런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말을 듣는 순수한 신자들이 그가 이런 것을 믿고 있는 것이라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짓 선생들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는, ‘그들이 이런 것을 믿고 있는가?’입니다. 그 대답은 물론 ‘아니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것을 설교하며 가르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그런데 속죄에는 보상적인 면이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도 ‘예수’에 대해서 말은 합니다. 그도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이 죽음에 대한 그의 견해가 어떤 것인가? 십자가에 대한 견해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이단적이며,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견해가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험하는 시금석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은, 이것만이 죄를 위한 보상이요, 화해의 유일한 방법임을 그가 진정으로 믿고 있는가? 그리스도가 그를 위해 대속물로서 거기 십자가에 달리신 것, 그가 ‘나무에 달리시므로’ 그의 죄책과 죄책에 대한 형벌을 떠맡으신 것을 그가 진정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죄를 처형하시지 않았다면, 존경하는 생각을 품고 말씀드리거니와 하나님이 그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 함을 그가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3:25-26) 하실 수 있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심으로만 가능했던 것을 그가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대속적 속죄론인가? 하고 묻는 것이 거짓 선지자를 시험하는 방법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말은 합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하며, 우리 주님에 대해 감상에 젖기는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십자가의 거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의 십자가 설교는 “헬라인들에게 어리석음”이 아니요,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를 ’그의 철학을 통해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는 십자가를 아름다운 것으로 경이로운 사랑의 철학으로, 무관심한 세상 때문에 애끓는 마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는 십자가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대하고 성스러운 계약으로 본 일이 없습니다. 이 계약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죄’가 되게 하셨고, 우리의 죄를 아들에게 지우셨던 것입니다. 그의 설교와 가르침에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거짓된 것도 이 때문인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어떤 의미에서든 회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의 교훈에는 구원으로 인도하는 매우 큰문과 천국으로 인도하는 매우 넓은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죄성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검은 것을 대수롭게 여길 필요가 없어집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 결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무리들과 함께 달려나가고, 여러분의 이름이 기입되고 신문에 보도되는 많은 ‘결정’한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청교도나 요한 웨슬레나 조지 휫필드나 기타 인물들의 전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사람들의 전도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했고, 가끔 영혼들로 하여금 며칠, 몇 주, 몇 개월간이나 고뇌하게 했습니다. 요한 번연은 그의 「은혜가 넘치다」란 책에서 자기가 18개월 간 회개의 고통을 당한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에는 이를 위한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회개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죄책이 있고, 악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할 것과 지옥가게 되어 있는 것을 자각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죄라 불리는 이것이 여러분 속에 있음과 여러분이 그것을 제거하려 갈망하며, 어느 모양, 어느 형태로든 그것에 등을 돌릴 것을 자각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상을 버리되, 실제생활에서는 물론 생각과 전망으로도 세상을 버리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갑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온 세상은 여러분을 바보라고 하거나 여러분이 종교광이 되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관없으며,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치료하며, 모두 괜찮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와서, 예수를 따르고, 또는 기독교인이 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거짓 선지자는 좁은 문을 들어가며, 좁은 길은 걸어가야 할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산상설교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산상설교를 실천하지 않고 이 설교에 귀만 기울인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산상설교를 비평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일어나서 심판을 선고하며 우리를 정죄할 것입니다. 거짓된 가르침은 참된 성결, 성경적 성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거짓된 가르침은 바리새인이 가졌던 것과 같은 성결관에 집착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네가 짓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어떤 죄들을 끄집어 내가지고 여러분이 이 죄들을 짓지 않는 한 모두 괜찮다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오늘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성결은 서너 가지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격하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결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5-16)의 관점에서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이생의 자랑은 교회의 가장 큰 저주거리의 하나입니다. 거짓 가르침은 바리새적인 성결을 소원합니다. 거짓 가르침은 우리들 자신이 행하지 않기로 동의한 어떤 조목들의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조목들은 특별한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성결을 안이한 그 무엇으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넓은 길로 밀려들어가 넓은 길을 실천하려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오는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의 일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안이한 구원과 안이한 생활 유형을 항상 제의합니다. 그들은 자기 검토를 훼방놓습니다. 자기 검토에 거의 이단이라는 느낌마저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검토해 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예수를 바라봐야’하고, 여러분의 죄를 찾기 위해 여러분 자신을 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 즉 “우리 자신을 검토하고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고, 우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고 한 산상설교의 이 마지막 대목을 똑바로 보라는 권면을 훼방놓습니다.

 


    그들은 청교도들과 18세기의 위대한 지도자들 곧 휫필드나 웨슬레나 요나단 에드워즈뿐 아니라,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밤 열두 가지 질문을 자문해본 성도, 요한 플렛쳐와 같은 사람들이 가르친 자기 검토와 죄의 억제 과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이한 구원이요, 안이한 기독교 생활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지고 탄식하는 것은”(고후5:4)이라 말할 때의 기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바울이 “우리가 싸우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악마의 지배와 권력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것의 진의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필요를 보지 못하는 것은 이 문제를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온통 안이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공격하는 이런 유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 한 그를 형제로 여기고, 함께 교제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인즉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무섭게 쏘아보는 이 경고들이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까닭은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려 온 바와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비판적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다고 친절과 정중함을 성도다움으로 오인해서도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인격이나 개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을 멸시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사실, 알렉산더 맥클라렌 박사가 그들이 무의식적 위선자들이라고 한말은 옳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붙임성 없고 유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대하기가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그들의 가장 위험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위험의 근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주님에 의하면 우리는 이것에 항상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는데도 거짓 선지자는 멸망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찰해 온 바로 이것이 오늘의 교회상태라 말한다면 지나친 말이겠습니까? 교회가 어째서 이처럼 허약하고, 무능하며 무력해졌습니까? 그 원인은 지난 세기의 고등비평운동의 결과로 온 설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에 저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정죄 받은 설교인 것입니다. 그 옹호자들은 도덕과 일반적인 정신앙양을 설교했습니다. 그들은 설교의 실례를 문학과 시에서 끄집어 내왔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운운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운운합니다. 그래도 그들이 명백한 이단으로 인정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는 데 절대 중요한 기타의 사항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막연한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그들은 인기감식력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너무나도 많이 보고 있는 텅 빈 교회들과 저질의 기독교 생활이 온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우리들 대다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입맛 떨어지고 불쾌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나는 정직히 고백합니다. 만일 내가 이처럼 산상설교를 설교하기로 서약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말씀들을 설교 본문으로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전에는 이것에 대해 설교한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렇게 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 설교를 좋아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설교는 비위에 거슬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을 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말씀하신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심판과 멸망의 문맥 속에 집어넣으신 이는 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 이단 사냥꾼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또는 자기 형제들과 다른 모든 사람 위에 심판자로 앉아있는 괴짜요, 괴팍한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무릅쓰고, 정직하게 성경을 풀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불멸의 영혼과 이 영원한 운명을 평가하고 값을 매길 때, 여러분은 하나님 존전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간곡히 권면하는 바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장21절)